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작가회의가 <2008 인천근대문학제―인천, 평화를 외치다!>(스페이스빔, 2008.12.5~12.6)를 개최했다. 첫날은 ‘지역문학과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둘째날은 아시아이주민과 함께하는 <제2회 아시아문학낭송제>가 열렸다.
공교롭게도 <2008 인천근대문학제>가 열리는 이틀 동안 엄청난 한파가 밀려왔다. 추위를 감당하기에 스페이스빔 건물은 너무 오래되고 낡은 상태였다. 지역문학을 논하는 그곳, 찬바람이 여기저기서 새어 들어오는 심포지엄 발표 장소인 발효실은 지방문학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지역문학이 아닌 지방문학이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역의 개념이 물리적 연대 공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지방의 개념에는 중앙의 변방으로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문학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 대안을 찾으려면 지방문학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위_심포지엄
아래_시화전
심포지엄은 발표와 지정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심포지엄 주제와 어울리게 김창수 연구위원(인천대 인천학연구원)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발표자는 대구와 부산, 청주에서 먼 걸음을 해왔다.
인천을 꾸준히 연구해 온 김창수 연구위원은 근대문학 속에서 인천은 욕망의 공간인 동시에 일제강점기의 우울한 시대상을 압축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구모룡 교수(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는 세계체제의 변화와 관련하여 중앙과 지역의 문학을 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중앙과 지역이라는 이분법의 잣대만 갖다 댄다면 분노의 수사학이 지배적인 지방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방문학을 소재주의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치열한 탐구를 바탕으로 장소의 혼을 담는 창작 방법론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대구에서 계간 <사람의 문학> 발행하는 김용락 교수(경북외대 국제어학부)는 몸소 겪은 지역문학의 어려움을 발표했다. 지역에 밀착한 문학과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잡지를 포기할 수 없기에 주머니를 운영에 대한 제도 보완을 해가면서 주머니를 털어 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발표한 김승환 교수(충북대 국어교육과)는 자신이 발 딛고 사는 땅의 이야기를 잘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므로 작가라면 그 이점을 활용해야 않느냐고 했다. 동시에 이것이 지역이라는 공간에 고착되거나 향토 질서에 얽매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상의 발표는 나름대로 지방문학에 몸담고 있는 발표자들의 의견이라 더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했지만 좋은 지방문학으로서의 구체적인 예시가 없어 조금은 막연하게 느껴졌다. 또 중앙으로 상징되는 서울 역시 지방문학의 하나라는 것과 지방문학으로서의 서울문학에 대한 진단이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발표가 끝나고 시작된 지정토론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정화 계간 〈작가들〉 편집주간과 유영갑 인천작가회의 회장, 조우성 시인은 단순히 중앙문학에 맞서는 정도로 언급되는 지역문학은 진부하며 새롭게 지역문학을 개념화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성찰 안에는 패배주의를 버리고 좋은 문학으로 승부해야한다는 자기반성도 포함되었다.
이튿날 진행된 <아시아문학낭송제>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모국어와 한국어로 자신이 좋아하는 시와 소설을 낭송하는 자리였다. 낭송자 여덟 명 중에는 특별히 한국어 창작시를 발표한 사람도 셋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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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낭송하는 히라마츠 아야코
② 낙롱과 남편
③ 작가들 문학상 시상식 현수막
④ 작가들 문학상 수상자 조혁신
⑤ 낭송하는 하킴
⑥ 인천근대문학제 개최장소
⑦ 낭송하는 박이스라르
⑧ 낭송하는 사랑치멕
⑨ 낭송하는 짱
⑩ 관객들
94년 방글라데시에서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현재까지 일하고 있는 단비르 하산 하킴(Hakim)은 두 편의 창작시를 선보였다. 그의 시 「인생의 노래」 중 “사람 피는 다 같이 빨갛고 우리는 모두 한 사람에게서 왔다”라는 구절은 이주노동자로서의 그의 슬픔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의 친구들은 얼마 전 본국으로 강제 송환당했다고 한다. 두번째 낭송자는 몽골에서 온 사랑치멕이었다. 국가대표 사격선수이기도 했다는 그녀는 몽골의 시인 오 다쉬발바르의 「살아있을 때 서로 사랑하라」를 낭송했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왜곡된 시선으로 이주민을 바라보지 말고 서로를 사랑하라고 주문하는 것처럼 들렸다. 태국에서 살다 결혼이주민으로 한국에 오게 된 낙롱 암폰은 한국의 겨울이 너무 춥다며 「겨울」이라는 창작시를 낭송했다. 역시 태국에서 결혼이주민으로 온 김티마폰 역시 「한국 겨울」이라는 창작시에서 눈 내린 겨울을 묘사했다. 이외에도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이세이도바 아이굴, 일본에서 결혼이주민으로 온 히라마츠 아야꼬, 다문화이해 및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중국에서 온 진버루, 코란을 멋들어지게 읊던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의 수도에서 온 박이스라르, <골든벨> 베트남편에서 1등을 한 짱(Nguyen thi thu trang)도 낭송제에 참여했다. 이주민들이 모국어로 낭송할 때의 자연스러움과 한국어로 더듬더듬 발음할 때의 긴장과 들뜸이 난로의 열기와 더불어 발효실의 기운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
인천에는 공단이 많기 때문에 한국의 그 어떤 곳보다 이주민이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주민에 관한 좋은 지역문학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후에는 송도국제도시에 유입된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첫날과 둘째날의 행사는 좋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있는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지역문학의 조건이 그대로 보편적 주제(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문화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하다)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08 인천근대문학제>포스터
중앙과의 길항 관계로 논하는 지역문학이 아닌, 좋은 문학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지역문학은 충분한 가치와 명분을 갖고 있다. 지금은 컴퓨터만 켜면 어디에서든 원고를 송고할 수 있는 첨단 시대다. 이러한 때에 서울에서만 왕성한 문학활동을 보이고 지역문학이 맥을 추지 못한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최근의 시와 소설이 어려워지는 경향도 어쩌면 작가들의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관찰과 경험치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공간과 장소에 따른 다양한 삶의 풍경을 간직한 좋은 지방문학이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쉽고 재미있게 읽힐 것이다. 지방을 넘어서는, 그러나 더 지방 속으로 파고드는 좋은 지방문학이 많이 생산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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