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관객들은 부조리극(不條理劇)을 어떻게 생각할까. 다소 난해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조리극의 대표적인 베케트(Samuel B.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1952)를 생각하면 의외로 대중적이기도 하다.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1909~1994)의 부조리극도 관객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데 아마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조리극은 서양 실험극으로 소개되어 들어왔다. 어렵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비논리적인 우리의 전통 연희(演戱)와 통하는 면이 있어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은 편이다. 올해는 이오네스코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라 그의 작품을 실컷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성남아트센터, 게릴라극장, 스튜디오76에서 5월 초까지 다양한 이오네스코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페스티벌은 〈수업La Lecon〉(1951), 〈의자Les Chaises〉(1952) 같은 익숙한 작품 외에 <의무적 희생자Victimes du Devoir>(1953) 같은 초연 작품도 접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이오네스코의 <수업>은 교수의 불완전한 언어 구사로 학생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자 그것을 참지 못한 교수가 결국 학생을 살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언어 소통의 불가함이 어떻게 폭력성으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러 연출가들이 공연한 바 있는 이 작품은 이번에 이윤택(李潤澤)이 연출을 맡았다. 이윤택 표 <수업>은 다른 연출가들의 공연과 차이가 있을까. 확실히 강렬함을 남기는 데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연희단거리패’(이하 연희단) 배우들의 연기력과 이윤택의 해석력이 합작한 결과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작품을 거칠게 다룬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교수 역할을 맡은 이승헌은 연희단의 대표배우답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부담스러운 대사를 실수 없이 전달함으로써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2008년에 그는 이미 4시간 반짜리 <원전유서The Original History Note>에서 많은 양의 관념적 대사를 깔끔하게 소화해낸 경험이 있어 대사처리 능력에서 탁월함을 자랑했다. 언어를 통한 소통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의 이런 능력은 이 작품에서 중요하다. 이는 상당히 아이러니컬한 상황인데, 배우가 모순덩어리인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언어가 지닌 이중성이 제대로 전해진다. 학생 역할을 맡은 강영해도 새로운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수의 폐쇄적 모습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연출가 이윤택이 서양의 고전을 해석해 낸 솜씨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미 빛을 발한 바 있듯이 그만의 명확한 해석력은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언어의 불완전함은 결국 교수 스스로 ‘언어는 직관(直觀)’이라는 궁색한 논리에 이르게 하고, 다시 그보다 아래 숨어 있는 본능을 일깨우며 폭력의 본성을 부끄럼 없이 드러낸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럴듯한 언어는 광폭한 본능을 가리는 포장이라는 점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본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이 작품 후반부가 과감하게 투자된다. 하녀하지은 분가 교수의 잘못을 지적하는 입장에서 결국 본능에 충실한 입장으로 변화하는 것 역시 이러한 측면을 반영한 것이다. 교수가 학생을 강간하고 살인하는 장면은 거의 피의 제의처럼 원시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로 표현된다. 여기서는 부조리극이라기보다는 잔혹극의 느낌이 강하다. 교수는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낸 살인행위에 반성하는 듯하지만 결국 다시 살인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연극<수업>포스터-
그러나 자칫 작품이 지닌 폭력성의 의미가 성적(性的)인 의미로 고정되는 듯해서 불편하기도 하다. 의미 전달의 순서가 성적 상징성이 폭력성으로 확산되는 방향이어야 보다 효과적이다. 성적 의미로 일상성과 폭력성 두 가지를 취하고자 한 연출의도는 재치있지만 그것을 작품에서 잘 표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잔혹함과 강렬함만이 전면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연출의 해석이 분명한 것은 좋은데 작품의 다양한 함의를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부작용을 극복하면서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윤택의 작품을 봐 온 관객이라면 그만의 방식에 매력을 느끼는데 이 작품 역시 그의 장점이 잘 나타나 있지만 손쉽게 그 장점을 택함으로써 작품의 섬세함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