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세계>는 최초의 근대극인가?」를 읽고 1908년의 <은세계>가 지닌 근대성을 새롭게 조명한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저자는 <은세계>를 장르상 창극에 해당하지만 제작방식과 내용, 주제 면에서 근대성을 갖기에 한국 최초의 근대극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이러한 평가에 이견을 제시하고 싶다.
<은세계>를 한국 최초의 근대극으로 본다면, 그것은 앙투안의 자유극장1887년 앙투안이 창설한 극단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 각국에 파급된 근대극 혁신운동의 총칭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간과한 것이며, <은세계>를 1920년대의 신극운동과 동일선상에 두는 격이 된다. 신극은 앙투안의 자유극장과 입센, 하우푸트만, 체홉과 같은 서구 자연주의 극작가들로 대변하는 사실주의 연극을 모범으로 한 근대극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극의 실제적인 모델은 일본 타이쇼시기(1912-26)의 신게키였다. 당시 신게키운동의 주역은 유럽연극을 경험한 지식인들로, 그들은 서구 사실주의 연극을 모범으로 하여 근대화한 ‘일본적 근대극’을 지향했다. 한국에서 신극운동의 주체는 도쿄유학생 출신들이었다. 특히 1920년대 신극운동을 이끌었던 현철과 극예술협회의 김우진, 홍해성, 그리고 토월회의 박승희는 신게키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은세계>와 신극 사이에는 시기, 내용과 형식 등에서 현격한 거리와 차이가 있고, 따라서 그들을 근대극이라는 명칭 하에 동격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은세계>가 비록 기존의 창극과 구별되는 근대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근대극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 글에서 저자도 지적했듯이 1908년 <은세계>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평가하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
<은세계>를 한국 최초의 근대극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 그 보다는 새로운 “근대적인 연극” 정도로 보며 판단의 여지를 조금 더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