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전반 인류는 모든 방면에서 진보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의 완성, 노동 생산력 향상을 이끌었다. 교육의 보급, 노동여건의 개선, 참정권 확산 등으로 국가의 간섭은 점차 줄었다. 인류는 산업혁명을 통해 무한히 번영하는 미래를 그렸다. 나폴레옹전쟁(Napoleonic Wars, 1796~1815) 종전 이후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대규모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20세기 들어 인류는 평화에 대해 자만하고 있었다. 물론 크림전쟁(Crimean War, 1853~ 1856), 크림반도에서 러시아가 영국, 프랑스, 오스만제국과 벌인 전쟁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 1870~1871)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 등이 있었지만 규모, 지속성,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나폴레옹전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후 빈 체제(Vienna system) 나폴레옹 전쟁 전후처리를 통해 만든 유럽 국제정치 체제를 통해 영국이 유럽의 세력 균형자 역할을 담당하게 되자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어쩌면 1차대전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사건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주의에서 제국주의로 변했고, 국가 간 발전의 불균형 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후발자본주의 국가 독일은 경제력, 군사력을 확충하면서 국제적 세력 재편을 도모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함께 삼국동맹(三國同盟)을 맺었다. 이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3국은 이익의 범위를 유지하고 확대하고자 삼국협상(三國協商)을 구성하여 삼국동맹의 위협에 대항하였다. 유럽 열강들은 모로코사건(Moroccan Crises, 1904~1906, 1911)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제국이 모로코 영토 분할을 두고 대치과 발칸전쟁(Balkan Wars, 1912~1913)을 통해 군비경쟁에 몰두했으나 유럽인들의 안정된 생활 분위기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처칠(Winston Churchill, 1871~1947)은 영국정부와 국제회의가 뭐라고 하건 전쟁이 임박해 있으니 그것을 막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3년 1월, 영국 재정부 대신이 <데일리 뉴스> 기자를 만났을 때, “군비증강의 어리석음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했고, “세계정세의 앞날은 지금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평화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1차대전이 발발했고 전장은 잔혹하였으며, 규모는 거대했고 장기간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원의 동원과 조직, 준비 면에서 1차대전 참전국들이 보인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전쟁 발발 초기에는 정치, 군사 지도자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이 이 전쟁을 일시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소수의 사람들은 전쟁이 1년 정도 지속될 수는 있겠지만, 국가의 정치와 재정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전쟁 발발 후 영국에서는 ‘평소처럼 일하자’는 구호가 유행했고 독일에서는 병사들이 집을 떠나며 가족들에게 ‘나뭇잎이 떨어질 때 돌아오겠다’고 했다. 모두들 ‘오전에 일어난 가벼운 전투’라고 주변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체제(Bismarck System, 1871~1890)에서 독일군 참모총장을 지낸 몰케(Helmuth Karl Bernhard von Moltke, 1800~1891)와 폴란드의 은행가였던 유태인 블락(Block)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들은 19세기 말에 일어날 전쟁은 거대한 규모의 유럽전쟁이며 장기간 지속되는 소모전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두 사람의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참전국들은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식민지 점유와 자원 보유량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독일은 그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그래서 독일은 엄격한 자원절약 정책을 세워 모든 국민을 군사, 경제에 동원하였다. 이토록 불리한 조건 속에서 4년여를 버티며 동부전선의 승리(1918)와 서부전선의 선전을 이끈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자원 확보 측면에서는 영국, 프랑스가 우세했지만 이들 역시 장기전에 대처하기 위해 자원과 노동력을 재조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총력전(Total War)에서는 효율적 자원관리와 시의적절한 수정전략, 그리고 이들의 성공적 실현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이는 각국의 정치적 성격, 효율성, 현대화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예컨대 러시아의 경우,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요 참전국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훨씬 어려웠다. 1차대전은 이처럼 국가 자원관리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전시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경제에 대한 간섭을 강화했고 계획에 따라 생산과 분배를 조절했다. 몇몇 서양학자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국가의 개입이 경제위기 극복에 유용하다고 보았다. 미국의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 대통령과 그의 각료들은 1930년대에 뉴딜정책을 시행할 때, 1차대전 참전국들이 실행했던 경제조치를 참고했다. 부녀자들은 군에 간 남성들을 대신하여 제1생산 라인에 들어갔는데 이는 여성해방과 각국 노동기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여권신장을 논할 때, 1차대전기 여성의 역할을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전국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적국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정서를 고취했다. 그 효과는 굉장했다. 평화기의 언론은 민의를 반영하고, 정부를 감독하며, 사회폐단을 폭로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1차대전 중 대중매체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었다. 듀이(John Dewey, 1859~1952)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가 말했듯 교전국들은 언론을 이용해 국민의 전의를 격발시켰고 군과 민간의 사기를 유지하려 했다. 각국의 대중매체는 자국의 참전을 정의실현의 천부적 소명으로 치장하여 사람들 모두가 전쟁에 뛰어들 책임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는 반동이자 투항인 것이다. 이러한 선전 선동은 국가를 히스테릭한 소란 속에 빠뜨린다. 1차대전 중 전쟁에 대한 어떠한 반대의 목소리도 이 히스테릭한 소란에 묻혀버렸다. 영국의 한 신문은 ‘독일군이 벨기에 어린이의 손가락을 자르고 포로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대영제국’의 새로운 전쟁을 성원하던 군중을 분노케 했다. 사람들은 반드시 독일 국왕을 체포해 끓는 기름 솥에 처넣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역사학자 모리슨(Herbert Stanley Morrison, 1888~1965)과 코매거(Henry Steele Commager, 1902~1998)는 이러한 왜곡을 개탄하면서 이성의 힘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한 유럽인들로 하여금 정부가 조작한 거짓말을 쉽게 믿도록 만든 것은 이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윈스턴 처칠은 당시의 언론에 대해 반감을 지녔던 듯하다. 정전 이후의 독일 처리문제 관련 토론에서 영국 언론은 패전국 독일에 대해 조금도 관용적이지 않았다. 영국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빌헬름 2세(Wilhelm Ⅱ, 재위 1888~1918)의 퇴위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처칠은 영국 언론의 목소리에는 공정성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책임을 독일에 전가하는 것은 전후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의 화해에 있어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 전역에서 들끓는 여론에 처칠 자신도 입장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의 영국 언론이 “전쟁 때보다 평화기에 더 나쁜 상황을 만들어 낸다”고 평가했다.

