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시장에 가본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꽤 오래된 듯하다. 시장에는 푸짐한 인심도 있지만 고달프고 악착같은 삶의 그림자 같은 게 깔려 있다.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사소한 이해관계에도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람들, 얼마간의 급전을 빌리고는 일수를 찍어 돈을 갚아나가는 사람들, 그저 맨몸 하나를 움직여 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거기에는 동기간 이상으로 따뜻하게 서로 돕고 사는 시장사람들의 인정도 있지만, 첨단 자본주의의 질주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이 더 많다.

연출가 위성신(魏聖信)은 그들의 모습을 무대에 올렸다.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KBS 1TV에서 방송을 찍는 기분으로, 시장의 모습을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극장>의 주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냥 본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자체는 아무런 가감 없이 재미와 감동을 준다. 인생은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것. 연극 <닭집에 갔었다>가 말하고자 것이 바로 이것이다.

110분의 꽤 긴 연극을 연출가는 쉽게, 자세하게, 무엇보다 친절하게 엮어나갔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시장바닥의 넋두리와 한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많은 조연들이 1인 다역을 소화해내었다. 앵벌이에서 칼장사까지, 다방 레지에서 백화점 여자까지 주변인물들이 벌이는 온갖 세태풍경을 가볍고 코믹하게 터치한 1인 다역 방식에 연극은 더욱 흥성해졌다. 1인 다역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상업광고도 있지만, 배우의 변신이야말로 무죄이자 마술이다. 물론 연극은 장기자랑이나 패션쇼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1인 다역의 연출기법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고 빠른 장면 전환의 동력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연극의 정수를 다 보여주었다고 할 수 없다. 전체적인 극의 흐름과 1인 다역 사이의 적절한 배합에 대해서는 연출가 자신의 고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 많은 역을 소화한 단원들의 열정에 박수를 아낄 필요가 없다. 바둑을 복기하듯, 이 무대를 스쳐간 숱한 인물들의 세목을 기억해본다. 파지 할아버지, 도라지 할멈, 고무장갑 판매상, 보험 외판원, 예비군, 고시생, 야쿠르트 아줌마 등등. 그들의 군상을 반추해 보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이런 종류의 서민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충 이런 이유를 들 것이다. 사는 것도 힘든데 왜 모처럼 보는 연극에서까지 이런 모습을 보아야 하느냐. 집에서야 밥을 먹지만, 굳이 외식하는 자리에서까지 밥을 먹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연극은 TV드라마와는 다른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 삶과 예술은 다른 것이며, 연극은 일상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더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 삶의 다른 측면을 표현해야 하지 않느냐 등등. 필자 또한 이런 견해에 가끔 공감한다. 서민의 애환에 대한 코믹한 접근이 시립극단의 단골 메뉴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극단의 존재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연극에는 참으로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어린 딸에게 맡겨 놓고 간 집 열쇠 하나가 그것이다. 엄마는 돈 벌면 곧 집에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이 열쇠를 가지고 있어달라고 한다. 어린 딸은 그 열쇠를 목에 걸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성장했고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볼펜을 꺼내 들고 팜플렛의 빈 여백에 열쇠라고 써두었다. 슬픔이자 희망이었던 그 열쇠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연극 도중 메모를 해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연극 마지막 부분에서는 박승숙(朴承淑) 인천 중구청장의 깜짝 출현이 있었다. 한 기초단체장의 연극 출현이 서민에 대한 격려이자, 연극인에 대한 격려로 읽혀졌으면 한다.

이미지 제공_ 인천시립극단

金挽秀 1960년 전주생. 인하대 문화콘텐츠전공 교수. 저서로 『문화콘텐츠 유형론』, 『문화이론과 문화콘텐츠의 실제』 등. mskim20@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