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랙스 동네극장 DCV

김창길   지금 실제로 상영을 하고 있는지?

백승기   애초에는 주기적인 상영을 목표로 했었는데 그렇게 쉽지 않다. 의의는 좋은데 현실적으로 가게세 내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애초 계획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도 있고, 일단 해놓으면 뭔가 다 잘 돌아갈 줄 알았는데 정말 힘들다. 2007년 개업식을 많은 사람들이 온 가운데 성대하게 했는데도, 개업식 다음 달부터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애초에 꾸러기스튜디오를 만들 때 취지랑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게 보여서 돈을 따로 벌고 짬을 내서 작업도 하고 운영도 하자고 얘기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다른 일이랑 병행하다 보니까 이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해야 잘 돌아갈까를 고민하고 있는 상태다.

김창길    늦은 질문이지만 왜 하필 꾸러기스튜디오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백승기   쌕쌕 엔터테인먼트, 날필름 등을 가지고 고민 중이었는데, 대학교 1학년 때 대학생 장기자랑 프로그램에 나가서 1등 했던 팀 이름이 꾸러기였다. 일단 순수 우리말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고, 꾸러기라는 억양이 재밌고 권위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장난꾸러기, 잠꾸러기 등 뭔가 하나에 푹 빠져 있고 순수함을 유지하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느낌이 강해서 꾸러기라고 지었다.

김창길    제작방식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의 부분들이 많다. 자칭 C급영화란 표현과도 관계가 있는지?

성충경  C급이라는 말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의미가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작업 과정에서 의미를 부여하자면, 캠코더(camcorder)로 촬영해서 컴퓨터(computer)로 편집하고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하는 영화(cinema)까지 매체나 기술적인 측면까지 모두 C라는 글자 안에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유통이나 소통까지 독자적으로 인터넷 등을 통해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것일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A도 B도 아닌, C급이라고 표현했다. ‘주체적으로 선택한 마이너리티’라고 했던 분도 있는데, C는 매체적인 특징과 우리만의 독자적인 창작소통 방식들, 커뮤니케이션까지 포함한 나름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복합적인 의미의 단어라 할 수 있다.

김창길   보통 패러디라고 하면 ‘재미있고 기발하다’는 평은 받지만, 작품으로서의 평가를 받긴 힘든 부분이 있다. 창작자들은 대부분 그런 평가를 싫어하는데 힘들지 않았는지?

백승기   처음엔 그런 욕심 없이 그저 재밌으면 되지 싶어서 쉽게 접근했다.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면 잘 모르는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보지만 일반인들이 나오면 잘 보질 않으니까 일단 사람들이 보게 하려고 패러디란 형식을 이용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름대로 섞어 넣었다. 패러디도 색깔이라고 생각했었고, ‘이거 얘기 좀 되겠다’ 싶으면 따지지 않고 했다. 개별적인 창작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패러디하는 부분만 보는 것 같다. 미술작업 하는 친구들마저 “그렇게 가다간 아무 것도 안 된다, 너무 가벼워 보인다”고 평가했지만 어떤 분은 반대로  “패러디야말로 진정한 창작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첫 패러디다” 같은 얘기를 해주셔서 용기를 얻었다.

백승기

김창길   출연배우도 인천 사람들이고 배경도 대부분 인천인데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백승기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요새 문화예술 쪽에서 지역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는데, 흐름을 잘 탔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의도를 갖고 꼭 인천에서 찍어야지, 했던 건 아니지만 공감대는 일정하게 있었다.

성충경  인천에서도 중구, 동구가 주 무대다. 살아왔고 계속 살다보니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거고 무엇보다 익숙한 공간이다.

백승기   요새 상업영화 쪽에서도 여기에 많이들 와서 찍고 간다. 여기가 정말 매력적인 공간인 게 과거와 현재가 조화된 곳이다. 동네에 들어올 때도 서울에서 영화를 찍으려고 내려오는 곳이니까 앞으로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영화의 메카가 되게 하자는 꿈을 갖고 있었다.

