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밥 먹기 좋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점원은 보이지 않고 티켓을 뽑는 기계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머쓱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 벽에 그 기계를 어찌 사용해야하는지, 이곳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가 친절하게 적혀있다. 시키는 대로 티켓을 뽑아 나누어진 구획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갔다. 마치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나누어진 책상이 벽을 등지고 줄지어 있었다.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버튼을 누르자 책상 앞을 가리고 있던 덮개가 열리고 누군가의 손이 뻗어 나와 티켓을 받아간다. 잠시 후, 다시 그 덮개가 열리고 드디어 무엇인가가 내 앞에 놓인다. 그것은 바로 라면이다.

이곳은 독서실도, 어느 SF영화에 나올법한 정체불명의 공간도 아니다. 이른바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위한 음식점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좁지만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대개 혼자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가면, 들어갈 때부터 반기지 않는 듯 한 태도의 주인부터, 밥을 먹는 동안 왠지 흘끔거리는 주위 사람들까지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밥을 먹는 것임에도 먹는 내내 신경을 쓰고 결국에는 쫓기듯 나오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음식점은 본래 온전히 독립된 공간이 될 수 없는 곳이다. 오히려 개방된 공간에서 의사-독립된 공간만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억지로 구획되어 부자연스러운 그 독립된 공간이 오히려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자 오는 고객들을 위한 바(bar) 형태의 좌석도,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1인씩 구획한 좌석도, 혼자 밥을 먹는 나를 모두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음식점 한 가운데에 앉아 밥을 먹는 것만큼 사실은 불편하다.

-고기촌플러스바-

소비자로서의 싱글?

사실 나는 혼자 밥도 잘 먹고 혼자 놀러 다니기도 잘 하는 조금은 뻔뻔한 인간이다. 혼자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을 때 반기지 않는 주인에게는 일부러 웃으며 친한 척 해보기도 하고, 누가 쳐다보든 말든 절대 책을 보거나 하지 않고 혼자서도 꿋꿋이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시선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낭비하는 것이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아예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간편하게 포장해갈 수 있는 음식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 먹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집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는 데에도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마트에서 포장되어 나오는 야채나 식료품들은 대부분 4인 가족, 적어도 부부 2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있다. 그렇게 되니 한번 사면 며칠간을 똑같은 재료만을 사용해야하거나, 판매 용량 때문에 사먹을 수 없게 되는 재료들도 생긴다. 특히 팩(pack)으로 파는 과일이나 기본 크기가 큰 양배추 같은 것은 며칠 마음잡고 먹을 작정을 하지 않는 이상 선뜻 사기 어려운 품목이다.

이러한 불편함을 배려한 마트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보았다. 사실은 마트 한편에 마련된 일종의 코너로, 통조림, 맥주부터 시작해서 야채나 과일까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작은 용량의 재료들을 판매하는 곳이다. 아직 다양한 종류의 물품이 구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소량 판매는 적극적으로 반길 만하다. 언제나 처리 곤란이었던 재료들, 한번 사면 사나흘은 줄기차게 먹거나 결국은 버리고 말았던 음식들을 부담 없이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도 줄 것이고, 구매 비용도 훨씬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소량판매대 앞에 서서 저녁 식사 재료를 고르던 나는 문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 혹은 혼자서 방해받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이, 사실은 앞으로 결혼 계획도 없고 계속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갈 나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까? 시장에서 ‘싱글 소비자’를 인정해준 것, 과연 이것으로 되었나?

-밥툴즈 내부(상,하)-      

1인 가구 증가의 진짜 의미

1인 가구의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시정개발연구원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서울의 1인 가구는 70만에 이르렀다. 이는 전체 서울의 가구 수 가운데 20%를 차지하는 상당한 수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의 역세권, 그중에서도 대학이나 사무실이 집중 분포해 있는 지하철 2호선 부근을 중심으로 하는 소형 주택에 거주하고 있어서, 해당 지역에는 위에서 내가 방문하였던 곳과 1인 가구 관련 점포들이 다수 분포해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1인 가구가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다양한 계층의 1인 가구는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들을 이른바 ‘싱글족(Single族)’으로 호명(呼名)해 낸 것은 바로 시장의 마케팅 전략이다.

그러나 1인 가구의 내부를 실제로 들여다보면 연령 상 1,2위를 차지하는 20~30대 이외에 세번째로 많은 수를 60대 이상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매월 100만원 미만 소득자가 46%, 10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 소득자가 31%로, 1인 가구의 대부분은 저소득층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마케팅 전략이 호명한 싱글족은 결혼이나 수입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싱글을 선택한, 이른바 ‘화려한 싱글’로 이미지화되어 실제 시장의 마케팅 전략이 겨냥하고 있는 이들이 극소수의 1인 가구를 형성한다. 1인 가구가 가시화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시장의 호명을 받을 때뿐이며,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만큼의 구매력(경제력)을 가진 극소수의 1인 가구만이 낯설지만 수용 가능한 존재로 시장은 받아들인다. 엄연히 존재하는 구매력이 없는 1인 가구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된 낯설고 불완전한 존재, 아니 어쩌면 사회적 안전망 바깥에 방치된 문제로 치부될 뿐이다.

-이찌엔 외부-

모두가 언젠간 싱글

더 이상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서의 ‘고객님’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사회에서 ‘고객님’이 될 수 없는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비가시화 되어 방치된다. 1인 가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 등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마케팅 대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싱글족은 실제로 1인 가구의 형태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이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독립적 개인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성애 부부, 혹은 이성애 결혼을 기반으로 한 4인 가족이 아닌 경우를 비정상으로 치부해버리기 십상이고 이러한 가족, 결혼 이데올로기는 구매력을 가지지 못한 1인 가구에 더욱 혹독히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싱글로 살아갈 경우, 그녀에게 적용되는 성별 가치나 안전의 위협과 같은 문제는 과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독립적인 개인이 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는 “결혼을 한 사람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결국 마지막에는 혼자가 된다”1고 이야기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녀의 평균 수명을 비교해볼 때 결혼을 하더라도 노년에는 1인 가구가 될 확률이 높고, 결혼을 하지 않고 독립된 가구를 꾸려나가는 여성 1인 가구의 수가 증가함으로써 결혼 여부를 떠나 누구나 ‘언젠간 싱글’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음식점이나 시장에서 마주하는 혼자인 사람, 혹은 옆집에 살고 있을 지도 모르는 독거노인의 생활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한 1인 가구의 형태에 맞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시장이 아닌 국가에 요구하는 것 또한 나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상기하자. 1인 가구는 시장의 마케팅 전략에 존재하는 싱글족으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내 주위에서 경험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1. 우에노 치즈코,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 2009, p18

李民胄 1981년 서울생.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석사과정 졸업. 최근 글로 「가리봉동과 재중동포의 이산문화」, 「재중동포의 상업 활동과 정체성 형성」 등. daytripper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