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의 기억, 어떠한 애국주의인가?

<편집자의 말>
올해로 중국의 5·4운동이 90주년을 맞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전승국들은 파리에서 평화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일본은 독일이 중국 산동성에 대해 가졌던 이권을 넘겨받으려 했고 이 안이 채택되자 격분한 베이징대 학생들이 5월 4일, 톈안먼광장에 모여 항의시위를 벌인 것이 5·4운동의 발단이었다. 그러나 5·4운동은 단순한 애국운동을 넘어 중국의 ‘현대’를 여는 광범한 문화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중국 화동사범대 쉬 지린 교수의 「5·4의 기억, 어떠한 애국주의인가?」는 1919년 우리의 3·1운동과도 마주하고 있는 5·4운동의 현재성을 실증적이면서도 참신하게 탐사한 글로 관심 있는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쉬 지린

경제성장과 함께 애국주의는 중국에서 이미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5·4운동(1919)은  교과서와 주류 매체에 의해 애국주의라는 집단의 기억으로 고정되었다. 그러나 당대의 기록을 보면 다르다. 5·4시위의 총지휘관 푸 쓰녠(傅斯年, 1896~1950)은 운동 직후 이렇게 말했다. “만약 5·4운동을 단순한 애국운동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출발점이 직접행동이었고 대중의 책임감을 불러일으킨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또 교육자로 「베이징 학계 전체선언」(1919) 초안자인 뤄 쟈룬(羅家倫, 1897~1969)은 5·4운동 1주년 때, “5·4운동이 가장 격렬했을 때, 모두 ‘애국’, ‘매국’이라 외쳤는데 5·4운동의 진정한 정신은 여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정신은 학생 희생정신, 민중자결정신이다”라고 말했다. 마오 쩌동(毛澤東, 1893~1976)이 5·4운동의 총사령관이라 칭송한 천 두시우(陳獨秀, 1879~1942)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5·4운동이 애국적 구국운동이지만 이전과는 달리 독특한 정신으로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직접행동’과 ‘희생정신’이라는 것이다. 장 하오(張灝)는 5·4운동이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라는 양가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둘은 복잡하고 기이한 관계라고 분석했다. 5·4운동은 분명 애국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대체 어떠한 애국주의인가? 그와 함께 신문화운동이 불러일으킨 세계주의는 또 어떠한 관계인가?

청말 출현한 국가 관념은 주로 국가유기체론이다.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와 블룬칠리(Johann Kaspar Bluntschli, 1808~1881)는 각각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대표하지만, 두 사람 모두 국가를 개체와 전체가 긴밀하게 연결된 유기체로 간주했다. 청말의 국가관은 일본 근대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메이지(明治)시대의 일본은 ‘개인과 국가의 일체화’를 내세웠다. 메이지 정신은 국가가 중심인 ‘위부터 아래로의 국가주의’와 국민이 중심인 ‘아래로부터 위로의 국가주의’를 구별했지만 양자는 모두 국민과 국가를 불가분의, 고도로 일체화한 전체로 보았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량 치챠오(梁棨超, 1873~1929) 등의 개량파와 <궈민바오(國民報)>, <민바오(民報)> 등의 혁명파 또한 국가를 하나의 생물체로 보고 국가와 국민은 동전의 양면이요, 안과 밖이라고 여겼다.

량 치챠오와 양 두(楊度, 1874~1931)의 설명에 따르면 청말의 국가 관념은 일종의 ‘세계의 국가’이다. 근대 중국인이 이해한 ‘세계’는 천명(天命), 천도(天道), 천리(天理)가 중심인 천하가 아니라 힘이 중심인 생존경쟁의 물리적인 세계였다. ‘물경천택, 적자생존(物競天擇, 適者生存)’이라는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이 신세계에 전체적인 밑그림을 제공했다. 근대중국의 민족국가 개념은 냉혹한 세계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다. 천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이상이 충만한 개념으로 왕조가 정당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척도였지만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은 가치와 이상을 제거한 생존경쟁이었고 그것은 보편적 공리로 이해되었다. 중국은 우선, 천하대동(天下大同)의 전통적 이상에서 벗어나 ‘세계의 국가’가 되어 힘 중심의 세계질서 내에서 현대 민족국가에 적응하려 했다. 약육강식의 위기 속에서 청말 사회는 국가주의, 애국주의 그리고 군·국민교육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895년부터 민국초기까지는 국가주의 열풍의 시대였다.

