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은 문화코드로 보자면 여성적 속성이다. 반면에 남성은 세상의 난제를 풀어야 할 팔자로 태어났으니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거친 삶을 살다보니 고독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하지만 사랑할 때는 상위만을 고집하는 마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중문화에서 이런 이분법적 문화코드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조폭의 보스뿐만 아니라 조폭을 때려잡는 검사도 여자고 남녀관계를 리드하고 외도를 하며 이혼을 통보하는 쪽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대세다. 우리가 이런 묘사에서 아무런 감정적 혼란을 느끼지 못하고 이를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으로 수용하고 있다면, 그 감정으로 구조화된 이 사회는 아무래도 문화적 격동기를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문화적 소용돌이의 끝자락에 동성애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대중문화에서 지난 십 수 년간 부드러운 남성성을 추적하기 바빴다면 이제는 아예 금기로 여겨져 주류문화에서 결코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벽장 속 이야기를 서슴없이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로드무비〉(2002)가 흥행에 참패하고 <후회하지 않아>(2006)가 미미한 관객동원에 그친 상황에서 불편한 주제를 아예 드러내놓고 까발리기는 어렵다. 차라리 여잔지 남잔지 구분이 안 되는 부드럽고 예쁜 사내들을 등장시켜 기존에 사용했던 온갖 구태의연한 사랑 놀음을 시키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판타지로 제시될 수 있으니 꽃미남이야말로 대중성과 희소성을 일거에 확보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왼쪽에서 시계방향을 영화<쌍화점>,<앤티크>,드라마<바람의화원>,<꽃보다남자>포스터  

코드는 모두가 나눠 갖지 못하면 암호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문화산업은 이 코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돈벼락을 맞을 수도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코드가 나눠가져야 성립하는 개념이라면 동성애코드도 다수가 수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아니, 다수를 동원하기 위한 상업전략이라 정의하는 편이 훨씬 사실에 가까운 개념정리라고 할 수 있다. 해서 동성애코드가 동원된 <번지점프를 하다>(2001), <서양골동양과점 앤티크>, <쌍화점> 그리고 <바람의 화원>(SBS, 2008), <미인도>(2008), <꽃보다 남자>(KBS, 2009)를 비롯한 수많은 뮤직비디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성애코드는 이 작품들을 새롭고 독특하게 보이게 하는 장치일 뿐 동성애의 정치적 문제를 촉발시키지는 않는다.

바로 이 맥락에서 비판이 쏟아진다. <쌍화점>의 경우 정사 신에 집중한 나머지 “내용은 없고 욕정만 넘치는” 영화로 전락했으며, 결국 “2% 부족한”, “너무 자극적인 액션과 몸”만이 스크린에 어지럽게 전개되는 매우 상업적인 영화라는 힐난이 관객들의 입을 통해 이어진다. 동성애코드를 동원하고 조작하다보니 본질적인 동성애 관계를 심층적으로 접근해 진정한 성적 소수자의 섹슈얼리티를 구현할 수 없고, 오로지 쾌락적 자극을 극대화하는 기능으로만 그 코드가 작동할 뿐이라는 비판인 것이다. 물론 다수의 관객들은 이 영화가 주는 재미에 넋을 잃기도 한다. 육체적 자극이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두 시간 동안이나마 사람들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은 그것이 과연 누구의 해방이냐는 것이다. 관객 모두가 꽃미남 신드롬에 빠져든 것이 아닐진대 누가 무슨 이유로 등장한 꽃미남 현상에 열광하느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해진다. 꽃미남 캐릭터가 만화에서 먼저 시작됐고 이어서 소설, 인터넷, 광고, 뮤직비디오 그리고 마침내 영화에서 오늘날 ‘차고 넘치는’ 코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그 나름의 역사적 과정을 가지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현재를 가능케 한 문화적 계보를 추적하다보면 마지막으로 마주치는 대상은 10대 소녀 취향의 이(異)문화가 드러난다.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문화적 취향이 20~30대가 된 오늘까지도 꽃미남 신드롬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꽃미남은 하나의 감정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신세대의 일상적 삶에서 감지된 느낌의 구조로, 구세대의 감정구조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역사적 변화에서 나타내고 있는 새로운 감성은 한마디로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불만스럽고, 가진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공상세계에서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큰 위안이 된다. 88만원세대 저임금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 세대를 뜻함나 골드미스30대 이상 40대 미만 미혼 여성 중 학력이 높고 사회적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 계층을 뜻함 모두 할 것 없이 자신들에게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현실세계의 인물이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한 이미지와 걸맞은 픽션세계의 꽃미남인 것이다.

그렇다면 판타지에 빠져든 신세대는 가상세계로의 현실도피를 추구하는 것인가? 가상세계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그들은 이미 현실감각을 상실한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그리 판단하는 것은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오해한 것이다. 일상이 지배적 가치에 포위된 상황에서 가장 사적인 순간이어야 할 오락의 영역에서조차 약육강식의 현실원칙에 따라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현실과 먼 판타지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꽃미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려온다면 그 쾌락적 떨림의 강도는 현실의 것 못지않은 것이다. 어쩌면 더 큰 기쁨일지도 모르고, 그런 만큼 더 현실적이다. 

왼쪽에서부터 영화 <로드무비>,<번지점프를하다>,<후회하지않아>포스터

문화산업은 이런 사회적 감정구조를 포착하는 데 능숙하다. 그것이 돈벌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상품을 주로 구매하는 고객의 문화적 취향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기업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 것을 단순히 문화상품에 반영하는 것만으로 경쟁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해서 때로는 매우 공격적으로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현실세계의 에피소드를 사회 전체의 표본적인 문화현상인 양 과장해서 재현함으로서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문화산업이 대중적 정서에 부응하는 가치관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다분히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경영전략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동성애 문제를 상업적 이윤을 위해 자극적인 코드로 변주시킨 결과 영화가 관객의 감정을 종속시켜 부정적인 권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생산된 쾌락은 마초적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제아무리 동성애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코드의 동원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관객은 여전히 동성애 담론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긍정적 감성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듯 다수가 즐기는 대중문화는 그 정치적 효과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 창조적 에너지가 내재된 열린 가능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로 수백 만 관객이 하나의 사회적 이슈에 주목했다는 사실은 이제까지 이데올로기적으로 구분됐던 특정 주제에 대한 정의가 서서히 와해되는 혼란기의 징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신세대가 열광하는 꽃미남 현상이 이성애적 가치에 도전하고 있듯이 말이다.

趙翕필명 1953년 서울생.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최근 저서로 『영화가 정치다』 등. ceehcee@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