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퀴즈 한 문제 풀고 시작해보자! 빈민가 출신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 감독 대니 보일(Danny Boyle)은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의 초반에 문제를 던지고 정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있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영화에선 지지리 가난해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18세 인도 청년 자말 데브 파텔(Dev Patel) 분이 대단한 식자(識者)들도 중간에 포기한 텔레비전 퀴즈쇼의 문제들을 죄다 맞추고 결국은 거액의 상금을 받는다. 그리고 그가 문제를 맞힐 수 있던 이유를 알려주는데 바로 최하위 계층민으로 겪어야 했던 삶의 고비 속에 문제의 정답이 있었고,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행운이 주어져서란다.

이 영화는 2009년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의 8개 부문 수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꼬리표가 보증하듯이 만듦새가 좋다. 우선, 복잡한 플롯구조를 선택하여 평이한 플롯구조가 줄 수 있는 지루함을 피하고, 뛰어난 편집력으로 복잡한 플롯구조가 초래할 수 있는 편안한 서사읽기의 파괴 가능성을 극복하고 있다. 도입부터 현재 상황인 경찰서 취조 장면과 과거에 진행되었던 퀴즈쇼 스튜디오 장면을 평행편집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시제는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주인공의 과거 삶으로 한 번 더 돌아간 후에, 현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처럼 복잡한 시제 구성에 규칙성을 부여하면서, 대과거 시간에서 벌어지는 주인공 자말의 성장이야기를 내러티브로 완성시킨다. 그리하여 설령 중간에 시제나 행위에서 불일치하는 이미지들이 마치 볼만한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삽입되어 있어도, 보는 이들은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는 진행자인데, 그는 퀴즈쇼에 나와서 최종단계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로 자말처럼 빈민가 출신이다. 그런 그가 출신 성분이 같은 자말에게 동정심을 갖기보다는 거짓 답안을 넌지시 알려주면서 그가 자신의 위치로 올라서는 것을 방해하려고 한다. 퀴즈쇼를 통해 부를 획득하고 진행자의 자리에 올라 계급 상승을 경험한 그로서는 그것이 자신만의 능력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거짓 답안을 흘린 진행자의 심리를 파악한 자말이 오히려 정답을 말하자, 진행자는 자말을 의심하고, 사기죄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그런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동료에게 “이 쇼는 내 쇼야”라고 악을 쓰는 장면은 앞서 보여준 그의 태도들과 함께 배제를 통한 계급 유지와 인정 투쟁으로 유지되는 경쟁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빈민촌, 고문 수사, 종교분쟁, 조폭, 불법 총기 사용 등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인도사회의 모순들은 분명히 자말과 형 살림 마드허 미탈(Madhur Mittal) 분, 그리고 라티카의 삶을 관통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감독은 빈민촌이 화면에 ‘너무’ 아름답게 담기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살육을 스케치하듯 지나치고, 10대 중반의 형 살림이 총기를 소지하게 되는 과정, 라티카가 고아 소녀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그리고 자말의 성격이 일곱 살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착하게 그려지는 것에 대해 무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서 인도의 사회적 모순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무책임하게 바라보고 서양 관객이라는 이방인의 시선 앞에 볼거리로 배치할 뿐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