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문고(文庫)라고 하면 3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서적이나 고문서 등을 집어넣는 진열장, 다른 한 가지는 출판물 형식의 하나로 작아서 휴대하여 읽기 편한 염가의 시리즈, 그리고 3번째로 개인이나 민간 모임에서 집 또는 지역 회관 등에 책을 모아 근처의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이야기모임, 낭독회를 열기도 하는 작은 도서관을 말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문고는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이들을 위한 독서활동의 장(場)을 가리킨다.

아동문고는 “100이 있으면 100개의 얼굴을 갖는다”고 할 정도로, 문고의 장소, 장서 수, 운영방법이 정해진 규칙이나 패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재(主宰)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제각각 자유롭게 운영되어 왔다. 문고를 여는 데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것도,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 점이 공립도서관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운영에 관해서 도서나 경비를 충원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도서는 공립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단체대출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도서관이 독서그룹, 문고, 학교 등에 300권 또는 500권씩 3개월 또는 1년 장기대출을 해주고 지원해 주는 서비스다. 물론 개인이 책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경비 부분은 공적 지원이 거의 없이 개인 자금이나 바자회 등을 통한 모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가끔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적은 회비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료로 운영한다.

     교오토사에 분포한 어린이 문고      니시오시 이와세문고 외관    

개인의 자택에 문을 연 문고를 가정문고, 공공회관 등에 연 경우를 지역문고라고 하여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절이나 교회, 병원에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많은 아이들에게 책의 즐거움을 알려주길 원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동문고가 일본에서 풀뿌리같이 자리 잡게 되기까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초창기와 달리 특히 활성화되었다거나 문고 수가 많은 곳을 선뜻 고르기는 어려워졌다. 1960~1970년대 문고 수가 늘던 고양기(高揚期)에는 우선 도쿄(東京), 요코하마(浜), 나고야(名古屋), 오오사카(大阪), 삿뽀로(札幌) 등 대도시에서 문고가 속속 생겨나 지방의 소도시로 파급되어 갔다. 일본이 고도경제성장기에 들어가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어 도심 주변의 베드타운에 신흥주택단지가 연이어 건설되었다. 그에 비해 주변 문화환경은 이를 쫓아가지 못해, 책을 읽고 싶지만 책도, 도서관도 없는 지역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에 활발하게 생겨난 문고는 상호 정보 및 경험 교환, 연수 등을 목적으로 지역 단위의 문고연락회를 조직하고, 점차 도서관 증설과 아동서비스 확충을 요구하며 시민운동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국에 5,000개의 문고가 생겨났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이용하는 아이들이 감소하면서 시련기를 맞았다. 사회적으로 아이들을 적게 낳고, 수험체제가 강화되면서 아이들의 생활이 바빠진 이유도 있지만, 비디오, 전자게임의 개발로 스위치 하나로 손쉽게 재미있는 여가를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 도서관 시설이 정비된 것도 한 이유가 된다. 점차 문고를 찾는 초등학교 고학년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유아와 저학년으로 이용자 연령층이 낮아졌다. 문고를 운영하는 근본적인 보람은 많은 아이들에게 책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을까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문고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있는 학교 등으로 찾아가는 이동형 문고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교육, 문화가 변화하면서 문고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노력해 가고 있다.

이렇게 문고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아이들과 책을 이어주기 위한 노력을 20~30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다. 한 구체적인 예를 소개해 본다.

도쿄도(都) 아래에 있는 마치다시(町田市)의 카에데문고(かえで文庫)는 1979년 발족하여, 올해 28주년이 되었다. 카에데문고는 초등학교가 이전한 옛 교사(校舍)를 개축하여 주민센터, 스포츠실 등의 지역센터를 만들 당시, 문고를 위한 방을 요구하여 만들어졌다. 문고는 1주일에 2회, 오후 2시에서 4시 반까지 열린다. 서고에는 약 400권의 아동도서가 있고, 책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소파와 자유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문고를 돌보는 사람은 모두 15명이다. 순환조직을 꾸려, 문을 여는 날에는 3명씩 나와 도서 대출, 노작놀이와 구연동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책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거나 문고소식을 발행하여 문고 운영모습과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일을 해주는 사람들은 주로 40대에서 60대 여성 자원봉사자들로, 모여서 아동도서에 관해 공부도 하고 학교도서관 또는 도서관문제를 생각하는 모임과 교류하기도 한다. 운영비용은 센터 축제 때 케익이나 쿠키를 구워 팔거나 해서 마련하고 있다.

