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서울 사간동 소재에서 이종구 작가의 <국토 : 세 개의 풍경展>이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10년 동안 천착해 온 주제를 세 개의 시선으로 나누어 다뤘다. 이 시선은 그가 오지리를 통해 견지했던 현실비판 그것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지켜보면서 그는 다시 오지리로 귀환하였고, 오지리 소의 눈빛과 몸으로 문제의 핵심에 다가섰다. 검은 대지 위에 선 건강한 한우가 소재인 <검은 대지> 연작은 시커멓게 타들어간 농촌의 상징적 풍경이며, 한우는 그 위에 선 농부들의 초상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대추리 들녘과 인물들로 채워진 <살림>과 역사적 풍경으로서의 <만월> 또한 팍팍한 현실의 농촌과 유구한 역사의 현장을 대비시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미학의 비판적 육성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현실미학이 이미 1982년 창립동인으로 참여한 임술년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예술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데서 출발의 의미를 갖고자 한다”고 선언한 이 동인에 이종구가 있었다.

임술년은 당시 서구적 극사실주의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미술 경향, 주로 일상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 회화를 극복하는 대신 비판적 현실주의의 사실성을 보여주었고, 그들은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현실의 수용과 가치관의 성찰, 그리고 새로운 전통의 모색”이라는 미의식을 성취하고자 했다. 임술년은 1980년대 후반 해체했지만, 송창, 이명복, 이종구, 황재형 등 동인작가들이 현재까지 민중미술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종구의 작업은 오지리에서 시작했고, 현재도 그렇다. 오지리는 그가 27년째 일구어 온 현실주의 미학의 대지이자 본향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오지리에 당대적 삶을 직접 투영했으며, 회화적 진실을 그렸다. 오지리는 농투성이로 살아가는 모든 민중들의 생생한 거울이자 시대의 벽화, 혹은 핍진한 풍경에 다름 아니다. 그의 작품들이 민중미술로서의 정치성을 타전하는 미학적 지점은 그래서 단단하다. 

1990년대 이후 이종구는 오지리 밖의 현실로 눈을 돌린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오지리 풍경을 통해 당대 농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뤘다면, 그 이후엔 오지리를 품고 있는 산하와 세계화, 그리고 일상을 파괴하는 폭력에 관한 것을 다뤘다. 그의 비판적 현실인식은 농촌에서 국토, 세계화 그리고 국지전의 폭력으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이번 전시는 농촌과 국토, 세계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언급했듯이 세 개의 풍경은 검은대지, 살림, 만월이라는 세 개의 상징으로 표상된다. 그가 제시한 세 개의 상징어는 지금의 현실이면서 동시에 과거와 이어져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개의 풍경을 통해 이종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농촌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쌀직불금을 지급하는 사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들썩인다. 2008년 제작한 <검은대지>의 작품 주제는 한우다. <검은대지>는 한우의 눈빛으로 쇠고기 수입과 ‘맞짱’ 뜨려는 의도를 깔고 있는 듯하다. 붓의 힘찬 긋기와 묘사로 완성한 한우의 당찬 맵시, 그리고 그 몸짓에서 ‘맞짱’의 회화적 힘이 느껴진다. 전시장 가장 낮은 층에서 이 소들은 가장 뜨거운 숨소리로 세계화의 폭력과 맞짱 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싸움 소’의 우직한 초상을 보라!
<살림>의 언어들은 <검은대지>와 많은 부분 중첩된다.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대추리의 기억>(2009)은 강제이주에 대한 오마주(hommage)이고, <풍경-봄, 여름, 가을, 겨울>(2009)처럼 델타항공 그림자가 대지를 덮듯이 대지가 검게 변할 것을 나타낸다. 눈에 띄는 작품은 <빨래> 연작이다. 일명 농부들의 유니폼인 ‘몸뻬’와 ‘추리닝’, 꽃무늬 셔츠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화면 귀퉁이에 붙여놓은 지적도와 토지대장과 합쳐져 그 의미가 증폭한다. 농토의 주인이 도회지 큰손들로 바뀌면서 농민들의 삶터가 붕괴직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빨래> 연작은 농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상실과 실존을 은유하기에 색감이 더 선명하다.

백두대간과 지리산을 그려왔던 그가 이번에 선 보인 국토 풍경은 만월 아래 드러난 검은 풍경으로서의 대지이다. 그러나 <부여-낙화암>(2007)과 <풍경-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간극은 ‘사실성’의 차이다. 명상적 풍경의 <부여-낙화암>이 달밤의 초현실적 비경이라면, <풍경-봄, 여름, 가을, 겨울>은 세계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낮 풍경의 현실이다. 같은 풍경이라 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미와 맥락을 재구성할 수 있다. 이종구의 작품을 읽기 위해선 현실미학의 키워드를 포착해야 하고, 그것들이 혼합해서 뿜어내는 육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미지 제공_ 학고재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