민국초기가 되자 사상계에 변화가 나타났다. 국가주의 열풍은 중화민국을 만들었지만 지식인들의 이상국가는 아니었다. 애국심에 대해 제일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은 천 두시우였다. 1912년 그는 중국인과 구미인의 애국 방식이 다름을 구별했다. “중국인에게 국가는 사직으로 애국과 충군은 같은 것이다. 구미인들에게 국가는 인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단체이다.(…)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를 사랑하는 것는 마땅하나 국민을 헤치는 국가를 사랑해서 뭐하겠는가.” 이에 장 스쟈오(章士釗, 1883~1973)는 “새벽에 닭이 우는 것 마냥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 반면, 사람들은 천 두시우를 “애국을 모르는” 악당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위앤 스카이(袁世凱, 1859~1916)의 매국 소식이 전해졌고 맹목적인 애국은 오히려 재난이라며 여론은 변하기 시작했다. 청말 민국초기에 국가주의를 고취했던 량 치챠오도 “통렬히 죄를 인정한다”며 후회했고, 맹목적인 애국에 대해 검토했다. “오늘의 정부는 인민에게 애국을 권하지만 그것은 저것과 얼마나 다른가? 국민들은 말한다. 나라는 응당 사랑해야 하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은 관리들이다. 만일 오늘날의 관리들이 국가의 기쁨과 걱정을 기쁨과 걱정으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국민들을 탓하기만 한다면 애국심을 잃은 국민들이 장차 제멋대로 할지 어찌 아는가.”

청말 민국초기의 민족주의 조류와 달리, 신문화운동(1915)은 개인주의 시대를 열었다.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란 관념은 국가와 함께 탄생했지만 이때의 개인은 집합적 개념으로 국가와 동일한 것이었다. 신문화운동 때에 이르러, 국가와 분리 내지 대립하는 개인이라는 관념이 생겼다. 개인이 국가에서 떨어져 나와 개별적이며 자명한 것이 되고 자아가 내재하는 개념으로 되었을 때, 국가유기체론은 그 존재의 근거를 잃었다. 국민과 국가는 목적과 도구의 관계로 변했다. 국가는 더 이상 신이나 하늘의 뜻을 지닌 신성한 것도, 자연스레 진화하는 역사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자유와 천부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였다. 이러한 공리주의적 국가도구론은 신문화운동 때 새로운 주류 국가관이 되었다.

5·4운동 시기에 국가도구론은 국가우상론 혹은 국가허무론만큼 극단적이지 않았다. 아나키즘(anarchism)은 우 즈후이(吳穉暉, 1865~1953), 리 스청(李石曾, 1881~1973), 리우 스페이(劉師培, 1884~1919)와 같은 아나키스트들뿐 아니라, 차이 위앤페이(蔡元培, 1868~1940), 천 두시우, 후 스(胡適, 1891~1962), 푸 쓰녠 등에도 영향을 미쳐 계몽지식인들이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갖게 했다. 천 두시우는 우상을 타파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말했다. “국가는 사람을 속이는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체로 어떤 진실한 능력이 없다. 사람이 죽으면 한줌 흙이라도 남지만 국가는 어떠한 것도 남기지 못한다.” 푸 쓰녠은 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크게는 인류가 있고 작게는 ‘나’가 있다는 것이 진실임을 인정할 뿐, ‘나’와  인류 사이에 있는 가족, 지방, 국가 등은 모두 우상이라 생각한다. 우리들은 인류인 연고로 ‘진실한 나(眞我)’가 된다.” 이들이 과연 국가를 가공의 우상이라 여기고 인류와 자아만을 믿은 것일까? 애국주의의 일반적인 이치에 비추어 봤을 때 다소 불가사의하다.

