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난징! 난징!(南京! 南京!)>의 상영은 2009년 중국 문화계에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처참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현재까지 대륙에서 1.7억 위안의 수익을 올렸다. 잔뜩 긴장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 중에는 평소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80후(後)’1, ‘90후’ 세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 측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감독이 개인에 방점을 두고 지극히 민감한 소재를 영화화한 탓에 이 영화는 태생적으로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주류’ 역사 영화는 순조롭게 상영되었고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후에는 영화국의 부국장이 직접 나서서 영화에 대한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루 촨(陸川) 감독이 이미 4년 전부터 영화의 밑그림을 그려왔다는 데서 이것이 단순한 영화 한 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는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차례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를 강행해 중일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중국인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전쟁을 둘러싼 양 국민간의 인식 차가 현저하다는 사실에 중국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일본 우익언론들이 쏟아내는 왜곡 보도에서 일본인들이 전쟁의 역사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놀랐다. 그리고 이 놀람은 곧이어 분노로 바뀌었다. 하지만 분노가 가라앉은 뒤에는 ‘곤혹스러움’이 찾아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왜 아직까지도 일부 일본인들이 난징대학살(1937~1938)과 같은 전쟁범죄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이 전쟁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한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 전쟁 발발 원인, 일본의 전쟁 참여 과정에 대해 좀 더 알고자 노력했다. 다시 말해, 역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양국 간의 첨예한 갈등이 수많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해당 역사를 연구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부가 제공한 역사 해석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직접 역사의 실체를 대면하고 스스로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다.

영화<난징!난징!>포스터

그리하여 최근 중국에 특이한 문화현상이 나타났다. 영화, TV, 출판계를 가리지 않고 역사에 대한 ‘주류’ 인식을 담아낸 대량의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 대중, 엘리트, 개인 등 각 주체의 입장을 모두 아울러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된’ 입장을 만들고자 한다. 만약 최근 쏟아져 나오는 개인을 부각한 역사 또는 현실 소재 영화를 ‘신주류’ 영화라고 부른다면, <난징! 난징!>은 전형적인 신주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 각본의 1인2역을 맡은 루 촨은 영화 속에서 개인을 부각했지만 극중 인물들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입장이 아니었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현대 중국의 입장을 반영한 난징대학살에 대한 해석이다. 하지만 심층적으로는 전쟁의 피해자인 중국이 역사를 이미 초월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시 말해, 감독은 처음부터 중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 서양인 모두를 염두에 둔 것이다. 루 촨은 보편적이고 정확하며 서로 대립하는 주체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난징대학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감독이 말하는 ‘보편적인 인간성’의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양심이 살아있는 일본군 장교 카도카와(角川)의 시각으로 난징대학살을 그리고 있다. 그는 전쟁 중의 잔인한 만행들에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일본군은 단순히 비인간적인 괴물이 아니라 ‘전쟁 속의 인간’으로 그려졌다. 그들의 긴장과 두려움, 잔혹행위들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또한 비교적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개중에는 순진하거나 지나치게 미화된 캐릭터도 있다.
사실 감독은 그가 이해하는 일본인의 입장을 최대한 잘 표현해내고자 했다. 필자가 볼 때, 그는 영화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바람을 전달하고자 한 듯하다. ‘우리는 당신들이 어째서 전쟁 중에 그 같은 만행을 저질렀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당신들도 우리의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그는 이 영화의 일본 내 상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니다. 이 기저에는 ‘현대 중국이 이미 새로운 주류 역사관, 가치관을 형성했으며 그것을 전 세계로 전파해 세계와 공명하겠다’는 새로운 의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함의가 그에게 지워진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살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혹은 ‘어떻게 역사적인 시각에서 대학살을 이해할 것인가’이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중국 역사학계, 사상계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다. 영화 <난징! 난징!>에서 역사는 배경의 역사, 장면(scene)의 역사, 디테일의 역사이다. 감독은 대학살의 배경과 장면, 디테일한 부분을 온전히 되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감독은 모든 장면을 당시 사진을 참고해 찍었다고 한다. 이토록 세밀한 부분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찍은 이유는 혹시라도 일본 우익세력이 진실이 아니라는 꼬투리를 잡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학계의 결벽증이 영화로까지 전이돼 ‘역사적 현장 완전 복원’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이 영화가 역사적 고증에 들인 공은 그대로 화면에 전달돼 관객들은 마치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면서 시종일관 숨 막히는 긴장감과 고통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난징대학살을 소재로 한 이 역사영화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역사현장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뒤에 존재하는 역사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만약 사건의 표면적 진실만 놓고 보자면 이 사건은 미친 학살자와 무능하게 죽어간 희생자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실 많은 중국인들이 일본침략자들의 만행을 성토하면서도 희생자들이 어째서 저항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난징! 난징!>이 중국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바로 ‘저항’이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난징 함락에 대한 중국 군인들의 군사적 ‘저항’을 보여줬고, 후반부에서는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할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살리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본군에 함락된 난징이 절대적 불평등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저항을 감독이 제대로 잡아냈다. 서양인들이 만든 난징대학살 영화가 욘 라베(John Rabe, 1882~1950)2라는 구세주에 포커스를 뒀던 데 반해 루 촨은 희생자들의 저항을 표현해 그들에게 진정한 존엄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많은 관객들이 일본군 장교 카도카와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난징에서 탈출시킨 전쟁 포로 샤오 더우즈(小豆子)와 자오 팡즈(趙?子)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이 피어오르는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시했다. 자오 팡즈 같은 탈영병이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도 그렇듯 환한 웃음을 짓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런 결말은 극중 중국인들의 저항을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쯤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설정은 사실 대학살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살의 발생 원인이 더욱 근본적인 데에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변화하는 중국의 민족해방운동과 일본제국주의의 끊임없는 확장이 충돌한 결과다. 만약 이 충돌이 심화되지 않았고, 남경이 함락되기 전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쑹후(淞?)항전(1937)이 없었다면 난징대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징대학살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는 많은 중국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장면의 이면에는 전 국민이 항전에 나서 나라를 수호하려는 시대적 배경과 시대적 요구가 자리하고 있다. 시대적으로 앞선 이념과 낙후한 현실 간의 간극이 난징의 참상을 불러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근본구조와 이념을 무시한다면 대학살의 역사적 함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만약 영화 마지막 부분에 환한 미소를 짓는 ‘구차하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모든 대학살에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을 대변하며 항일전쟁의 주체였던 중국민중을 대표한다면 전 국민의 항일전쟁이 어떻게 8년이나 지속되고 결국 승리를 거둘 수 있었겠는가? 구체적인 인물의 태도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전체적인 시대정신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무지한 데서 발생하는 간극이 바로 <난징! 난징!>이 드러낸 ‘병’이다.

루 촨 감독은 일본침략자들의 정신을 지탱하는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한 인식을 갖고 이를 잘 표현했다. 이는 특히 영화 마지막에 일본군이 제사를 지내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장면은 매우 직접적으로 일본군국주의를 만들어낸, 역사를 초월한 문화적 힘을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일본우익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야스쿠니신사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관객들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이 장면은 강력하면서 구체적이고, 그러면서도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런 모호한 장면은 영화 내내 보여준 세밀하고 직접적인 묘사보다 영화가 가진 진정한 힘을 더욱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시비를 정확히 단정 지을 수 없는 역사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복잡성은 정신과 현실의 밀고 당김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난징! 난징!>은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영화 속에서 보여준 내용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시기 역사의 진실을 대면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벌써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이른 ‘문화적 사건’이다.

번역_ 鄭朱恩 동시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