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흔히 개항장이라 불리는 중구 일대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중구청에서 수년  전부터 시작한 역사·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은 2단계에 접어들었고, 옛 창고 건물 등을 리모델링하여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인천아트플랫폼(Incheon Art Platform)도 올 10월 개관을 목표로 한창 준비 중이다. 옛 일본18은행시지정유형문화재 제50호을 정비하여 개관한 인천근대건축전시관이나 자장면의 발상지라는 공화춘(共和春) 건물을 이용한 자장면박물관 개관 계획 등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몇몇의 중국음식점만 명맥을 유지하던 10여 년 전과 달리 중국음식점을 비롯해 각종 상품점이 들어섰으며 차이나타운을 알리는 패루(牌樓)와 공자상(孔子像)도 자리를 잡는 등 한결 활기찬 거리로 변모했다. 공중에 매단 붉은 등과 기둥, 기둥에 붙은 황금색 한자는 그 분위기를 상징한다.

이번에 발굴한 고려시대 궁궐 흔적은 명실상부한 강도(江都)시기(1232~1270)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로 천도한 시기의 실상을 파악하는 실마리이자 인천의 역사를 한층 풍부하게 해 줄 좋은 유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추가적인 발굴과 효과적인 보존, 관리 대책은 문화재청과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추진해가야 할 몫이겠지만 시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현재적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죽은 유적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고려궁지 출토유물-  

문학산성(文鶴山城)도 이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1986년 인천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으나, 조사다운 조사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지표조사를 실시하고, 문학경기장 건설, 시설건립 등의 이유로 2002년, 2008년 인하대박물관이 문학산 주변지역을 몇 차례 조사한 적은 있지만, 문학산성 자체에 대한 조사는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누가, 언제  문학산성을 쌓았는지조차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그저 일반에서는 비류(沸流)1가 도읍한 미추홀(彌鄒忽)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말기 신라(BC57∼AD935)에서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미추홀에 정착한 비류의 존재를 인천 역사의 첫머리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를 담고 있을지도 모를 문학산성은 조사의 손길에서도, 시민의 발길에서도 멀리 떨어진 채 잊혀져가고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우물과 『논어(論語)』를 쓴 목간(木簡)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을 확인하고 복원계획이 있는 백제(BC18~AD660) 때의 계양산성(桂陽山城)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이 시점에서 개항도시 인천의 이미지를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인천이 1883년 근대의 조류에 휩쓸려 개항한 것은 당시 수도인 한성과 가장 가까운 항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인천 개항을 요구했고, 당시 조선은 인천을 개항하지 않기 위해 일본과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19세기 후반 이와 같은 인천의 모습은 백제의 수도가 한성(漢城)위례성(慰禮城)에 있던 5세기 중반에도, 중국 송나라(宋, 960~1270) 사신 서긍(徐兢)이 먼 뱃길을 달려 자연도(紫燕島)현재의 영종도 경원정(慶源亭)에 이르러서야 한숨 돌리며 개경에서 있을 행사를 생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몽골침략기(1231~1273)에 강화 제포(梯浦)2에 도착하여 안도감을 느꼈을 고려의 피난민들에게도 인천은 열린 땅이었다. 인천의 개방성은 단지 1883년 개항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그보다 1천여 년 전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

인천의 정체성을 개항과 그로 인한 근대문물의 유입, 다양한 문화의 공존에서 찾고자 하는 일각의 흐름은 2001년 인천국제공항의 개항과 다문화사회로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추진 중인 이국적이고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상징하는 개항장 일대의 보존과 정비는 계속되어야 하며 인천의 문화적 정체성을 개방과 교류에서 찾는 것도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천의 개방성이 1883년의 개항에서 비롯한다고 보면 그 이전의 역사는 파편처럼 눈에 들어오고, 그것은 인천사에서 일관된 흐름을 찾는 노력을 무위로 돌려 인천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100년의 세월 안에 가두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개항장 일대의 보존과 정비는 지속하면서 고대 유적, 고려시대 유적, 조선시대 유적도 개방과 교류, 소통이라는 인천의 정체성 안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1.
주몽(朱蒙, BC37∼BC19)의 아들이자 백제의 건국시조 온조(溫祚, 재위 BC18∼AD28)의 형으로 전함.
2.
현재 강화군에 승천포(昇天浦)라고 부르는 포구가 있으나, 승천포는 개풍군 바닷가에 있는 것이고, 강화에는 제포궁(梯浦宮), 제황포(梯皇浦), 제포관(梯浦館) 등의 제포(梯浦)가 있었는데 후대에 와전된 것으로 볼 수 있음.

고려궁지 관련 이미지 제공_ (재)겨레문화유산연구원

金樂起 1970년 강원 평창생. 인천문화재단 기획경영실장, 인하대 사학과 강사. 최근 글로 「5~6세기 물길의 중심지와 도태산」 등. garadal@i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