5·4운동은 간단한 애국운동이 아니라, 그 배후에 애국을 지탱하는 광대한 이상을 깔고 있었다. 그것은 세계주의였다. 그 당시 국가주의 외에 가장 유행했던 것은 ‘공업과 상업에 의한 구국’이었기 때문이다. 양자를 합쳐 양 두가 제창한 것은 부민강국(富民强國)의 ‘금철주의’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발발과 참혹함은 중국 지식인들을 물질주의와 국가주의의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게 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량 치챠오는 폐허가 된 유럽을 보고 말했다. “유럽이 100년간 이룩한 물질적 진보는 우리가 2000년간 얻은 것의 몇 배다. 그러나 인류는 행복하기는커녕 더 많은 재난을 당했다.” 열강들의 경쟁 속에서 중국은 국가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국가주의는 양날의 칼이 되어 제국주의로 변질하거나 자신을 헤칠 수 있었다. 국민당의 최고 이론가 주 즈신(朱執信, 1885~1920)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가주의는 개인주의에 비해 우월하지만,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뿐 영원한 생활 표준으로 삼을 수 없다. 국가주의가 어떨 때는 병의 발단이 되어 국가에 무익할 뿐 아니라 인류사회를 헤친다. 국가주의는 우리에게 필수적이긴 하지만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국가주의보다 더 중요한 생활방식은 최근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 인류사회’, 즉 세계주의이다.”

그러나 20세기 초라면 국가주의를 버리고 세계주의만을 외치는 것은 천진난만이 아닐까? 세계주의의 기세가 강했던 5·4운동 시기에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이러한 의혹을 제기했다. 량 치챠오는 말했다. “세계대동이 시기적으로 이르고 국가는 한 시기도 소멸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국가’라는 주장 대신 국가주의와 세계주의가 결합한 ‘세계주의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이 새로운 국가주의는 과거의 민족국가 지상주의적인 애국주의와는 다른 것이었다. “우리의 애국은 국가가 있음을 알 수 없으면 개인이 있음을 모르고, 국가가 있음을 알 수 없으면 세계가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국가의 비호 아래 개인의 천부적인 능력을 힘껏 발휘하여 세계인류와 전체 문명에 크게 공헌하기를 원한다.”

중국 지식인에게 세계주의는 세계대동의 이상을 의미하고, 유교의 천하관과 일맥상통한 데가 있었다. 그것은 진화론과 결합한 새로운 형식이었다. 청말 량 치챠오가 ‘세계의 국가’를  제창했을 때. 공양삼세설(公羊三世說)1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여전히 세계대동이 인류 미래의 최고 경지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세계주의는 이상에 속하고 국가주의는 사실에 속한다. 세계주의는 미래에 속하고 국가주의는 현재에 속한다. 오늘 중국의 정세가 급박하고 우리가 장래 이상을 이야기 할 때도 아니다”, “오늘날 중국이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데 우리는 장래를 이야기 하지 않고 이상을 이야기했다. 고로 나는 현실에 맞지 않는 담론으로 국가를 망쳐 감히 사죄할 수도 없다. 세계주의는 묘하고 묘해 오히려 적자생존의 오늘날 세계에는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세계의 국가’가 필요하다.” 양 두도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금철주의’를 ‘세계의 국가주의’로 보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이 ‘세계의 국가주의’의 허위를 드러냈을 때, 유교의 세계대동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은 중국 지식인들은 ‘세계의 국가주의’에서 ‘세계주의의 국가’로 생각을 바꿨다. 세계와 세계주의는 글자는 유사하지만 뜻은 다르다. 세계는 생존경쟁, 양육강식인 밀림 세계이지만 세계주의는 천하대동으로 인류가 서로 돕는 것이 이상인 가치이다. 세계는 물리적인 것으로 가치와 윤리가 제거된 것이지만 세계주의는 인문적인 것으로 보편성을 지닌 가치 취향과 정의의 법칙이다.

