2008년 11월 6일 저녁 7시 인천시립합창단이 도쿄(東京)오페라시티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2006년 1월 NHK방송 신년초청연주회와 2007년 4월 키타큐우슈우(北九州) 히비키홀(響 Hall), 도쿄오페라시티홀, 뮤자 가와사키(Muza 川崎)심포니홀의 순회공연에 이은 세번째 일본공연이었다. 인천&아츠Arts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연주회에서도 2007년 순회공연을 이끌었던 윤학원 감독이 지휘를 맡았다.

합창단은 오후 2시쯤 공연장에 도착했다. 녹화준비를 마친 NHK방송이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 제공한 악보와 음원, 공연영상자료를 토대로 이미 두툼한 방송용 콘티를 묶어놓은 상태였다. 치밀하게 준비한 리허설인 만큼 본무대 못지않은 긴장이 감돌았다. 조명을 켜자 공연장은 마치 햇살 맑은 가을 울창한 은행나무 그늘 밑에 선 듯 화사하고 아늑한 금빛으로 변한다. 무대전면에서 나오기 시작한 소리들은 아주 멀리서 맴돌다 햇살처럼 부서져 내린다. 세계적인 건축음향 전문가들이 도쿄오페라시티콘서트홀을 가리켜 하나의 ‘거대한 현악기’라고 하였던가? 잔향 실내의 발음체에서 내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시간 1.95초. 수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도쿄 신주쿠(新宿)의 한복판, 도쿄도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건물의 높이로 일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현대식 54층 건물,1997년 9월 10일 개관 도쿄오페라시티의 3층에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 있다.

피라미드형 내부구조의 바닥에서 바라보는 천장의 끝은 한없이 높이 보이는 정상의 꼭지로 수렴하고 있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소리의 적절한 공명과 잔향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대와 벽면은 물론 1,630석의 객석의자와 바닥, 출입문에 이르기까지 천연목재로 마감되어 있어 실로 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현악기’라는 표현에 손색이 없다. 최근 일본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다케미츠 도루(武滿徹, 1930~1996)를 추모하는 뜻에서 다케미츠메모리얼홀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연벨을 치는 직원  

영혼의 소리라는 말이 있다. 영혼의 깊이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도쿄오페라시티콘서트홀은 영혼의 깊이만큼 먼 곳으로부터 소리가 전달되는 듯하다.

연주회를 앞두고 1,630석의 객석을 메운 이들은 40~50대의 중년층이 대부분이었다. 몇 명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있을 뿐 억지로 단체관객을 유치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로비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공연 시간을 맞추느라 미처 식사를 해결하지 못한 관객들이 준비해온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고 있는 모습조차 일본 특유의 정돈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긴장감 도는 리허설을 마무리하고 공연이 임박하자 로비 한가운데로 1997년 개관과 함께 준비한 듯한 개연벨(開演Bell)공연시작을 알리는 종이라 적혀있는 종탑이 옮겨지고 제복을 입은 직원이 5단의 벨을 위 아래로 번갈아가며 울렸다. 이때부터 로비의 관객들은 차분히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이토록 멋스럽고도 치밀하게 준비하는 일본의 공연문화에 새삼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흥분과 기대감으로 재잘거리던 객석은 윤학원 지휘자의 등장과 함께 일제히 정적이 흘렀다. 「주님의 자비」라는 라틴텍스트를 모티브로 현대적 화성 위에 한국적인 음을 입힌 박정선의 <미제리콜디아스 도미니Misericordias Domini>가 그 웅장한 서곡을 알렸다. 잠시 후 환청이었을까, 음향장비의 잡음일까. 새소리인 듯, 벌레 소리인 듯한 소리가 드높은 공간을 타고 확산되기 시작한다. 두번째 곡인 우효원 편곡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의 인트로(intro)였다! ‘현대합창은 더 이상 발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두번째 무대는 유난히 일본에서 매니아층이 두텁다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모테트Motet> 중 6번째 곡이 연주되었다.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객석 후부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때 줄곧 정자세로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분홍의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중년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자 몰입하는 모습이 그들의 문화적 수준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음으로 현대음악가인 에릭 윗태크르(Eric Whitacre)가 작곡한 <다윗이 들었을 때When David Heard>이 이어졌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며 “나의 아들”을 외치는 26성부의 흐느낌은 관객과 더불어 수천의 흐느낌이 되었다. 불협화음에서 정화음으로 수렴하는 절정의 장면에서 기모노의 여인이 눈물을 슬며시 훔치는 모습이 보이고 움직임이 없던 관객들도 하나둘씩 눈 밑으로 손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윤학원 음악감독의 연주회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구조면에서 관객의 감정을 집중시키고 교감하기까지 철저하게 계산한 듯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느낌이다. 관객과의 교감이 있어야만 더 나은 연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데 일본 관객같이 반응이 차가운 관객들의 얼어붙은 반응을 녹이고 교감하게 하는 윤학원 음악만의 저력이 느껴진다.

휴식시간 이후 <사쿠라Sakura>를 비롯한 일본 관객을 위한 곡들이 연주되자 분위기가 훈훈해졌고 이를 틈타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김세완씨는 농익은 가야금 연주를 통해 한국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어 <농부가>, <한오백년> 등 한국민요가 나왔다. 수년간 연습해온 합창단원들의 율동이 그 흥을 배가하였고, 화려한 부채춤은 이 공연이 합창공연인지 무용공연인지 분간할 수 없게 했다.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에 보답하듯 흥겨운 앵콜 공연이 시작되었다. 윤학원 지휘자의 “라스또(ラスト)” last의 일본어식 발음라는 멘트와 함께 시작한 세번째 앵콜곡은 <아리랑>이었다. 객석 중앙에서부터 시작한 기립의 물결이 객석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연주회에 대한 반응은 대단했다. 일본 측 공연장을 연결해 준 기획사는 “일본의 합창단이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하며 인천시립합창단의 사기를 올려주었고 일본의 무뚝뚝한 관객 문화에서 기립의 반응을 이끌었던 부분을 들어 이번 공연이 성공적이었음을 인정해 주었다.

11년 전 지어진 도쿄오페라시티콘서트홀. 소리만을 위한 스테이지, 소리만을 위한 바닥재, 소리만을 위한 1,632개의 관람석, 소리만을 위한 30여 명의 공연장 도우미 등 소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만든 소리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훌륭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욱 부러운 것은 소리에 대한 애정을 가진 그들의 마인드였다. 소리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이들과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는 연주회는 끝이 났다. 부디 인천시립합창단의 영혼에서 뽑아내는 화음이 영혼의 깊이만큼 높은 도쿄오페라시티콘서트홀 천장에 반사되어 다시 쏟아지면서 공연장을 찾은 일본 관객들의 영혼의 울림이 지속되기를, 그 감동이 양국 간의 깊은 어두운 골을 메우고 서로의 마음 안에서 교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미지 제공_ 필자

趙宇仙 1971년생. <아트인천> 편집장. woos4242@incheo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