김창길    배우로 참여하는 분들은 모두 노개런티인가?

백승기   지금까지 한 번도 개런티는 없었다. 식사나 뒤풀이는 해주려고 하는데, 오히려 선배거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출연도 해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술도 사주셨다.

성충경

성충경  젊은 친구들이 지역에서 활동한다고 기특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어렵지만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격려 차원에서 기꺼이 참여해주는 분들이 많다.

김창길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출동 43호>에 대해서 얘길 해보자. 첫 장편영화를 만든 셈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백승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UCC가 아닌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을, 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 들어갔지만,  일반 상업영화가 쉽게 들어올 수 없는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게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동아리를 결성했고,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우리끼리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실 이번 영화도 장편이긴 하지만 C급무비라고 생각한다. 캠코더로 찍고, 컴퓨터로 작업하고, 시간 안 맞으니깐 급하게 찍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마추어다, 그런 게 아니라 A급이든 B급이든 정식으로 영화를 찍는 장비도 없고, 조명, 전용마이크, 시스템, 전문배우들 하나 없이 내가 추구하는 방식으로만 했는데도 충분히 장편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김창길    실제로 스텝이나 배우도 모두 학교 동아리 친구들이 같이 참여해서 만들었는데, 기존에 혼자 했던 작업방식과 달리 스텝을 꾸려서 공동으로 해보니 무엇이 다른가?

백승기  시사회 때도 비슷하게 “재밌게 보긴 했는데 이 영화의 메시지가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 한 대답이 다른 영화 보는 것처럼 감상해도 좋지만, 이 영화는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교육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는 얘기였다. 영화가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으로 확연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힘이 크게 발휘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김창길

김창길    현실적인 이야기 외에 판타지적 설정들, <드래곤볼>(1986) 같은 만화적인 상상력이 있는데, 현실과 판타지가 결합하는 방식에서 개연성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백승기   어렸을 때 제일 재미있게 봤던 <드래곤볼>이 주 모티브다. 마지막에 손오공이 만났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부분이 감동과 희망을 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제작도 마찬가진데, 사람들이 와서 술도 사 주고 영화음악도 만들어주고 시사회 때 일부러 영화 보러 찾아와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연성 부분은 우리가 추구하는 게 그런 방식이다. 대놓고 판타지는 싫고 일상적인 판타지를 좋아한다. 판타지는 어떻게 보면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도 평범한 사람인데 능력자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물론 그 능력이 잠을 좀 많이 잔다던가, 고기를 많이 먹는 식의 쓸데없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능력이 나중에 의외의 성과를 내기도 하고 일상에서 판타지가 튀어나올 수 있는 배경이 된다고 생각한다.

김창길    학생들이 영화를 만드는 1년 동안 변한 모습이 있는지?

백승기   ‘애들이 성격도 활발해지고 자기들끼리 친해지기도 하면서 눈에 띄게 변하겠지? 영화 쪽으로 나가려고 할지도 몰라’ 어찌 보면 뻔한 결말을 원했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런 문제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얘들이 내 덕분에 개선됐어’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뻔한 결말도 하나 있다. 주인공이었던 원준이는 장래희망에 영화감독이라고 썼다. 사실 놀랐던 건 시사회 때였다. “나중에 커서 영화 쪽으로 해보고 싶은 친구 있어요?” 했더니 “저는 다른 꿈이 있어요”, “저는 연기를 했었는데 찍는 게 더 좋아요” 이게 아이들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김창길    아이들은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본 건가?

 

꾸러기스튜디오가 제작한 아날로그 영사기

백승기   일부러 ‘짠!’하고 보여주기 위해 숨긴 것도 있다. 시사회 끝나고 집에 갔더니, 몇 명이 문자를 길게 보냈다. “찍을 땐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등.

김창길    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무언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백승기   사실 힘든 적도 많았다.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 나서 수십만 원씩 수리비가 들었고, 차도 없으니 무거운 장비를 일일이 들고 다녔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갑자기 펑크를 내기도 하고 탈퇴하기도 했다. 그래도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다.

