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의 슬픔(ガラスの地球を救え)』(1989)은 일본 만화계의 거장 데즈카 오사무(手塚治?, 1928~1989)의 수필집이다. 일본에서 “만화의 신”으로 칭송받는 데즈카는 단막 개그 위주였던 전후 일본 만화에 스토리 개념의 도입과 영화적 연출로 스타일적 혁명을 일으키고, 인기 아동만화부터 굵직한 성인만화까지 수많은 걸작들을 그려냈다. 또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했고, 걸출한 후진들을 양성해 만화, 애니메이션계는 물론 일본 문화계와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한편 그는 의사면허를 소지하고도 만화의 길을 선택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생전에 만화작품 외에도 만화작법서, 자서전, 회고록, 수필집 등 다수의 책을 썼는데 그중 그의 사후에 출간한 유작 수필집이 『아톰의 슬픔』이다. 그는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교육, 사회, 역사 등 폭넓은 부분에 걸쳐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던진다. 이런 포괄적인 문제의식은 한 사람의 사회인, 자연인, 예술인으로서의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세계와 인생관을 관철하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 말 일본인 독자를 대상으로 쓴 책이 21세기 한국의 독자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그 날카로운 통찰력과 고뇌하는 현명함, 따뜻한 인간애가 버무려진 시선 때문일 것이다. 

『아톰의 슬픔』에서 데즈카 오사무는 개인적인 경험담과 작품 해설을 통해 사회와 인류, 지구를 위협하는 현대의 각종 문제들을 고찰, 반성하며 때로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데즈카 본인의 독특한 성장환경과 작가로서의 압도적인 역량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기도 하지만, 수필 형식의 담백한 문체 덕분에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솔하게 다가오는 설득력을 가진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몸이 약해 따돌림을 당했고 자연 관찰과 그림 그리기를 즐겼던 섬세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군국주의 일본에 어울리지 않게 ‘약한’ 신체와 정신을 지닌 소년에게 전쟁과 전시교육은 끔찍한 체험이었고, 이것은 그가 철저한 반전주의와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경계의식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종이 요새(紙の砦)」(1974)라는 단편만화에서 처참한 피폭실화를 그리기도 했다.) 동시에 당시 중학생이었던 자신 역시 군국주의 교육의 영향에 물들었음을 고백하며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무서움을 고발한다. 그리고 역사의 죄악과 폭정을 잊은 채 과거를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추억하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닌) 복고주의적 성향을 극히 경계한다. 이것이 사회인으로서 데즈카 오사무의 면모라면, 자연인으로서 데즈카 오사무는 겸허와 경이로 자연을 바라보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는 철학자다. 필명 오사무(治?)본명 발음도 같음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시절부터 곤충 관찰을 좋아했는데, 수많은 작은 생명들의 생과 사를 “지난날 집 근처 벌판에서 벌어졌던 이런저런 작은 지옥들”로 묘사하며 살아있음의 기쁨과 슬픔을 배웠다는 구절은 인상 깊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 자연과 우주는 목가적 낭만주의로 물든 대상이 아닌 잔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이렇게 대상의 다면성을 긍정하고 탐구하는 다원주의야말로 데즈카 작품의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귀여운 정의의 로봇이라는 이미지로 친숙한 아톰마저 어른들의 학대와 인신매매의 대상이라 미국에서는 삭제 조치된 적도 있고, 평론가 나츠메 후사노스케(夏目房之介)의 분석에 따르면 너무나 곧고 번듯한 캐릭터라 오히려 작가 본인은 탐탁찮게 여겼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부처님의 일대기인 『붓다(ブッダ)』(1972~1983)를 그리면서 답답하고 괴로웠다는 데즈카의 고백이나 “아톰은 악한 마음이 없으니까 완전하지 않다”는 『철완 아톰(鐵腕アトム)』(1952~1968)의 명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악(惡) 역시 데즈카에겐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으며 『아톰의 슬픔』에서도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테마로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아톰의 슬픔』은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와 닿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는 데즈카의 초기 인기 아동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아톰(アトム)>(1963), <사파이어 왕자(リボンの騎士)>(1967~1968), <밀림의 왕자 레오(ジャングル大帝)>(1965~1966)가 방영되었고, 『철완 아톰』, 『불새(火の鳥)』(1954), 『블랙잭Black Jack』(1973~1983) 등의 대표작이 정식 출간된 덕분에 한국의 독자들은 데즈카의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 언급되는 성인극화 『아돌프에게 고한다(アドルフに告ぐ)』(1983~1985)와 『엠더블유(ムウ)』(1976~1978) 등 극단적 형태의 악을 탐구해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의 진리를 성찰하는 말년의 역작들은 출간되지 않아 안타깝다. 사실 한국만화계에는 데즈카 본인의 작품보다는 데즈카에게 사사(師事) 받은, 혹은 대항했던 작가들의 만화가 끼친 영향이 훨씬 크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문법, 스타일, 산업구조를 형성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한 그의 위치는 변하지 않으며, 만화사적 관심을 떠나서라도 그가 비범한 개인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안정된 의사보다 만화가를 선택한 청년, 잿더미 일본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꿈꾼 몽상가, 존경스러운 스승, 타파해야 할 우상, 전쟁을 증오하면서도 전쟁을 이야기하는 평화주의자, 관대하면서 단호한 철학자, 자연인, 일본인, 만화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이것이 전부 데즈카 오사무라는 인간이고, 그의 마지막 목소리는 시공과 국경을 넘어 독자의 가슴에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