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나라들이 있다. 일생에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 그러나 정작 꿈꾸는 나라는 현실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행사 광고 등의 이국적인 이미지에서 비롯한 오해인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터키 역시 그런 나라 중 하나이다. 이스탄불, 터키쉬 블루, 터코이즈 블루(turquoise blue, 연파랑) 오리엔탈,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세밑(歲─), 대안공간루프에서 열린 터키현대미술 전시 <디퍼런트 시밀래러티-엔드게임A Different Similarity-Endgame展>은 터키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초대 작품에서 술탄(sultan) 이슬람교 국가의 군주, 후에 오스만 제국의 황제를 일컬음의 이미지도, 바다색 터키쉬 블루의 잔상도 찾을 수 없었다. 작품은 그 사회에 닿아 있는 낯설고 익숙한 그들의 ‘현재’ 이야기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펠린 우란(Pelin Uran), 김정연 그리고 서진석은 터키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설치, 영상 작가 7명을 초대했다. 물론 이 7명의 작가로 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가늠해 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한국-터키 교류전으로 출발하여 ‘다른 유사성’이라는 부제를 걸고 시작한 이번 전시는 분명 오리엔탈 문화의 중심 터키와 동방의 아침 한국의 다르면서도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임에는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문제의식과 작업 태도는 미술시장의 전례 없는 호황 탓으로 변질된 우리 현대미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의 책임기획자라 할 수 있는 펠린 우란은 이번 한국전시의 타이틀을 엔드게임이라고 정했다. 체스에서 엔드게임은 철저한 계획과 프로세스로 구성되는 중간과정과 다르게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게임의 마지막 단계이다. 마치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는 데에 방점을 찍기라도 하듯, 기획자는 엠레 후네(Emre Huner)의 비디오 애니메이션과 알리 카즈마(Ali Kazma)의 비디오 연작, 그리고 바누 첸네트올루(Banu Cennetoglu)의 설치작업, 이실 에이리카부트(Isil Egrikavuk)의 퍼포먼스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병치(倂置)시켜, 작품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의외의 효과를 낳게 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엠레 후네,<원형교도소>  

물론 그저 그런 장르 간의 병치만을 노렸다면 전시는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작품의 형식적인 나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엠레 후네의 <원형교도소Panoptikon>(2005)는 건축과 자연, 산업화와 근대화에 따른 불안을 다룬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보노라면 모더니즘적 군사기계장치들 혹은 근대건축을 순례하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시선은 알리 카즈마의 비디오 연작 작업 <장애물Obstruction>(2005~2008)로 이어진다. 알리 카즈마는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물들에 시선을 고정해, 일상의 모습인 시계나 가전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기계적인 소음에 가까운 사운드까지 더해지면서 관객은 점점 영상에 빨려들어 간다. 그리고 군사시설이나 건축에서 어느덧 일상으로 내려온 시선 안에 인간이 포착된다.

인간이라는 주제는 자연스레 이실 에이리카부트의 <토론단Panel>(2005)이나 하 자 부 주(Ha Za Vu Zu) 의 퍼포먼스 <왓 어 루프What a Loop>로 이어진다. 물론 이 둘의 퍼포먼스가 근대화에 대한 불안이나 고민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퍼포먼스라는 장르가 지닐 수밖에 없는 한시성, 한계성은 카즈마의 작품에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과 연결된다. 그것은 사진을 통해 불안정한 공간과 공간의 잠재적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와도 닿게 된다. 이렇게 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에 기대가고, 다른 이야기와 만나게 됨으로써 다른 독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것은 어쩌면 끝나지 않은 끝말잇기 놀이일지도 모른다. 그런 열린 독해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기능 혹은 현대미술을 보는 새로운 재미일 수도 있다.

만일 터키의 어떤 이국적인 정서를 기대한 관객이 있었다면, 실망감을 안고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터키를 통해 지금의 현대사회,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온전히 이번 전시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현대예술은 이미 시각적 즐거움의 차원을 넘어 인식의 차원으로까지 달음질쳤으니 말이다. 펠린 우란은 이를 “프로젝트의 부작용”이라 말했다. 엔드게임이라는 다소 모호한 타이틀, 불분명한 듯 보이는 이야기들의 병치를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야기, 그 이야기를 통해 열리게 되는 새로운 세상. 그의 말처럼 예술은 인식과 새로운 질문의 공간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런 예술 행위는 부작용을 여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인간의 고유활동일 것이다. 문득 터키 국기가 떠오른다. 빨간 바탕에 동시에 떠 있는 달과 별, 낮이 이성의 시간이고 밤이 감성의 시간이라면 밤의 상징인 달과 별의 나라 터키는 예술의 나라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것이 아닐까? 그런 나라에서 온 얽매이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은 한겨울 만나는 함박눈 같은 반가움이었다.

이미지 제공_ 대안공간루프

申보슬 1972년 인천생.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 <404 오브젝트 낫 파운드> 등 전시 기획.  nathalie.boseulsh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