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Cinderella)의 원어(原語)인 상드리용(cendrillon)은 부엌데기, 의붓딸처럼 혹사당하는 소녀라는 뜻이다. 콩쥐팥쥐 유형의 범세계적 동화로서 발레의 소재로도 일찍부터 사용한 신데렐라는 20여 년 전 마기 마렝(Maguy Marin)이나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Hametovich Nureyev, 1938~1993)의 잘 알려진 버전들을 비롯하여 계속 새 버전이 탄생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는 프랑스의 장크리스토프 마이요(Jean Christophe Maillot)의 안무작으로서, 지적인 해석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이요는 동화 속의 인물들이 성인 캐릭터로 변신하여 사랑의 감정을 분출토록 하는 본인만의 장기를 발휘하였다. 일반 관객을 염두에 둔 성숙한 이미지들은 동화의 아동 독자들이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다층적으로 처리하여 신데렐라의 여성성이 뚜렷하고 사랑에 관한 상상력 역시 새롭게 보인다.

본래 신데렐라의 생모는 스토리 흐름에 일반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치는데, 마이요는 도리어 생모 사후 그녀를 요정으로 환생시켰다. 생모는 가족들 옆에서 작품의 방향을 트는 주역으로서, 또 계모가 안주인인 한 가정의 배후 동력으로서 신데렐라를 보살피고 남편을 수시로 환기한다. 신데렐라의 처지에 가슴이 저리는 생모는 능동적 수호신으로 탈바꿈하여 안도감을 주는 한편 아버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여성성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마이요 버전이 다른 발레 버전이 시도하지 않은 생모의 환생과 아울러 동원한 색다른 장치는 페티시즘(fetishism) 물건에서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이다. 계모가 잿더미에 흩뜨려둔 콩을 골라내야 하는 신데렐라에게 요정은 콩더미에 발을 얹게 해 그것을 금가루로 변화시킨다.

마이요 판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유리구두 대신 금가루를 묻힌 발레슈즈를 신는데, 이러한 구상은 이성애적 관심이 자연스레 신데렐라의 발에 집중하도록 한다. 발은 그에게 성장 에피소드로 두드러지는데, 신데렐라와의 재회에서 발이 촉발하는 관심은 이성애로 확장하면서 왕자가 정서 면에서 성인으로 성숙하는 촉매제이다. 이런 때문에 <신데렐라> 제3막에서 신데렐라과 왕자가 재회한 순간의 2인무는 짧지만 사랑을 매우 밀도 높게 찬양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천진무구한 동화 속 인물들의 환상적 사랑가를 넘어 현실 가까이에서의 공감을 살릴 수 있었다. 이처럼 고전발레에서 터부(taboo)시 되는 정서를 무리 없이 해체시키는 마이요의 발상은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마이요의 신데렐라는 무대디자인과 의상에서 현대적 감각이 완연하다. 약간 일그러진 흰 청포묵을 연상케 하는 대형 육면체들을 배경 장치로 설치하고 강렬한 색감의 가벼운 망사가 여성 출연진들의 전신을 휘감았고 아버지는 캐주얼한 정장을 착용하였다.

2000년 국립발레단이 안무한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연전에 성남아트센터에서 올린 그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고전발레의 테크닉과 양식을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도 품격을 유지하는 한편 작품을 이 시대의 정서에 밀착시키는 것은 마이요의 특기이다. 이 일련의 작품들에서 발레 무용수들은 무대 위의 등장인물로서보다는 현실적 인물로 실재하는 느낌이 더 짙다.

마이요는 20여 년 전에 사고로 발레 무용수를 그만 두고 안무자로 전신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끝없는 상상력뿐만 아니라 고전-보편과 현대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기하는 해석력으로 보아 그는 유럽의 톱 안무가의 한 사람으로 꼽힐 만하다.
여성성과 현대성을 축으로 신데렐라는 어른스러워졌다. 이번의 <신데렐라>에서 김주원은 생모와 요정이라는 대조적이어서 만만치 않은 1인 2역으로 공감을 선사하였고, 상대역 장운규는 예민한 부성애를 유연하며 훤칠한 움직임과 과묵한 연기력으로 형상화하면서 온정어린 시선을 모았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통상적 발레 양식과 거리를 두면서도 격을 지키는 작업이 이제는 국립발레단의 단원들에게 상당한 체질이 되었다는 판단을 갖게 한다. 앞으로 국립발레단이 펼쳐 보일 잠재력은 그만큼 크다 하겠다.

이미지 제공_ 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