카에데문고가 오랫동안 장수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근처에 도서관이 없었기도 했지만, 마을주민들의 시민활동이 여러 형태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다 독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문고를 이끌어주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개인 가정문고였다면 주재자의 건강이나 사정 등으로 오랫동안 운영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지역센터에 자리 잡았던 것이 이용자들에게도 드나들기 쉬고 장수의 비결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문고를 운영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아이들과 함께 책을 즐기는, 따뜻한 자세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걸어온 일본의 문고운동은 1980년대부터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 봉착해 여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문고에서 길러온 노하우를 살려 학교, 도서관, 보건센터 등 공공기관에 협력해 가는 활동으로 그 방식이 다양해졌다. 구체적으로는 학교의 아침 독서시간에 책을 읽어주거나 스토리텔링, 북토크 등을 진행하고, 도서관 프로그램에 동참하여 직원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 밖에도 2000년 시작된 정부의 부모와 자녀의 만남의 광장 사업(親と子のつどいの廣場事業)으로 생겨난 여러 형태의 광장에 문고를 만들어가는 활동이다. 요코하마시에는 지역의 육아지원 거점으로, 상점가의 빈 점포나 아파트 등에 크고 작은 부모와 자녀의 ‘만남의 광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육아상담을 해줄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편하게 한때를 보내기도 하고 부모들이 만나서 자유롭게 교류할 수도 있다. 예전부터 도서관이나 보육원에서 독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카나자와 카즈코(金澤和子, 부모자녀독서지역문고 전국연락회 회원)씨는 이 육아광장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나 그림책 또는 어머니들이 볼 수 있는 정보지를 비치하여 문고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 같은 곳을 광장문고(ひろば文庫)라 이름 붙이고 이 광장문고를 확충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카나자와씨가 일하고 있는 ‘허그허그 나무’(안아서hug 기른다는 의미의 광장문고 이름)는 예전 슈퍼마켓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곳으로, 갓난아기 코너, 교류스페이스, 연구실 등을 갖추고 있다. 그 안에 아동도서관이라는 코너가 있다. 허그허그 나무는 화요일에서 일요일, 9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열고, 베이비 마사지,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스트레칭, 육아상담과 같은 강연회도 열고 있다. 또 ‘아빠도 함께 해주세요’라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이야기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허그허그 나무 소식>에 그림책을 소개하는 코너를 연재하기도 한다.

광장문고의 특징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생활범위 가까이에 광장이 있고, 그곳에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책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지켜보며 책을 읽어주는 스텝들이 있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물론 어른들도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이런 광장문고를 발전시켜 가기 위해 문고를 유지해 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인 자원봉사자를 육성하는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자 양성 강좌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연수시스템을 확립하고 책 구입 예산 및 공간 확보, 도서관의 단체대출 홍보, 단체서비스 확충 등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일본 특유의 자택을 개방했던 아동문고는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앞으로는 요코하마시의 광장문고나 삿포로 시로이시구(白石區)의 보건센터 내 그림책문고와 같이 지역의 다양한 ‘광장’에서 자원봉사자의 협력에 기초하여 운영되는 광장문고가 더 활발히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의 문고운동은 “아이들에게 책의 즐거움을”이라는 목표로 만남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주로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책뿐만이 아니라 육아와 관련된 놀이 프로그램, 운동 프로그램 등 생활 전체를 염두에 두면서 부모와 자녀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더 갖추어가야 한다. 이런 활동 위에 학교도서관, 공립도서관의 역할이 커지면서 상호교류와 연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번역_   번역가

 1932년 일본 도쿄(東京)생. 부모자녀독서지역문고전국연락회 대표. 최근 글로 『책, 아동, 사람을 잇는다』, 『그래서 아이들 책은 재미있다』 등. hiro711@aurora.ocn.ne.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