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7일 사할린우리말라디오방송국 김춘자 국장은 2008년 12월 27일 사할린우리말라디오방송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한국에 알렸다. 2004년 광복절에 개국한 사할린우리말텔레비전방송(KTV) 역시 1월 말까지 밖에 버틸 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할린우리말방송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어라디오방송국은 1956년 러시아어를 모르는 한인들에게 소련공산당 정책과 사회주의를 교육할 목적으로 설립했고 1990년까지 무리 없이 운영되었다. 비록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30분 분량의 방송에 불과했지만 그때만큼은 조선어가 통용돼 민족의 혼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산당 정책에 대한 선전용이든 교육용이든 간에 우리말 방송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 1917~1991) 해체 이후 조선어라디오방송국은 우리말라디오방송국으로 개칭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25~30분간 모국의 소식을 전하는 순수 민족방송으로 거듭났다. 그전까지 사할린동포1들은 고국소식의 대부분을 재일동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 고르바초프(Mikhail Sergeyevich Gorbachyev)가 경제개혁을 위해 추진하였던 정책으로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자유화를 외교적으로는 긴장완화를 기조로 함는 한인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1990년 한국과 러시아 국교수립 때까지 3천여 명의 사할린동포가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할린희생동포조각위령탑 건립 기념식 장면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토마리(Tomari)시 한글교사 허남훈(72)씨는 고국 소식과 노랫가락에 흐느끼던 아버지의 눈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좋은 세상이 올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고국소식은 강제 징용으로 끌려 왔던 사할린동포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말라디오방송이 통한의 세월을 보낸 1세대들의 질곡 같은 삶을 송두리째 안고 갈 초유의 사건이었다고 진술하였다. 남한이 가난에 허덕이는 줄로만 알았던 사할린동포들에게 우리말라디오방송이 전하는 고국소식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꿈과 기쁨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국소식과 한인사회뉴스를 내보내는 매개역할을 하였다.
2007년 한인위안콘서트
2001년 7월 여성부 주최의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대회에 러시아 대표로 참석한 김춘자 국장은 세계 25개국에서 온 80명의 각국 대표들 앞에서 4만여 명의 사할린동포들을 위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고 민족혼을 불어줄 우리말TV방송국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2002년 2월, 김춘자 국장은 양국 문화교류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러시아방송공사를 설득해 어렵사리 우리말TV방송 허가권을 취득하게 된다. 당시 사할린 한인사회는 TV방송국 개국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떠들썩하기는 했지만, 김춘자 국장은 TV방송 기자재 및 콘텐츠 지원요청을 위해 수차 모국을 방문했고, 마침내 2004년 8월 15일 우리말TV방송국이 개국하게 되었다. 개국 첫날 우리말TV방송국은 8월15일 광복절기념 특집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우리말TV방송국은 매주 주야간 총 4시간(평일 1시간, 주말 3시간)의 방송분량을 할당받아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등 한국의 프로그램을 러시아어로 자막 처리해 방송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사할린동포뿐 아니라 한국의 드라마를 접한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의 발전에 매료되었고 직장이 끝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둘러 앉아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어 열풍도 덩달아 일어났고, 한국 제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 사람들은 “신화를 창조한 한국”이라고 했다. 이처럼 사할린우리말라디오, TV방송은 한인 3, 4세들이 모국어와 민족혼을 찾는 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사할린의 한류열풍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 100여 소수민족이 부대끼며 사는 사할린에서 유일하게 민족방송을 운영해 한인들의 위상과 입지 향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한민족노래자랑을 매년 실시해 민족의 혼을 심어 주었고, 한글백일장을 개최해 한국어를 보급하였다. 이뿐 아니다. 사할린희생동포조각위령탑을 코르샤고프(Korsakov)시의 망향의 언덕에 세우는 데 앞장섰으며, 최초로 한복전시 및 패션쇼를 개최해 우리 옷의 미(美)와 우수성을 러시아 문화계에 알렸다.
2007년 한민족노래자랑대회 장면
2005년부터 러시아국영방송국의 민영화 정책으로 TV채널이 난립하자 정부는 지원금을 대폭 삭감해 우리말라디오방송 분량이 하루 8분으로 축소되었고, 하루 3시간 분량을 방송하는 TV방송마저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2005년 2월 한 독지가에 의해 “동포를 위해, 우리말을 위해”라는 호소문이 현지신문인 <새고려신문>에 게재되었고 한국 내 주요사회단체와 언론사 등을 통해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또한 2002년 한민족노래자랑으로 인연을 맺은 후 사할린 수호천사로 통하는 가수 이혜미씨가 사할린우리말방송국돕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한인 3, 4세를 위한 한국어 방송은 스스로 비용을 조달해야 한다는 러시아 정부의 방송운영정책으로 위기에 처한 사할린우리말라디오, TV 방송국 상황을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 것이다. 이후 국내의 기업체와 사회단체 등 독지가들의 정성과 후원에도 불구하고 2009년 또 다시 라디오방송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2008년 광복절 기념식상 장면
끝으로 재정부족으로 인한 라디오방송 중단과 관련하여, 방송국의 활로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번 일은 정부나 외부의 지원에만 의존하였던 것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스스로 방송권을 획득해 러시아 공중파 방송에 다시 한국어를 내보낼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미지 제공_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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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제 강점기(1910~1945)에 모집, 알선, 징용 등으로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인들. 현재 사할린에는 이들 뿐 아니라 대륙에서 온 소련계 한인과 북한계 한인들도 있음.
曺成吉 1958년 부산생. <KN-한인소식> 기자. 최근 글로 「한글선구자 허조씨의 생과 삶」, 「북방할머니 이야기」 등. jso086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