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계에 리메이크 열풍이 거세다. 리메이크야 가요계의 오랜 관행 가운데 하나지만 최근에는 빅뱅, 동방신기, 테이 등 이른바 아이돌 가수들도 과거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리메이크 붐은 비단 가요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에는 TV에서도 과거의 드라마들을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SBS가 김수현의 1970년대 드라마 <청춘의 덫>(1979)을 리메이크해서 톡톡히 재미를 본 바 있고 KBS 2TV는 20년 전의 <서울뚝배기>(1991)를 리메이크한 <돌아온 뚝배기>(2008)를 내보냈는가 하면 MBC는 현재 <종합병원2>를 방영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끌었던 KBS의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7)도 리메이크가 기획되고 있다.

리메이크 붐은 우리나라만의 상황도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소재 고갈에 시달리던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사들은 우리나라 같은 신흥 문화산업국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물론 인기를 끈 드라마들을 시즌2, 시즌3라는 이름으로 계속 우려먹는 관행은 오래전 일이다.

리메이크의 유행은 복고의 유행과도 통한다. 최근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고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 것이나 이른바 7080스타일 1970~1980년대 유행스타일 이 새롭게 주목받는 것도 결국은 대중의 머릿속에 숨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과거지향적 마케팅의 결과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리메이크의 유행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서울뚝배기>의 등장인물들                            드라마<돌아온뚝배기>

대중문화산업계의 리메이크 붐이나 복고의 유행을 경기불황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들이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경향이 있고 그에 따라 복고에 대한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 리메이크나 복고마케팅은 오래 전부터 대중문화산업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었다는 점을 먼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의 불확실성에 있다. 자동차 같은 공산품의 경우 제작비가 많이 들면 품질도 그만큼 더 좋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지만 대중문화상품은 그렇지 않다. 질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또 흥행에 대한 예측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큰돈을 들여 제작한 영화라 해도 그만큼 재미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한 작품이 흥행에 참패하는 경우도 많고 별 기대 없이 내놓은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는 예들도 비일비재하다. 말하자면 어떤 영화나 가요, 드라마가 시장에서 성공할 것인지 예측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대중문화산업을 흔히 투기성 산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진짜진짜좋아해>포스터 뮤지컬<진짜진짜 좋아해>의 한장면_트라이프로 제공    

그러니 생산자 입장에서는 크게 모험을 해서 확률이 적은 대박을 노리는 것보다 가급적 안전한 행보를 통해 쪽박을 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 된다. 지금까지 대중문화산업을 지배해온 규범과 전략들은 대부분 그런 ‘안전주의’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흥행성을 확인받은 상품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몇 년 전 이른바 조폭영화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친구>(2001), <조폭마누라>(2001) 같은 영화들이 히트를 하자 유사한 소재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바로 그러한 것이 모방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히트작을 따라가면 히트작만큼 대박은 칠 수 없지만 적어도 쪽박은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결과이다.

리메이크 역시 속성상 그런 모방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흥행한 작품이라면 분명 그 속에는 무엇이든 대중을 사로잡는 요소가 있다는 뜻이고 따라서 그것을 다시 상품화한다면 일정하게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말이다. 가끔은 리메이크가 원작보다 더 크게 성공을 거두기도 하니 생산자 입장에서는 효율의 관점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복고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소재가 고갈되면 문화산업은 늘 과거로부터 소스를 찾기 마련이다. 과거의 상품은, 비록 그것이 과거의 것이라 해도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문화산업 입장에서는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들 수 있는 일종의 보루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모방과 리메이크, 복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반복 사용된 문화산업의 기본 전략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유독 요즘 리메이크와 복고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 경제상황과 관련이 깊다.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안전주의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생산자들은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가급적 리스크를 줄이면서 안전하게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더욱 더 찾게 되고, 리메이크와 복고는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안전한 ‘쪽박 면하기’ 전략이 된다.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나빠지면 문화소비를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데 이때 소비자들은 가장 익숙한, 그래서 잘못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대상을 골라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가 나쁠 때 복고와 리메이크가 유행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가 나쁠수록 젊은 세대의 구매력이 떨어지게 되고 따라서 기성세대의 구매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체로 1970년대 이후 대중문화 시장의 가장 적극적인 소비자들은 젊은 세대이고 특히 1990년대 이후로는 10대 청소년들이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이다. 이는 특히 대중음악 시장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러나 이들 청소년 소비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받는 용돈에 전적으로 의존해 소비한다는 점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당연히 용돈이 줄고 소비가 줄 수밖에 없다. 결국 불황기에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 쓰는 직장인, 기성세대이고 따라서 문화산업은 이들 기성세대의 문화적 취향을 겨냥한 상품을 내놓게 된다. 7080세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상품이 유행하고 <진짜진짜 좋아해〉(2008)나 <돌아온 고교얄개>(2008) 같은 뮤지컬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물론 복고나 리메이크 문화상품이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돌아온 뚝배기>가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나 7080세대를 노린 음악상품들이 일부를 제외하고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에서 보듯 그 속에서도 정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품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단지 추억을 상품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어설픈 복고나 기성세대의 주머니만 노린 향수 상품이라면 일시적으로는 시선을 끌지 몰라도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고 보면 문화시장에서 보이는 복고 붐, 리메이크 붐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라는 게 늘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등장함으로써 긴장감을 얻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이런 상황이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복고나 리메이크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문화가 오늘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좀 더 새롭고 창의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결국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그 상품들이 가진 문화적 진정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불황시대를 사는 대중의 향수 욕구에 기댄 얄팍한 상술이 반복된다면 머지않아 복고와 리메이크가 가졌던 그 나마의 상품성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의외로 정직하며 대중은 뜻밖에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곤 한다. 결국 리메이크든 복고든 그 속에 얼마나 새로움을 담아내는가가 문제일 수밖에 없고 정말로 새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복고와 리메이크란 이름을 붙이기 전에 이미 진정 창조적인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金昌南 1960년 춘천생. 대중음악평론가,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저서로 『삶의 문화 희망의 노래』, 『대중문화와 문화실천, 대중문화의 이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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