  아날로그 영사기를 통해 본 영상

김창길    아무리 C급영화라도 특히 장편이라면 제작비를 무시할 수 없는데 어떻게 충당했는지?

백승기   일단은 월급으로 썼다. 그 돈을 사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꾸러기스튜디오 활동을 하기 위한 연장선상의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썼다. 카메라를 고치기도 하고 짐이 너무 무거운 날엔 택시도 탔다. 제작비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게 아이들 식비였는데 아깝지 않았다. 실제로 비용을 따져보면 정말 싸게 찍은 거다.

김창길     <출동 43호>가 우여곡절 끝에 나왔지만 일반극장에서는 상영하기 쉽지 않을 텐데?

백승기/성충경

백승기   요즘 ‘어떻게 하면 이 영화를 효율적으로 배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기존 독립영화의 보편적인 배급방식을 생각 중이다. 독립영화 배급 쪽에 보내볼 생각이다. 또 하나는 학교 쪽을 뚫는 것이다. 주 관객층이 학생, 교사,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수업 시간 1교시 내에 볼 수 있게 45분짜리로 만들려고 하다가 결국 1시간짜리로 만들었다.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애들에게 많이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배급해보고 싶다. 꼭 학교에서 틀지 않더라도 영상미디어센터 같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방식도 있다. 이번에 시사회를 진행했던 주안영상미디어센터 관계자 분도 학교 쪽을 대상으로 배급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생님들과 연계해서 학생 단체관람 쪽으로 상의를 해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김창길   첫 장편영화, 첫 배급인 셈이다.

백승기   예전에 옥상영화제처럼 오프라인에서 진행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영화 자체가 짧기 때문에 99%가 온라인이었고 가장 좋은 배급이기도 했다. 그런데 장편 영화는 그냥 온라인에 올려놓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를 누가 보더라도 대사 하나하나가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고, 좀 제대로 봤으면 좋을 것 같다. 온라인은 그런 측면에서 장편 보급에는 한계가 있다. 길면 온라인에 올려놓기도 힘들고 인코딩을 여러 번 하기 때문에 화질과 음질이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DVD 형태로 선생님들에게 배급을 할까, 원하시는 선생님에 한해서 무료배급을 할까,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받고 팔까 고민 중이다.

백승기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차기작으로 욕심나는 소재는 만석동 조기축구회 아저씨들 이야기다. 만석동은 유명한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창비, 2000) 배경이기도 하고 나 역시 그곳에서 자랐다. 조기축구회 회원 대부분이 만석동이 힘들 때 살았던 증인들이다. 가난하고 어렵지만 그 축구회만의 매력이 있다.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정이 있고 캐릭터가 다양하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잘린 분부터 청년실업자까지 하나하나가 다 이야기거리다. 또 기간제 교사로 1년 일했던 만월중학교 계약이 올해로 만료돼서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중이다. 아직 새 학교를 못 구해서 초조하긴 하지만 어디를 가든 어떤 형식으로든 내 방식대로 풀어나갈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있다. 많이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밤이 되면 불이 들어오는 간판

성충경  평생학습관 같은 곳에서 미디어교육을 포함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꾸러기스튜디오가 창작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는 물론이고, 많은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싶다. 관련해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백승기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교육과 창작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교육을 통한 창작, 창작을 통한 교육’인 셈이다. 이건 교육용, 이건 창작용, 칼로 자르듯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프로그램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창작도 할 수도 있는 거다. 요즘 연극 쪽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장르나 나이를 떠나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연구해보고 싶다. 우리만의 독특한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보고 싶다. 

 

정리_ 鄭藝恩 대학생

白承棋 1982년 충북 영동생. 꾸러기스튜디오 대표, 청학중학교 미술교사.

成忠慶 1978년 인천생. 꾸러기스튜디오 배우 겸 미술팀장.

金昌吉 1971년 수원생. 인천민예총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