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춤의 재창조는 20세기 이래 한국 무용계의 해묵은 난제이다. 1980년대 민중적 무의식을 담은 춤이 새로 부상하면서 전통춤은 ‘한국창작춤’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변하였다. 지금 여기의 감각으로 시대와 만나려는 흐름이 도도하게 이어졌고, 그것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배정혜(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는 탄탄한 안무 방법론을 갖춘 몇 안 되는 선구적 안무가였으며 후학으로서는 지금까지도 극복하기 힘든 고산준령이기도 하다.

한국 무용계에서 전통춤의 재창조는 “현대화”의 요구로 나타났다. 배정혜는 이를 새로운 리듬과의 마주침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소울(Soul), 해바라기>는 전통적인 리듬과 외래의 리듬을 겹쳐 새로운 생명 박동을 찾아가려는 안무적 시도였다. 1980년대 춤 운동의 폐해는 군무 위주로 짜인 지나치게 집단주의적인 춤의 배치였다. 배정혜는 <소울, 해바라기>에서 어떻게 하면 개별적인 존재의 감각을 살리면서도 공통분모로서 전체적인 리듬을 찾아갈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었다. 과거의 유장한 리듬과 현재의 신체가 여전히 불일치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런 차이는 이제 긍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유사한 특징에 착안하여 공통적인 것을 추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차이 자체를 존중하면서 낯선 조화를 꾀하는 어떤 역설의 논리가 개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재즈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

공연 후반부장면

전반부가 첼로와 바이올린 등의 선율적 무대라면, 후반부는 피아노, 더블베이스, 색소폰 등 앙상블 전체가 개입하는 화성(和聲)적 풍경을 이루어낸다. 음악적 권능에 순순히 따라주는 안무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과연 다양한 춤 소스와 구성의 팔레트를 지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통춤을 베이스로 깔고 부분적인 리듬을 만드는 재주가 비상하다. 귀신이 장난치는 듯한 북어춤 혼령들이 북어를 먹으며 기뻐 추는 춤, 전통 제례악의 악기를 이용한 아박춤 타악기의 하나인 아박을 들고 추는 춤 등 다양한 버라이어티가 펼쳐지는데 굴절된 생명력을 한껏 돋워내는 신명의 단계로 가면서 더욱 강렬한 체험을 맛보게 한다. 무당이 사용하는 방울과 부채를 분리하거나 한꺼번에 조합하는 컴퍼지션(composition)은 눈발처럼 흩날리는 종이가루와 함께 절정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스펙터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기체처럼 숨 쉬는 재즈의 즉흥리듬에 현재적 시간이 참여하여 충만하게 차오르는 무대라고나 할까. 서사구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환영적 시간에 종속된다기보다 춤 자체의 리듬이 음악의 그것과 조우하는 현장에 초대된 즐거움이 크다. 사실 배정혜 안무는 몸과 음악이 규약과 변주로써 서로의 영역을 탐구하고 실험하면서 현대무용(contemporary dance)에 근사한 특징이 나타난다. 내년에 독일로 초청공연을 간다고 하니 더욱 가다듬는 것도 좋겠다.

이 작품은 역대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 중에서 차별성을 가질 만하다. 과거의 낡은 재현적 프레임에 매달리거나 전시적 스펙터클을 펼치기에 급급한 이전의 작품들과 분명히 구분된다. 전통적인 것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고민은 아마도 국립무용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해 어떤 시사와 각성을 던져주지 않을까. 동시대적인 것과 맞닿은 생성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안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미지 제공_ 국립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