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하여 등단했다. 한 5년 동안 젊은 연출가들과 의기투합해 신나게 작품을 쓰던 그가 2000년 중반부터인가 연출을 겸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두 팔을 걷어붙여 ‘극공작소 마방진(이하 마방진)’이라는 극단을 차리고 내달린 끝에, 그는 상한가를 치는 대학로 연출가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행적을 좇다보니 그의 이름만 떠올려도 독특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의 연극은 젊고 발랄하다, 뻔뻔할 정도로 유치하다, 허무맹랑하나 재미있다, 통속적이지만 순수하다, 판타지를 맴도는 듯하나 진실을 담고 있다. 이렇듯 그의 연극은 기성세대의 신중함이라든가 격식을 고리타분하다고 몰아부치며, 나이든 관객을 주눅들게 하는 젊음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이 지점에서 고선웅과 마방진의 현주소가 눈에 띈다. 기성세대, 기성권력, 기성연극의 형태를 부수는 그들의 무대는 젊음이라는 빗장을 닫아 건 변방이며 아지트이다. 극단 마방진은 또 다른 정부를 섬기고 있다!
연극<강철왕>주인공
<강철왕>의 허무맹랑한 이야기 역시 마방진이 터뜨린 또 하나의 야심작이다. 극의 줄거리는 여기저기 나뒹구는 삼류만화의 코드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통속성을 디자인한다. 주인공은 제철공장 사장 아버지를 둔 발레리노(ballerino)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사업을 계승하기를 강요한다. 이 정도면 앞으로 꾸려질 플롯(plot)은 진부해져 버린다. 통속적인 소재가 숨을 몰아쉬며 비약하는 것은 그의 거침없는 상상력이 개입하면서이다. 갑자기 노사 문제가 끼어들며 외연을 확장하더니, 주인공이 열 속에서 살아남아 강철로 변하는 신기루가 뿌려진다. 돈 앞에 눈이 먼 아버지가 아들을 팔아 광고료를 챙기는 순간 아들은 혼신을 다해 마지막 춤을 춘다. 이즈음에서 삼류 판타지는 그 나름의 숭고함을 덧입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기성과 젊음의 갈등을 넘어 이 사회의 병폐에 그 화살을 겨눈다. 통속성에 판타지를 버무리며 노사 문제라든가 배금주의 등 사회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은 결코 흔한 능력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이 섬기는 정부야말로 전례 없는 자신들만의 독자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젊은 관객의 절대적인 호응을 얻는 것은 자신들만의 공동 이데아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고선웅의 입담은 핸드폰과 인터넷에서처럼 그들만의 소통 방식을 구축하며 톡톡 튀는 감각적인 솜씨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카피 문구처럼 언어로 선명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만의 능력이다.
연극<강철왕>포스터
‘스트레스’와 ‘스텐레스’를 조합하여 언어유희를 펼치는 것은 일례에 불과하다. 대사들이 배우들의 몸에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랩의 운율로 살아나자 극장은 그들만의 아지트임을 다시 한번 선언한다. 배우들은 무대 안 깊숙이 들어가 하나의 환상을 축조하는 대신 관객을 향해 돌진하듯 달려 나와 온몸으로 하나되기를 부추긴다.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 주인공의 발레의 동작을 반주하는가 하면, 랩 운율은 공장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역동적인 몸짓에 담아낸다. 이들의 동작이나 춤사위가 세련되거나 정련되지 않음으로 해서 다시 한번 통속성은 강화된다.
대학로를 벗어나 또아리를 튼 극단 마방진과 극장 마방진은 분명 젊은 극단과 소극장이 지향해야 할 덕목을 지니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들은 실험과 표현의 자유를 소명으로 하는 소극장의 기능을 맘껏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실험이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경향을 이를진대, 마방진의 실험은 다소 통속적이다. 그들의 성과가 눈부시나 결국은 통속적이라고 치부하면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연극에 대한 그들의 헌신적인 열정이다. 이 고달픈 세상에서 젊은 극단이 소극장을 운영한다는 것, 그 과정은 알 수 없을지라도 공연을 통해 감지되는 그네들의 헌신과 열정, 시시각각 돌아가는 사회적, 문화적 코드를 정확히 짚어내는 감각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언제까지나 그들은 마냥 젊기만 할까? 젊음은 한시적인 것이다. 몇 년 후 그들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崔英珠 1960년 경기 금촌생. 연극평론가, 성결대, 세종대 강사. 최근 저서로 『글에 담은 연극 사랑』, 『동시대 연출가론』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