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많은 사람들이 월미도, 송도신도시, 인천국제공항, 인천상륙작전(1950) 1950년 9월 15일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에 상륙하여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군사작전 등을 떠올린다.

『인천으로 통하였느냐』(인천관광공사, 2009)는 인천도심권과 강화, 옹진권 2권으로 구성되었다. 2009년은 인천시가 지정한 인천방문의 해로, 올해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열린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지구가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니 인천이 새로운 동아시아 중심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인천에서 줄곧 살았던 나에게 이 책은 참으로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대표 도시로 손꼽히는 인천에 다가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책이 필요했다. 책을 보니 예전에  갔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눈여겨보지 않았던 곳들도 찾을 수 있었다. 새롭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곳을 찾는 과정, 인천 속에서 ‘인천’을 찾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맥아더 장군동상    

강과 바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강은 일단 물이 짜지 않고, 지역과 지역, 땅과 땅 사이를 가로지른다. 반면 바다는 항상 육지의 경계선에서 시작한다. 인천은 강 없이 바다와 싸우고 돕고 애달파하면서 지냈다. 바다 중심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던 곳이라, 바다 근처에서  수많은 교류가 있었다. 강이 한복판을 가르고 있는 서울은 강 중심적이라 강 근처에 있는 마을들이 번성했고 지금도 강 근처에 번화가가 있다. 하지만 현재 강과 바다는 전보다 그 역할이 크게 줄어들었다. 교통수단과 도로가 발달하면서 더 이상 강과 바다 근처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특히 육지의 끝에서 시작하는 바다는 더욱 그 필요성이 사라졌다. 인천이 그렇다. 지금 인천에서 도심권이라 말할 만한 곳은 더 이상 바다 근처가 아니다. 오히려 서울과 가깝고, 그곳과 교통이 편리하게 연결된 곳이 도심권으로 변하고 있다.

내 첫 발걸음도 그랬다. 전철을 타고, 하나 둘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내린 종점엔 인적이 드물었다. 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차 소리 외에는 고요했다. 아니 적막했다. 인천의 끝에 왔는데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공장들과 오래된 건물들뿐이었다. 서구 문물의 수용과 개항의 시발점이었던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적막한 인천역을 지나 우선 바다로 향했다.

인천 앞 바다를 대표하는 곳을 생각한다면 단연 월미도다. 책은 그곳을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며 나들이 명소로 소개하고 있다. 많은 횟집과 놀이기구, 노점상들의 활기찬 모습은 어느 번화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청소년들이나 어린 연인들은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었으며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바다는 기분 전환으로 오기에 안성맞춤이다. 책에 연인들의 거리, 또는 ‘들키면 안 되는 중년들의 거리’라는 말이 있어 월미도가 건전하지 못한 만남의 장소로 왜곡될까봐 조바심이 들었지만 바다를 보니 그런 불안한 마음들은 다 지울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월미도 건너편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과 공원이 있다. 인천은 바다와 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별과도 맞닿아있다. 바다와 인천은 외로움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이민자들의 흔적은 그리움과 소외와 고통이었다. 타국에서 괄시와 언어의 차이로 오는 소통의 어려움은 더욱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박물관 뒤에는 월미공원이 있다. 반세기 동안 군사통제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1년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인천에 있는 나조차 이곳이 개방되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작은 산 같은 이 공원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긴 산책로를 걷다보면 잘 갖춰진 한국전통정원이 보이는데, 이곳이 한국전통정원지구이다. 궁궐정원과 민가정원, 그리고 초가지붕의 전통민가를 재현한 한국전통정원지구에선 지게도 질 수 있고, 여러 민속놀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월미도 놀이기구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자극적인 놀이에 만족하는 우리에게 아늑하고 전통적인 것은 쉽게 눈길이 가지 않는 것으로 전락한 것 같았다. 월미도 내에도 소외는 분명히 있었다.

