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사토 마코토(佐藤, 1957~2007)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가 택한 죽음의 방식이다. 가족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던 그는 신호대기에 걸려 차가 멈췄을 때 택시에서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 건물에 올라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몸을 아래로 던져 49세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사토 마코토 회고展> 포스터
일본 다큐멘터리계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하며, 오가와 신스케(小川紳介, 1935 ~1992)와 츠치모토 노리야키(土本典昭, 1928 ~2008)로 대변되는 1세대 다큐멘터리 감독과 후배 다큐멘터리 감독의 다리 역할을 해온 사토 마코토의 예기치 못한 죽음은 많은 이들을 혼란케 했다. 도대체 왜? 사토 마코토 본인이 말했듯이 그는 자신의 첫 영화인 <아가노강에 살다(阿賀に生きる)>(1992) 이후 이 영화를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논쟁적인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었고, 일본 다큐멘터리계에서의 입지도 탄탄했다. 그런 그가 왜 느닷없는 죽음을 선택해야 했단 말인가?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의 죽음 후에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에서 죽음을 예견할 만한 요소들을 발견했다.
영화<아가노강에 살다>의 한장면
77학번인 사토 마코토는 1970년대 일본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 전공투) 세대1960년대 일본 대학생들의 반정부 투쟁가 퇴장하면서 학생운동이 몰락한 직후에 입학한 세대다. 사회 전반에 패배의식이 흐르고 답답한 현실을 깨기 위해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시기. 이때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해낸 것이 미나마타(水) 같은 곳에 들어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다. 사토 마코토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미나마타에 들어갔고 이때의 공동체 경험은 이후 그의 영화세계에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된다.
위로부터 영화<아가노강의 기억>,<아웃 오브 플레이스>,<자아와 타자>의 한장면
그러나 사회적, 실천적 관심에서 지역으로 들어갔던 이들과 달리, 그가 미나마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영화 때문이었다. 그는 사회투쟁의 도구로 다큐멘터리를 간주한 선배들의 액티비즘(activism)행동주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동시에 영화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한 최초의 시네필(cinephile)영화광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아가노강에 살다>, <아가노강의 기억(阿賀の記憶)>(2004)에서 당시 사회의 핫 이슈였던 미나마타병(水病)유기 수은에 의하여 발생하는 만성 공해병 문제를 다루면서도 프로파간다(propaganda)적인선전적인 관심사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영화적 표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16mm 다큐멘터리 <아가노강에 살다>에는 이러한 특징이 원형처럼 담겨있다. 이 영화는 미나마타병을 인정받지 못한 환자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도 그들이 투쟁하거나 투쟁에 지쳐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일상을 따뜻하고 꼼꼼하게 기록해나갈 뿐이다.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병에 걸렸음에도 열심히 살고 있다’가 아니라 ‘즐겁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나마타병은 그들이 즐겁게 대화할 때 그들의 떨리는 손가락을 살짝 보여주는 방식으로 매우 짧고 은밀하게 묘사될 뿐이다. 그들이 환자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들의 부자연스런 손놀림을 보는 순간 “아, 이들이 아프구나”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식이다.
또한 그의 영화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간결하다. <아가노강에 살다>를 만든 12년 후에, 다시 니이가타(新潟)를 방문해 만든 <아가노강의 기억>에서 이러한 주관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 사이 미나마타병을 앓았던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영화는 끝내 죽은 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들이 언제 죽었는지 따위의 통상적인 궁금증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들이 부재하는 빈자리를 말없이 비추는 것으로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낼 뿐이다.
이렇듯 부재의 포착, 혹은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감독을 사로잡는 주제가 되어간다. 그의 유작이 된 <아웃 오브 플레이스Out of Place>(2005)에는 사토 마코토의 이러한 관심사가 집약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의 삶을 다뤘지만 영화에는 단 한 번도 에드워드 사이드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부재를 부각하는 빈 공간, 허공이 두드러질 뿐이다. 이렇듯 인물에 관한 영화를 만들되 그 인물을 감추고 대신 그가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를 포착하는 방식은 <아웃 오브 플레이스> 이전에 이미 <셀프 앤 아더스Self and Others> (2000)에서 시도된 바 있다. 고쵸 시게오(牛腸茂雄, 1946~1983)라는 일본의 사진작가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서 고쵸 시게오는 직접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찍은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과 기억을 통해 관객이 프레임 밖의 사진작가를 직접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특징에 대해 남인영동서대 영화학과 교수은 “부재에 대한 매혹”이라 말한다.
그러나 사토 마코토의 작업에 대한 비평가들의 호의적 반응과 달리 현장에서 작품을 만드는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사토 마코토의 후기 작업을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안녕 사요나라(あんにょん, サヨナラ)>(2005)를 만든 김태일 감독은 <아웃 오브 플레이스>가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태만한 작품이라 혹평하면서 이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우호적인 반응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그것은 결국 사토 마코토의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양함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기억과 부재, 부재를 증명하는 방법에 대한 집착과 매혹은 분명히 그의 후기 영화를 관통하는 테마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후기작품을 관통하는 이러한 관심사는 49년의 짧은 생을 스스로 거둔 그의 행위에도 일관된 맥으로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孟秀珍 1970년 경기 광주생. <무비위크> 스탭 평론가,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최근 저술로 『진실 혹은 허구, 경계에 선 다큐멘터리』 등. cliche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