미국 남북전쟁은 근대서구의 전쟁윤리를 ‘야만’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북부의 육군 총사령관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 1822~1885)가 서부전선에 있던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1891)에게 내린 명령이 그 시작이었다. 셔먼은 그랜트의 명령을 받아 남부의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를 단행했다. 그는 남부 연합군의 저항의지를 꺾기 위한 무차별 공격이었다. 누군가 그를 비판하자 셔먼은 “전쟁은 그야말로 잔혹한 것인지라 당신이 그것을 품위 있게 바꿀 수는 없다”고 힘 있게 답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민간인 테러로 전쟁기간이 단축되었다고 설명하면서 “따라서 테러는 이지적 행위의 시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 남북전쟁은 18~19세기 유럽의 암묵적 신사협정을 깨고 전쟁을 야만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1차대전 중에는 미국 남북전쟁보다 훨씬 큰 규모의 민간도시 공습이 있었다. 이를 금지하도록 규정한 헤이그 조약(Hague Convention)조차 소용없었다. 특히 독일이 벨기에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파괴행위는 국제사회의 분노를 샀다. 독일은 프랑스 침공을 위해 벨기에를 점령했다. 그러나 벨기에 국왕과 국민들은 투항하지 않았다. 도시는 제펠린(Zeppelin) 비행선의 폭격을 받았다. 1915년 독일은 또 다시 헤이그조약의 금지법령을 무시하고 독가스로 협상국 군대를 공격했다. 협상국도 만만치 않았다. 독일은 매번 인륜과 국제법에 어긋나는 야만행위를 일삼았지만 협상국으로부터 빈번히 더 큰 보복을 받았다. 그 결과 전쟁윤리는 사라졌고 야만과 공포만이 전장을 가득 매웠다.

참전국들은 조속한 승리를 위해 첨단무기를 전장에 배치했다. 동시에 대량물자를 투입하여 거대 살상력을 지닌 신무기를 개발했다. 잠수함과 전투기도 1차대전 때 개발되어 대규모로 투입된 것이었다.

1차대전은 19세기의 이상주의와 낙관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전쟁이 증명하듯 상업과 교통의 혁신은 민족 간의 적대적 울타리를 넘지 못했고, 과학의 비약적 발전도 인류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충동을 완화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진전했다 해도 사람들을 이성적이고 이해심이 넘치도록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생산력의 향상과 사회적 부의 축적 또한 빈부격차를 해소하지는 못했다. 이 모두는 문명 진보의 표준과 방식, 현대적 이해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사고범주의 확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류는 불안정한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요구했다. 전후 독일을 위시한 패전국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새로운 국제정치 체제를 어떻게 구축하여 전쟁의 출현을 막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에는 정치가들의 지혜와 전 인류 차원의 관용, 현실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국제조직이 필요했다. 승전국들은 독일에 대한 준엄한 처벌로 전쟁 재발을 방지하려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패전국 처리과정은 오히려 독일국민들에게 승전국에 대한 분개와 원망만을 낳았다. 이러한 정서는 순식간에 군국주의자와 나치스들에게 이용되었다.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설립, 집단안전보장(Collective Security) 평화유지는 원래 미국 대통령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의 주장이었지만 국가 간 이해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데다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혁명 이후의 러시아와 패전국이지만 여전히 강대한 독일도 장기간 전후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했다. 이러한 형국에서 국제사회가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율배반이었다. 종전 후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파리강화회의와 베르사유 평화조약은 이를 겨냥해 “모든 전쟁을 종식한 전쟁, 그 결과는 평화를 끝낸 강압적인 평화”라고 저평가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들을 조소할 만한 자격이 있을까? 1차대전이 끝난 지 90년이 지났지만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아직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 평화는 여전히 하늘의 별처럼 저 멀리 높은 곳에 있고 그 빛은 희미하다.

번역_ 申懿先 연세대 중문과 박사과정

쪹이 글은 「1918, 我們還能說什?」, <書屋>(湖南敎育出版社: 中國, 2008. 11)를 필자와 출판사 측의 동의를 얻어 번역하고 편집방향에 따라 축약한 것임.

熊僞民 1956년 중국 후난(湖南)성 타오쟝(桃江)현생. 후난사범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최근 저서로 『평화의 소리, 20세기 반전반핵운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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