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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상표는 시장에서 물건이 잘 팔리게 하는 요소이다. 유명상품은 그래서 상표, 즉 브랜드 자체라고도 한다. 명품(名品)은 유명 브랜드를 말한다. 소득이 많고 자유분방하며 개성이 강한 보헤미안(bohemian) 관습이나 규율을 무시하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사람적 삶을 선호하는 신세대일수록 명품 마니아들이 많다. 이들에게 명품은 자신을 과시하는 기호이자 상징이다. 물질적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명품을 소비한다.   
기호로서 상품 소비는 개별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품의 소비를 둘러싼 분위기와 맥락으로서 공간이 함께 소비된다. 한때 유행했던 오렌지족은 강남에서 명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면서 자기다움의 욕망을 충족하곤 했다. 이들은 개별상품으로서 명품이 아니라 기호화된 공간인 ‘강남’을 소비하는 셈이었다. 오늘날 상품의 기호화는 장소의 기호화를 불러오지만, 거꾸로 기호로서 장소는 상품의 기호성을 심화시켜주기도 한다. 기호화된 상품과 장소의 상호작용이 확대되어 나타나는 장이 바로 도시이다.
상하이 푸동지구
세계적인 도시들은 상품 같이 해당 도시에 브랜드를 붙여 세계인들의 소비를 자극하면서 도시의 개성을 홍보하고 경쟁력을 추구한다. 명품을 소비하듯이 이미지화, 브랜드화한 도시 자체의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오늘날 앞서가는 도시들의 발전전략이다. 과거의 도시개발이 토지, 인프라, 생산시설 등 하드웨어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도시개발전략은 도시의 축제, 랜드마크(land mark), 로고, 슬로건 등을 이용해 도시이미지를 판매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도시개발전략을 도시마케팅(city marketing)이라 부르며, 도시에 상표붙이기 즉 도시브랜드화는 그 대표적인 수단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들은 대부분 그 도시를 표상하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뉴욕은 도시이미지를 성공적인 브랜드로 만들어낸 최초의 도시에 속한다. 뉴욕의 브랜드인 I♥NY는 <뉴요커The New Yorker> 1925년 창간한 미국의 주간잡지로 뉴욕의 생활상들을 세련된 문장과 사진으로 소개함뿐만 아니라 모자, 티셔츠, 액세서리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슬로건이자 로고인 I♥NY은 1차 오일쇼크(1973~1974)로 뉴욕시가 재정위기에 빠졌을 때 시민들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되살리고 관광객을 끌어들여 도시경제를 되살려내기 위한 방안으로 고안되었다. 브랜드화에 성공한 덕분에 뉴욕은 연간 3,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명품도시가 되었다.
요코하마 랜드마크타워
동아시아에도 도시브랜드화 바람은 예외 없이 불고 있다. 서울의 ‘아시아의 영혼, 서울Asia’s Soul, Seoul’, 도쿄(東京)의 ‘예스, 도쿄Yes, Tokyo’, 홍콩의 ‘아시아 세계 도시Asia World City’, 싱가포르의 ‘문화의 허브, 창조 도시Cultural Hub, Creative City’ 등이 그러하다. 이런 세계적인 도시뿐 아니라 일국 내의 작은 도시들에서도 브랜드화는 유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브랜드화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부산의 ‘역동적인 부산Dynamic Pusan’, 대구의 ‘다채로운 대구Colorful Daegu’, 대전의 ‘이츠 대전It’s Daejeon’, 경주의 ‘아름다운 경주Beautiful Gyungju’, 구미의 ‘예스, 구미Yes, Gumi’, 원주의 ‘건강한 원주Healthy Wonju’, 진주의 ‘매혹적인 진주Charm Jinju’ 등이 그 예다. 물론 동아시아 도시브랜드화는 슬로건만이 아니라 로고, 축제, 이미지, 이벤트, 랜드마크, 장소, 지역상품 등을 활용해서도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요코하마(橫濱)의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みなとみらい21事業), 1983년부터 시작한 21세기 미래도시 개발사업 타이베이(台北)의 101 빌딩, 101층, 높이 508m의 타이베이금융센터 구마모토(熊本)의 아트폴리스(artpolice),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처럼 구마모토를 예술도시로 가꾸자는 프로젝트 베이징(北京)의 798예술지구, 근대식 건물이 밀집한 곳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새로운 예술문화의 중심거리를 형성 홍콩의 홍콩아일랜드, 홍콩의 금융, 경제의 중심지로, 야경으로 유명함 상하이의 푸동(浦東)지구 동팡밍주(東方明珠) 등 다국적 기업들이 밀집한 경제밀집지구 등은 도시의 특정 장소에 상징적 건축물이나 문화 활동을 집적시켜 브랜드화한 예들이다.