이것은 5·4 시기의 애국주의로, 개인주의를 지키면서 인류문명의 진보를 추구하는 애국주의이다. 개인과 인류는 가장 진실한 것이고 국가는 매개물이자 국가경쟁 시기에 필요한 수단이자 도구이다. 그것은 국가가 개성의 발전을 촉진하고 인류문명을 추진하는 목표 아래 존재한다는 뜻이다. 국가주의의 고취자인 량 치챠오는 생각했다. “국가는 인류 최고의 단체가 아니다. 어느 나라 사람도 전 인류의 한 부분임을 자각하고 책임을 져야한다. 고로 매우 편협한 애국주의에 경솔하게 동의할 수 없다.” 푸 쓰녠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단지 일국의 사람일 뿐 아니라 세계시민이다. 현재, 세계 단결의 단위는 민족이다. 때문에 우리가 대중에게 갖는 책임감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일국의 시민이요, 하나는 세계의 시민이다.” 소년중국학회를 창립한 왕 광치(王光祈, 1892~1936)는 학회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중국’이라는 두 글자는 지역명칭으로 볼 수 있다.(…)국가가 아니다. 나는 대동세계를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는 중국을 세계의 일부분으로 보고 국가의 경계가 없는 세계대동을 꿈꾼다. 우리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니 그 범위를 중국 국경 내로 제한할 필요 없다.” 바로 5·4운동 전 1차 세계대전의 반성이 낳은 ‘세계주의의 국가’ 개념은 서방의 강권(强勸)에 항의하는 애국운동이 협애한 민족국가의 입장을 초월해 보편적인 정의와 이상적인 목표를 갖게 했다.

5·4운동 시기, 세계주의는 국가주의를 압도하여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조류’라 여겨졌다.  당시에는 이것이 보편적 현상이었다. 1919년 5·4운동 전, 베이징대학에선 애국주의 학생들이 <국민잡지>를 창간했다, 차이 위앤페이 교장은 자금을 후원하고 머리말을 썼다. 그는 학생의 애국적 열정을 긍정했지만 국가보다 더 높은 세계주의의 표준이 있다고 보았다. “국민은 세계 인류의 일부분으로, 절대적인 국가주의만을 외치고 인도주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도덕적 정당성이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 실패할 것이다. 하물며 다른 것은 어떠할 것인가？ <국민잡지>는 이기적인 국가주의를 제창하지 않는다.” 차이 위앤페이의 충고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쳐 5·4시기의 베이징대 학생들은 인류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다. 1920년대 초 창간한 <베이징대학 학생주간>은 발간사에서 명확하게 선포했다. “중국은 세계의 단위이다.(…)무릇 국가에 이익이 있어도 세계에 이익이 없으면 하지 않는다.” <져장신챠오(浙江新潮)>의 발간사 또한 이런 맥락이다. “본 간행물은 국가주의와 지방주의에 반대한다. 져쟝은 ‘전 세계, 전 인류의 일부분으로 우리들은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고 전 인류의 발전을 도와야 한다.” 5·4시기 청년들은 일국, 일지역에 묶이지 않고 세계주의, 즉 전 인류의 시야에서 자기의 이상목표를 삼고 구국운동과 사회문화 개조에 힘썼다.

개인과 세계의 매개물인 국가가 희미해지자 5·4시기의 개인주의와 세계주의는 직접 소통했다. ‘인간의 문학’으로 유명해진 저우 쭤런(周作人, 1885~1966)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인류의 것, 개인의 것이지 종족, 국가, 지방, 그리고 가족의 것이 아니다.” 그는 푸 쓰녠과 마찬가지로 민족, 국가부터 지방, 가족까지 인류와 개인 사이에 있는 매개물을 모두 가공의 우상으로 보고 오로지 진실한 것은 개인과 인류뿐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은 인류의 한 부분이지만, 인류는 또 각각 개성이 있는 자아가 만든 것이다. 인류와 개인의 관계는 5·4시기 특유의 ‘대아(大我)’와  ‘소아(小我)’를 형성했다. 개인은 그 자체가 홀로 선할 방법이 없고 그 인생의 의의를 증명할 수 없다. 개인(소아)은 단지 인류(대아)의 가운데서 비로소 완벽해져 자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대아와 소아라는 관념은 중국 전통사상에서 왔지만 전통적인 대아가 초월적인 덕성을 지닌 우주(천명, 천도, 천리)였다면, 5·4시기엔 완전히 세속적인 인류와 역사로 변하였다. 개인의 소아는 인류 진화의 역사, 즉 대아에 들어가야만 영원을 실현하고 그 존재 의의를 획득할 수 있었다. 후 스는 자신의 인생관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이 소아는 홀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고 무수히 많은 소아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 전체와 세계 전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고 세계의 과거와 미래는 모두 인과관계이다.”

