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란 무엇인가? 무용이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대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빛이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 방식은 오늘날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

 - 김성희, <페스티벌 봄> 디렉터

김성희 디렉터는 페스티벌 봄이 일종의 질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과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라는 물음인 셈이다. 물론, 이 거창한 문제의식이 예술계의 중력장을 넘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넘어설 의지가 있는지가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이는 다원예술이란 전략적인 명명, 혹은 다원예술 내부에서 작용하는 각종 힘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 축제는 2007년 <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의 요란스러움이 많이 가신 자리에서 시작됐다. 이는 다분히 양가적인 지점이다. 행사가 3년째를 맞아 안정적인 입지를 확보했다는 의미일 수도, 최초로 거품이 빠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주간 진행된 15개의 작품들은 최소한 세계예술계의 혁신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취지에는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막작 리미니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공연, <카를 마르크스 - 자본론 제1권 Kal Marx : Das Kapital, Erster Band>은 예상대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자본주의를 가장 맹렬하게 분석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꿈꿨던 마르크스(Kal Marx, 1818~1883) 를 소환하는 것만큼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세미다큐라 불리는 연출방식, 즉 직업배우가 아닌 이들을 무대에 올려 자본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 것도 신선했다. 연극의 존재방식에 대한 물음이면서, 현실에 대한 가장 밀착된 물음이라 할만 했다.

에미오 그레코(Emio Greco)와 피터 숄튼(Pieter C. Scholten)의 <지옥HELL>역시 상당한 주목을 이끌어냈다. 대중문화의 양식을 차용한 도입부의 캬바레 장면에서부터 모든 무용수들이 베토벤 5번 교향곡과 함께 누드로 무대를 누비는 종장까지, 너무나도 아름다운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에미오 그레코는 “지옥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천국은 매우 지루한 곳이지만 지옥에서는 뭐든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공연을 만들었다”고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임민욱의 작업이 매우 흥미로웠다. 한강에 띄운 유람선 속에서 관객들은 상황의 일부가 된다. 음산하면서도 기괴한 음향이 가뭇없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유람선은 끊임없이 조명을 사방에 뿌려댄다. <에스오에스S.O.S>라는 프로젝트 명에 걸맞게 그 빛들은 한강의 물결 속에, 서울 하늘 위에, 강변의 도로와 건물들에 유령처럼 부딪힌다. 선장이 종종 의미도 와 닿지 않는 밑도 끝도 없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와중에, 배는 몇 차례의 사건을 맞이한다. 노들섬에서 예술센터가 들어서게 되어 밀회장소를 잃어버리게 됐다는 연인들의 질주를 만나고, 잠수교 북단 낚시터에서는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사회가 추방한 이름 없는 존재들이 벌이는 거울시위대의 아우성과 조우한다. 양화대교 아래 주차장에서는 비전향 장기수 출신의 누군가가 들려주는 얼핏 강박적으로 보이면서도 쓸쓸한 증언을 마주하게 된다. 한강의 기적에서부터 한강 르네상스까지 관객들이 반추하는 동안 유람선의 서치라이트는 한강변의 불도저와 공사장을 반복적으로 비춰낸다. 작가의 말처럼 “이미 본 것 같고”, “벌써 사라진 것 같은” 뒤숭숭한 시공간 속에 기묘한 체험을 몸에 새긴 관객들은 사라져 가는 것과 사라진 후에 생길 것들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귀가했을 것이다.

정금형의 <일곱가지 방법>은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방식이 당혹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아무런 음향효과 없이 배우 홀로 무대에 올라 몸을 지우고 다시 덧씌우는 동작들은 객석의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마치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Paul Cronenberg)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행위들은 성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기묘한 마임이자 변형된 인형극이라 할 만하다.

페스티벌 운영상 몇 가지 아쉬운 지점들도 있었다.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 감독의 <이념적 고물로부터의 뉴스: 마르크스-에이젠슈테인-자본론Hachrichten Aus der Ideologischen Antike: Marx - Eisenstein - Das Kapital>의 경우 9시간이 넘는 작품이 자막 없이 상영되어 관객들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홈페이지는 한때, 회원가입 이후에야 콘텐츠를 볼 수 있게 설정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사용이 불편하다는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구비되어 있다던 페스티벌 아카이브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최소한 축제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구비하고 열람이 가능한 상태로 전시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기사 스크랩 자료를 포함한 파일 철 두어 개가 전부였다. <카를 마르크스 - 자본론 제1권>에서 20대(23세) 공산주의자 자샤 바르네케(Sascha Warnecke)를 소개하는 Revolutionaer(혁명가)를 개혁가로 번역한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지점이었다.

2009년 3월부로 다원예술매개공간이 사라졌다. 명목상으로는 지역 다원예술 활성화를 위해 매개공간을 지역으로 흩뜨려 놓은 거라지만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물론 <페스티벌 봄>의 취지는 정책상의 다원예술 분야와 그다지 긴밀한 연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원예술정책의 후퇴는 어쩔 수 없이 <페스티벌 봄>의 다음 행보를 궁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