세계의 도시브랜드 열풍이 동아시아 도시들에도 부는 현상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동아시아의 도시브랜드화는 괄목할 만하다. 최근 도시발전 과정을 통해 본 동아시아의 도시브랜드화는 서구 도시들에 비해 분명 새롭다. 급격한 도시화를 겪었던 동아시아의 도시는 스스로의 개성과 차별성을 고민하고 이를 내세워 도시발전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서구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빠른 속도감, 강한 이미지, 실험성 등은 동아시아 도시브랜드를 특징짓는 중요 요소들이다. 새로운 건물이 등장하여 갑작스럽게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역동적인 가로경관은 오래된 서구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도시의 강한 이미지를 발산하였으며, 세계경쟁에 적응하면서 도시적 삶이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특징들이 동아시아 도시브랜드에 투영되어 있다.
동아시아 도시브랜드화는 상품, 공간의 기호화를 통해 탈산업시대, 탈근대적 소비자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선진 동아시아 도시들의 경제와 문화는 서구 대도시들보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더 깊게 연동되어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동아시아 도시브랜드화는 탈산업사회로 이행해 가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홍콩아일랜드 야경
동아시아 도시브랜드화는 역설적으로 그간의 경제발전에 따른 결과물이다. 성공적인 경제발전의 열매로 축적된 동아시아 국가들의 풍부한 경제력이 도시브랜드화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 랜드마크 건설, 문화집적지구 조성, 축제 조직 외에 도시개조사업 등으로 도시브랜드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세계경제 호황과 더불어 세계의 공장 역할을 담당하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구조가 2차에서 3차 산업으로 옮겨가면서 동아시아 국가는 소득향상에 따라 문화소비가 증가하는 문화사회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이미지, 상징, 정체성 등을 소재로 하는 상품 소비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를 담아내려는 동아시아의 도시공간은 스펙터클한 장소로 변모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들은 도시의 개성과 매력을 발전의 새로운 전략으로 삼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도시들이 도시브랜드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경제발전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체성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구와는 달리 선진 동아시아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특징이다. 동아시아 도시들이 세계 최고층 건물을 경쟁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현상이 하나의 증거다. 초고층 건물은 선진화를 과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정체성을 세계에 널리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도시공간을 통해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동아시아적) 근대성, 즉 재현적 근대성(representative modernity)의 한 현상이다. 1930년대 미국이 초고층 건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Empire State Building)을 지어 미국 자본주의의 물질적 우월성과 더불어 국가 정체성을 표현했던 것과 유사하다.
동아시아 도시들의 브랜드화는 이렇듯 그 배경이나 담겨진 의미의 차별성으로 인해 서구 도시의 것과 구별된다. 그러나 도시브랜드화가 도시경쟁력을 고양시켜 도시발전을 꾀하는 마케팅의 일환이란 점에선 양자 간 차이가 무의미할 수 있다. 글로벌시대 국가 간 경쟁이 도시 간 경쟁으로 옮겨감에 따라 도시마케팅은 세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시전략이 되었다. 따라서 도시마케팅의 한 방편인 도시브랜드화는 세계자본주의 하의 무한 시장경쟁에 순응하는 콘텐츠로 획일화된다. 상품과 자본의 논리가 도시브랜드를 구성하는 배경, 의미체계, 표현양식 속으로 과도하게 파고들면 동아시아적 개성과 차별성은 그만큼 사소해진다는 이야기다.
타이페이 101빌딩
차별성을 내세워 도시를 판촉하는 브랜드화 전략이 몰개성적 상품논리로 물들면 브랜드로서의 매력을 잃게 되는 이 현상을 도시브랜드의 역설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도시브랜드화에서 우리는 이러한 징후를 조금씩 감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까닭으로는 자기다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해석의 부족, 브랜드의 서로 베끼기, 물리적, 외형적, 환영적인 브랜드에 대한 과도한 집착, 특정 정치, 경제 세력에 의한 일방적 추진 등을 꼽을 수 있다.
동아시아는 세계경제대국으로 자리 잡은 일본, 신흥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선진경제로 진입한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개도국의 선두주자로 떠오르는 베트남,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면에서 동아시아는 가장 역동적인 지역에 속한다. 그 역동성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이고, 동아시아 도시들은 이를 공간적으로 표출하는 화려한 전시장이 될 것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스스로 우월함을 표현하면서 세계의 중심에 서기 위한 동아시아 도시브랜드 전략은 더욱 활발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도시브랜드의 역설이라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질 위험도 경계해야겠다.
도시브랜드는 도시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붙인 상표이지만, 브랜드의 진정성은 탈물질적인 자기다움에서 나와야 한다. 즉, 상품과 자본논리의 일방적 추종이 아닌 자신의 역사와 전통, 일상문화에 대한 재해석, 개방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도시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도시브랜드는 동아시아 도시의 진정한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
趙明來 1954년 경북 안동생.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최근 저서로 『개발정치와 녹색진보』,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 등. mrcho55@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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