대아로 간주되는 인류세계는 개인(소아)이 기초가 되어 개성의 자유로운 발전을 고무하지만 세계는 개인보다 가치적으로 한 차원 높은 것이고 개성의 발전을 제약한다. 저우 쭤런이 제창한 신촌주의(新村主義)2는 어느 지방, 어느 집안에서 왔건 간에 새로운 마을에서는 모두가 개성을 자유로이 발달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작은 차이(小異)의 개성은 대동의 인성을 위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5·4시기의 개인주의는 개성의 배후에 인성에 대한 보편적 이해가 있고 천하대동의 전 지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대동소이’의 이상세계로, 소아는 자유롭게 발전하지만 오히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가치가 되고 또 대아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5·4시기의 세계주의는 무엇을 의미했는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의 지식계와 여론에서 가장 유행한 문장은 바로 “공리가 강권을 이겼다”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1차 세계대전을 공리의 승리라고 여겼다. 5·4시기의 세계주의는 배후에 모두가 인정하는 전 지구적 가치, 즉 공리가 있는 것이었다. 청말 이래의 민족주의는 공리주의와 강권주의라는 두 개의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왕 중쟝(王中江)의 연구에 의하면, 공리주의적 민족주의옌 푸(嚴復, 1854~1921) 등는 물경천택의 진화과정이 부민강국을 위한 경쟁이자 문명(지와 덕)의 진보라고 믿었다. 반면 강권주의적 민족주의량 치챠오 등는 자유와 권리가 강권에서 오기에 강권이 공리라고 여겼다. 량 치챠오는 1910년 “저절로 진화가 있은 이래 경쟁이 있고, 경쟁이 있으면 우열이 있고, 우열이 있으면 승패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권의 뜻은 공리가 아니더라도 공리가 된다. 민족주의의 발달이 이미 정점에 달했어도 자기 민족의 행복을 증진하고자 하는 것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내적인 힘이 충만하면 밖으로 펼치게 마련이다. 고로 평등한 두 양자가 만나는 것을 권력이라 말할 수 없고 도리가 바로 권력이다. 반면 불평등한 양자가 만나는 것을 도리라 말할 수는 없고 권력이 바로 도리이다. 국가주의 열풍이 불었던 청말민초, 량 치챠오는 힘을 숭상하여 일종의 강권주의를 실천했다. 그러나 물질주의를 기초로 삼은 강권주의는 민국 초기에 점차 그 폐단을 드러냈다. 사회는 양육강식의 패도질서가 지배했다. 두 야취앤(杜亞泉, 1873~1933)은 <동방잡지>를 통해 분노했다. “오늘날의 사회는 오로지 물질만이 세력을 갖추었을 뿐 정신계 가운데선 세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물질주의가 사람들에게 깊이 침투한 이래 우주엔 신이 없고 인간에겐 영혼이 없고 오로지 물질이 만능이다. 다시 참혹하고 무정한 경쟁과 도태만이 그 사이를 채웠다.(…)어떻게 하면 그 생존을 보장받고 도태를 면할 수 있는지가 처세의 긴급한 문제이다. 즉, 내가 우월한 사람이 되면 승리하거나 열세한 사람이 되면 패할 뿐이다. 이처럼 세계는 우열이 있을 뿐 선악은 없고 승패가 있을 뿐 시비는 없다.”

