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봄비가 내리는 저녁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예술감독 김보현, 독일 두이스부르크시(Duisburg市)의 현대음악센터 공동 감독인 게르하르트 슈테블러(Gerhard Staebler)와 심근수가 젊은 작곡가들을 위한 워크숍 연주회 <봄의 꿈> 무대를 펼쳤다. 이 날의 새로운 시도는 하나의 작품을 공동으로 창작하는 것이었다. 그 작업은 심근수와 슈테블러, 김보현이 각자 1개 악장씩을, 제자들이 4개 그룹으로 나눠 그룹 당 1개 악장씩을 창작한 뒤 이를 모자이크처럼 다시 엮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연극과 문학, 숫자 등에서 추출한 그래픽 기보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러나 그들의 공동 작업 과정을 보지 못하고, 그래픽 기보 등 작품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무대에 올린 작품만 봤던 필자에게 그들의 의미 있는 시도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음악은 소리로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미학도 바뀌어 이젠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보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음을 다루는 방법도, 음의 소재도 달라졌다. 그리고 음악에 사용하는 소리의 범위는 확장되었다. 물론 그 구조가 변화한 부분도 있지만 소리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는다. 잘 알려진 대로 확장된 소리에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는 연주회장의 소음도 포함시켰다.

-김보현-

이번 음악회에서도 소리에 많은 노력을 쏟은 것이 보였다. 현악기 연주에 하모닉스(harmonics) 줄 위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고 진동의 마디를 만들어 얻는 배음(倍音)를 많이 사용하면서 한 음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켜 그 소리에 주목하게 하는 것, 현악기이기에 가능한 미세음정을 사용하고, 가사 없이 모음으로만 혹은 감탄사로만 노래하는 음악, 이 모두가 음에 집중하며 음의 변화를 보게 하는 연주회였다. 작곡자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음 하나를 만드는지, 그리고 음과 음의 관계에 대해 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었다는 심근수씨의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한슬리크(Eduard Hanslick, 1825~1904)의 『음악미론』(1854)이 생각난다. 그는 19세기 중반에 음악적 아름다움의 본질을 “오직 음들과 그것의 예술적 결합에 의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작가들이 사용하는 음이 달라졌다.  

이 날 선보인 새로운 소리에는 무대 위를 걸어가는 다양한 소리, 피아노 뚜껑을 모두 덮고 타악기처럼 치는 소리, 현악기 몸통을 치는 소리 등이 있었다. 악기뿐만 아니라 성악에서도 새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중얼거림, 한숨, 숨 가쁜 소리, 웃음소리, 헐떡이는 소리, 혀로 똑딱거리는 소리 등 입으로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을 소재로 하여 노래를 하거나 소리를 냈다.  

게르하르트 슈테블러의 새로운 소리 만들기는 청중의 동참을 요구하였다. 종이 피리(일명 뱀 피리)를 청중에게 나누어 주고 그의 지휘에 따라 각자의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노래의 리듬을 소리 내게 했다. 단지 소리와 쉼으로 긴장과 이완을 표현하게 하였다. 그리고 콩이 든 풍선을 흔들게 하여 지휘에 따라 점점 세게, 점점 여리게, 갑작스런 피아노음악악보에서 여리게 연주하라는 말 등으로 우리 주변의 다양한 소리가 음악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청중은 새로운 시도에 동참하는 것이 즐거운 듯 했다.

김보현이 소프라노와 첼로, 피아노로 연주한 <미지무>는 독특한 음향을 선보였다. 피아노와 첼로, 성악이 내는 음들이 따로 또는 함께, 혹은 서로 교차하면서 독특한 음향을 만들고 신비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함께 연주한 성악은 노래라기보다 소리내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연주가 끝난 후 작곡가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옛 시조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인 감탄조의 어휘를 선정하여 노랫말로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몇 어휘들을 음성적, 음향적으로만 활용한 시도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으며, 현대 성악 음악의 전문 연주가인 엘렌 아아가르드(Ellen Aagaard)의 역량이 돋보였다.
그리고 심근수의 피아노와 현악 3중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 <가능한 삶으로부터>를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음악의 한 부분에 릴케(Rilke, Rainer Maria, 1875~1926)의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라는 시를 접목한 행위 음악”이라고 작곡자는 말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슈테블러와 심근수는 100개의 종이컵에 흙과 튤립 구근과 릴케의 시를 쓴 종이를 담아 무대 위에 놓아두는 동작을 진지하게 행하였다. 그동안 현악기는 한 음을 느리게 그리고 아주 조금씩 위로 밀어올리고 있었다. 이날의 행위음악은 무엇을 의미하였을까? 음악과 함께 봄의 향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연주가 끝나고 나눠 받은 튤립 구근과 릴케의 시를 음미하며 그 꽃이 피고 질 때까지 그 음악회의 느낌을 혹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일까?

학생들에게 가끔 현대음악 연주를 보고 느낀 점에 대해 질문을 한다. 대체로 돌아오는 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과 현대음악이 청중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많다. 이날 음악회를 보고 느낀 것은 현대음악도 청중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새로운 음을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사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오늘의 청중이 과거의 듣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고 선뜻 다가가지 못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모차르트의 징슈필(singspiel) 독일어로 노래의 연극. 오페라의 한 장르<후궁으로부터의 유괴Die Entfuhrung aus dem Serail, K.384>의 초연을 본 요제프 2세(Joseph II, 1741~1790)의 말이 떠오른다. “친애하는 모차르트, 음이 너무 많은 것 같소.” 오랫동안 성악음악에 종속되어 있었던 기악에 무언가 말할 것을 부여했지만 청중은 ‘너무 많은 음’을 들었던 것이다. 현대음악 퍼포먼스를 보고 ‘너무 적게 사용된 음’을 생각하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이미지 제공_ 김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