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싱가포르의 비밀

김효정

2003년 싱가포르 해안 예술극장으로 문을 연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의 특별한 성공1은 문화도시 담론이 형성되던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지속적으로 회자되고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하드웨어적인 지역개발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던 그때, 잘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시설이 지역경제와 지역에 대한 매력도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매혹적인 시도로 보였다. 그리하여 많은 연구자들은 문화를 통한 지역개발의 성공적인 사례로 소개하였고, 이는 문화의 경제적 가능성을 일반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지역 및 도시계획에서 ‘지역민 또는 시민의 일상적 문화수준이 도시의 경제를 포함해 미래를 결정할 것’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예로 언급될 것이며, 우리의 도시와 지역을 변화시키는 롤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에스플러네이드로 대변되는 문화도시 싱가포르의 성공담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들이 있었고, 그러한 성공담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넘어서고 사회복지가 스웨덴보다 잘 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국가 싱가포르의 수도는?  <1박2일>(KBS)의 복불복 잠자리 선정 퀴즈문제로 나올 법한 문제다. 질문을 듣는 순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싱가포르가 도시 이름 아니었던가? 국가 이름이었나?’하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실 싱가포르는 국가명인지 도시명인지 구분이 안되는 아니, 국가명과 수도명이 같은 도시국가이다. 인구 역시 4백만이 겨우 넘는 작은 나라이지만 그 조차도 중국인, 말레이인,말레이 군도와 인근 도서지역에 사는 민족 인도인이 섞여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인도 동남부 및 스리랑카 동북부에서 주로 씀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종교적 금기가 심한 이슬람, 힌두교를 비롯하여 불교, 유교, 도교가 뒤섞여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구의 75%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지만 중국인들도 푸성(福建省) 출신의 중국인과 광동성(廣東省) 출신의 중국인이 서로 통하지 않는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여건에서 지금과 같은 부와 명성을 가진 나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는지 통치자의 국가운영 능력에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싱가포르는 단일정당인 국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이 통치하는 의회주의 공화국으로, 당이 국가 전반에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통치형태에 대한 정치적인 공방을 떠나 싱가포르가 진정한 국가위기를 경험한 적이 없고, 특히 경이로운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는 점은 찬사를 보낼 만하다. 그 이면에는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도시국가의 특성을 재빨리 인식하고 전 세계의 성공사례를 연구하여, 경제 중심을 기초제조업에서 최첨단 기술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이동시킨 노력이 있었다.

사실 싱가포르는 인구의 85%가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이민족이 섞여있어 문화적 전통을 형성하기 어려우며, 천연자원도 상대적으로 부족해 글로벌 국가경쟁에서 존재를 드러내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자신들이 가진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하였다. 경제, 산업적으로 남지나해와 인도양을 잇는 말라카해협에 위치한 입지적 장점을 이용하여 주변지역이 상호 교류하는 국제무역, 국제금융의 무대로서 입지를 다졌다. 또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1960~1990년대에 원료 및 농산물 수출과 제조업으로 발전을 거듭할 때 싱가포르는 서비스와 최첨단 기술사업 분야에 주력하였다.

한발 앞서 국제정세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싱가포르는 문화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이미 예술과 전통 그리고 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면서 ‘문화의 자원성’ 모델을 채택하였고, 창조산업 및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개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당 통치체제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가 도시 및 국가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민하였으며, 미래산업과 창조적 인재와 기업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때  싱가포르는 방대한 양의 선진 사례조사를 실시, 홍콩을 비롯한 방콕, 상하이 등 새롭게 등장한 아시아의 도시들과 경쟁 가능한 전략들을 점검하였다. 지금에서야  ‘문화의 자원성’과 ‘창조경제의 파워’, ‘창조적 인재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전략개발에 고심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싱가포르의 앞선 행보는 놀라운 것이다.

알 듯 모를 듯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화도시는 많은 연구자들이 개념화했고, 많은 개발론자들이 구체화했으며, 많은 전략가들이 홍보했다. 그리하여 그것은 현재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도시의 가치를 표현하는 최상의 의미로 사용된다. 실제 우리나라 수많은 도시들이 살기 좋은 도시임을 설명하기 위해 문화도시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있고, 상품으로서 도시의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로 그것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정치가들과 행정가들이 그들의 도시경영 능력과 지역의 미래를 문화도시로 대변하는 등 문화도시가 가지는 단어의 힘 즉 브랜드 파워는 상상 이상이다.

