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과 인터넷의 발달은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고 문화정보의 전달과 수용 과정도 변화시켰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람들의 문화 향수 욕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문화가 그것을 따라 움직이고 박물관의 역할도 달라졌다. 유물을 끌어안고 방문객을 기다리거나 웬만한 기획전시를 하는 것만으로는 존재 가치가 희미해지게 되었다.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옛것을 알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니 특별한 유물들을 소장한 박물관이 아니라면 시민 일반의 눈을 끌어당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展>포스터
그런 의미에서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부산근대역사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展>은 주목할 만하다. 두 도시는 19세기에 개항하여 근대문물을 수용하는 창구 역할을 하면서 발전했고, 특히 철도가 개통되면서 근대화의 물결을 전국으로 파급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천과 부산을 대표하는 두 명의 가상 인물을 내세워 상대 도시를 바라보고 자기를 투시함으로써 진정한 근대화의 모습을 알게 한다는 것이 주최 측이 밝힌 전시기획의 동기이다.
<도시기행―상하이, 인천, 요코하마 그리고 인천展>(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6.7.11 ~8.10)을 보지 못하고 넘겨 아쉬웠던 기억이 있어서 개막 둘째 날 찾아갔다. 전시는 2층 기획전시실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박물관 직원에게 알은체를 하면 선입견을 가질 것 같아 평범한 관람객처럼 입장해 구경했다.
샅샅이 돌아보는 데 20분쯤 걸렸다. 전시 구성은 창의력에 빛나는 기획의도를 충실히 살려주고 있었으며 입체적 효과도 좋고 전체 균형도 알맞았다. 관람객들이 친근감을 갖게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위에서 말한 바처럼 문화콘텐츠가 넘치는 이 시대에 박물관 전시는 기획력과 전시품들을 구성한 큐레이터의 솜씨가 빛나야 성공하기 마련이다. 이번 전시는 그런 것들이 돋보인다.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展> 전시모습 │ⓒ인천광역시립박물관│2008
전시는 이원으로 열린다.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전―인천 문필가 현(玄)의 부산기행>이 부산근대역사관에서 열리고,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전―부산 사람 B씨의 인천기행>이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열린다. 그리고 그 전시가 끝나면 교차 전시를 하기로 되어 있다. 두 사람이 여행하는 시기는 1930년대이다. 그 시대의 인천을 인천인이, 부산을 부산인이 돌아보는 게 아니라 교차 방문하여 보는 것이니 참으로 흥미롭고 참신한 발상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서 실물과 사진을 돌아보고 동영상을 감상한다면 인천의 근대상을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도록(圖錄)이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 좋다.
그러나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우선 전시장이 좁고 자료가 미흡한 것이 그랬다. 당시의 기차표, 기차시간표, 성냥과 담배 등 당대인들의 삶의 체취와 생활상이 드러나는 실물과 사진이 전체 30평쯤 되는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필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공간은 두 배쯤, 자료도 두 배쯤 더 있어야 흡족할 것 같았다.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展> 전시모습 │ⓒ인천광역시립박물관│2008
자료가 적은 이유를 궁금해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래층 복도와 2층 복도를 전시공간으로 삼을 만큼 자료가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의 소장 자료만 나온 것은 아님이 분명한데 왜 수집가들에게서 더 많이 빌려오지 못했을까 안타까웠다.
도록에도 아쉬움이 있다. 사진과 구술 내용이 풍부해서 철도사와 인천 근대사의 대강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집이기는 하다. 초점은 1930년대 부산 사람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올라와 경성을 거쳐 인천을 돌아보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문장이 시대에 맞지 않고 작위성을 감추지 못한 점이 거슬린다. 문체와 단어들이 1930년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쓰는 것들이다. 그리고 마치 70년이 지난 뒤 인천에서 이런 전시회가 열릴 것을 알고, 뒷날 이런 거리와 저런 건물이 중요한 유산으로 남을 걸로 알고 쓴 듯한 느낌을 준다. 철도사와 인천과 부산의 근대사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 약하고 즐거운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아쉽다.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展> 전시모습 │ⓒ인천광역시립박물관│2008
몇 가지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과 부산의 교차 전시회는 성공적이다. 박물관이 가진 그런 능동적 창의성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자력(磁力)과 같은 것이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그런 노력을 지속해 주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