왼_일본 제18은행   오_구 일본 제1 은행    

월미도를 벗어나 인천역 앞에 있는 패루중국식 문와 만났다. 책에 나온 패루는 여러 색깔로 화려했으나 직접 본 패루는 같은 패루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무채색으로 변해 있었다. 조금은 건조한 느낌. 평소 차이나타운은 화려하다고 생각했었다. 휘황찬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것일까? 붉은 색으로 치장한 건물들이 있어 붉은 단풍을 보는 듯했지만 눈부심이 없었고, 따뜻함이 없었다. 곧 떨어질 붉은 단풍처럼 아슬아슬 위태했다. 중국은 화려하다고 생각한 편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국적인 정취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실망하고 좌절한 것은 아닐까? 한때 많은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건물들과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들 곳곳에 숨어있었다. 지금은 화려한 치장으로 그 모습을 가리려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떠난 후 오는 상실감은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차이나타운을 지나 조금 깊숙이 걷다보면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작은 언덕에 오르면 멀리 바다를 볼 수 있다. 그곳은 많은 공장의 연기 틈 사이로 웅장한 배와 선착장이 생동감 넘치는 산업 현장 분위기다. 그런 바다를 뒤로 하고 이 작은 언덕의 정상은 자유공원과 맞닿아있다.

 

 

차이나 타운 쉼터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사람들은 ‘최초’에 의미를 두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기억하기 쉬워서일까? 처음과 끝을 기억하기 쉬우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기억뿐이지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으로 변한 건 아닐까? 어느 공원이든 공원은 늘 한적한 느낌이다. 특히 이곳은 젊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것이 없기에, 노인들만이 와서 즐기는 곳으로 변했다. 이곳은 분명 젊은 사람을 소외하기 충분한 그저 ‘최초’의 의미를 지닌 공원에 불과했다. 공원에 있는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 동상도 초라해보였다.

 

차이나 타운 입구(패루)  

오래된 것의 생소함은 향수를 일으킬 수도,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낼 수도 있다.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 옆을 보면 높아야 2층 정도 밖에 안 되는 건물들이 길게 즐비한 동네가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일본식 건물들과 서구식 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 차이나타운보다 더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일제(1910~1945) 때 사용하던 건물들을 그대로 복원하면서 아직도 그 시절의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 곳이 인천의 끝에 숨어있었다. 새로운 것에 설레는 어린 아이처럼 한참을 둘러보다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곳은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들을 위한 많은 배려가 보이지 않았다. 구 인천일본제18은행 인천 중구에 소재한 시 유형문화재 제50호을 인천근대건축사박물관으로 바꾸고, 여러 곳에 표지판을 세웠지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노력은 찾기 어려웠다. 차이나타운은 주말이나 축제 때는 분주하겠지만 이곳은 늘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 같았다.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몰에 올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복고적이며 충분히 매력적인 이 거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이렇게 홀로 걷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알 수 없는 고요함과 외로움은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일까?

왼_해안천주교 교육관, 오_한국이민사 박물관 내부    

생소함을 즐기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수도 있으나, 역으로 지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일상에 익숙해진 우리는 항상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자극적인 것을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것을 원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생소함을 느끼기도 한다. 거기에서 오는 소외는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이다. 인천 또한 그런 과정을 계속 지나야할 것이다. 떠남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듯이 소외는 지속되지 않고 어딘가에서 자리 잡아 익숙함에서 오는 공허함을 남길 수 있다. 마치 이곳 인천과 ‘인천’ 사이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번화가와 산업 발전의 산물인 많은 공장, 국제공항으로 동아시아의 중요 도시가 되어가는 인천과 ‘묵묵히 옛 일들과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 다시 돌아올 변화를 위해 잠들어 있는 인천’ 사이에서 말이다.

 

이미지 제공_ 필자

許熊 1984년 인천생. 인하대 식품영양학과 재학. dree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