문화도시라는 브랜드 파워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한 문화도시 싱가포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먼저 싱가포르의 동향분석 능력에서 출발한다. 싱가포르는 동서양의 문화, 교통, 자원 교류의 접점에 위치했다는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자원이 부족하고 문화적 배경이 미약하여 글로벌 생존경쟁에서 불리한 도시국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1, 2차 산업을 벗어나 국제무역과 국제금융 등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 경제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러다 1980년대 홍콩, 상하이 등 아시아의 신흥 경제도시들이 급부상하자 지금까지 싱가포르가 가졌던 아시아의 산업, 무역, 경제의 중심축이 신흥도시로 이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 미래를 대비한 새로운 도시경쟁 모델을 모색하기에 이른다(1989). 이때 유럽에서 시작된 문화수도 논의에서 문화가 가지는 포괄적인 가능성을 발견하고 문화를 중심으로 도시를 성장시키겠다는 대 전략(grand plan)을 발표하게 된다. 그로부터 10여 년간 문화시설을 확대하고 도시개조사업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이룩하게 된다. 구체적인 성과를 살펴보면 우선 문화정보부(Ministry of information, Communication and Arts)와 예술진흥을 위한 국립예술평의회를 발족했고, 국립문화재위원회, 국립도서관청 등 관련 조직을 정비하였고,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아시아문명박물관, 에스플러네이드 등 문화기반시설을 조성하였다.

2000년 제2의 문화정책 보고서 「싱가포르 르네상스 시티 리포트Renaissance City Report-Culture and the Arts in Renaissance Singapore」를 발표하여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진일보한 행보를 계속하게 된다. 1989년의 정책이 문화도시를 위한 기반조성 수준이라면 2000년대의 것은 세계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싱가포르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정책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서는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싱가포르를 국제적인 예술도시로 조성하여 근로, 여가, 산업, 환경에서 문화를 통한 세계 최상의 도시로 나아갈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창조, 지식기반 산업을 새로운 산업성장축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싱가포르의 역사, 예술, 정체성을 확보하여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창조산업에서 중요한 것이 창조인력의 역할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인재를 양성할 것을 강조하면서 양질의 예술단체와 젊은 예술인을 육성하는 한편 역동적인 예술과 창조적인 문화 활동에 대한 후원책을 증가시켰다. 아울러 우수한 문화기반시설을 지속적으로 조성했고, 문화시설과 문화인력들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예술행사의 허브로 싱가포르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홍보했다.

다시 말해서 「싱가포르 르네상스 시티 리포트」가 가지는 중요성은 누구보다도 먼저 미래경제에서 문화와 창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시의 예술기반을 확대하여 국제적인 예술도시로서 싱가포르의 위상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도시 또는 국가이미지가 곧 하나의 브랜드이자 글로벌 도시(국가)경쟁에서 중요한 가치를 생성함을 알고, 의도적으로 도시이미지 즉 싱가포르의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 발표된 「창조산업 전략보고서Ctreatiive Industries Development Strategy」(2002)의 “1당 통치로 경직된 싱가포르는 다양한 의견을 좀처럼 수용하지 않고 과도한 규정만을 강요하는 도시국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적 인재와 기업은 창조적 담론을 허용하고, 실험 공간을 제공하는 곳으로 이끌리기 마련”이라는 정책입안자의 분석을 바탕으로 2004년 전 세계 동성애자들의 연례행사인 네이션 파티(nation party)를 개최하는 등 일련의 이미지 만들기에 주력하는 모습에서 그 단면을 찾을 수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미술관인 퐁피두센터와 제휴하여 싱가포르에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분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통합형 리조트를 건설하여 도시전체를 관광도시로 전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정책과 창조산업을 기초로 문화의 유희성을 달성하여 국제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행보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한발 앞서 세계의 흐름을 통찰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자세는 우리가 배워야하는 첫번째 덕목이 아닌가 한다. ‘전 지구적 도시경쟁의 핵심 요소로서 도시이미지와 브랜드 구축’이라는 세계적, 지역적 과제를 그들은 이미 예술과 창조, 문화적 통합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것이 곧 싱가포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 도시도 싱가포르의 예를 통해 여러 도시와 지역, 국가의 움직임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바탕으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어느 도시의 뒤를 쫓아가는 형국에서 벗어나 한발 앞선 행보를 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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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억 싱가포르 달러(약 5700억 원)를 들여 조성된 극장엔 크고 작은 문화공간 30여 곳이 밀집해 있으며, 이곳은 싱가포르를 세계 공연의 중심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국가산업에서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창출, 성과를 얻었음. 

金孝貞 1968년 경남 합천생.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 최근 저술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국토의 문화적 잠재력의 재발견과 정책과제」 등.

hyojeong@kc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