1915년에 시작한 신문화운동의 중요한 주제는 청말 이래의 국가주의 열풍을 반성하는 것으로 강권주의 배후의 가치허무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공리를 재건한 세계주의가 5·4시기에 유행한 까닭은 사람들이 보편적, 지구적 가치를 재발견하여 중국과 세계질서를 위한 공동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다. 공리는 천리를 대체하는 근대세계관으로 청말의 민주주의 열풍의 배경 아래 물경천택, 우승열패의 경쟁진화론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5·4시기에 이르러 공리는 다시 계몽사상과 관련한 가치를 내포한 것으로 여겨졌다. 무엇이 공리인가? 천 두시우는 <매주평론>의 발간사에서 말했다. “평등과 자유에 부합하는 것이 공리이다.” 당시 중국 지식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강권에 대한 공리의 승리로 규정했다. 더 이상 청말 이래의 강권주의를 믿지 않았으며 공리가 정당성을 지닌 가치척도임을 확신했다. 이제 중국과 서방국가의 격차는 물질적인 능력 혹은 국가의 강성(强盛)이 아니라, 자유, 평등의 문화와 제도의 건설 여부에 있었다. 신문화운동이 전파한 이러한 계몽가치관은 애국 학생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5월 4일 베이징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톈안먼(天安門)광장에 모여 쟁취한 것은 협애한 국가권익이 아니라 보편의 공리였다. 그들은 민족의 이익을 위해 밖으로는 강권에 저항했고 동시에 보편성을 지닌 전 지구적 가치를 위해 항쟁한 것이다. 5·4운동의 핵심정신을 대표하는 「베이징 학계 선언」에선 “세계엔 정의, 인도, 공리가 있다는 것을 어찌 말하지 않는가. 칭다오(靑島)를 돌려주고 중일밀약, 군사협정, 그리고 기타 불평등 조약을 취소하는 것이 공리요, 정의다. 공리를 뒤로하고 강권을 휘둘러 우리의 땅을 5국이 공동 운영하는 것은 우리를 패전국인 독일, 이탈리아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공리도 아니요, 정의도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

파리강화회의(1919)에서 보인 열강의 패도와 이기주의에 진 두시우는 실망했다. 강권이 공리를 이겼다고 생각해 다시는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이 공리를 보호하는 “세계 제1의 좋은 사람”이라고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청말의 강권주의 입장으로도, 가치허무주의 입장으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포기한 것은 단지 서방 열강들이 공리를 지지하리라는 기대이지, 공리 자체가 아니었다. 파리강화회의의 실패로부터 그는 양육강식의 세계대전을 피하려면, 인류의 사상을 개조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공리를 멸시하는 강권을 없애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비폭력의 무저항주의가 공리를 추구한다는 환상 대신, “강권이 공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강권을 사용해 공리를 더럽히고 방치하는 대신 강권을 이용해 공리를 지킨다. 우리들은 강권을 사용해 사람들을 압박하는 대신 오히려 강권을 이용해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에 저항한다.”

“강권으로 공리를 지키”려는 천 두시우의 생각은 양 두의 사상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청말 양 두는 말했다. “중국이 오늘날 만나는 나라는 문명국이지만, 중국이 오늘날 처한 세계는 야만의 세계이다.” 서방 문명국가는 안팎의 정책이 모순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문명국은 있지만 문명세계는 없다. 세계 각국은 안으로는 문명이지만 밖으로는 야만적이다. 안으로는 오로지 이치를 말하면서 바깥으로는 단지 힘을 살필 뿐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문명의 나라요, 세계는 야만의 세계이다. 왜 그런가? 국내법과 국제법을 구별해보면 알 수 있다.” 모든 문명강국에 대항하기 위해 양 두는 문명과 야만(강권)에 대한 이중 대응책을 제시했다. “중국이 만나는 것은 문명국이므로 문명이 부족하면 그에 맞설 수 없고, 중국이 처한 것은 야만의 세계이므로 야만이 아니면 생존을 도모할 수 없다.” 양 두의 이원적 사고는 문명이 ‘안’이고 야만이 ‘밖’으로 양자 사이에는 차이가 없었다. 계몽의 가치를 깊이 신뢰한 천 두시우는 파리강화회의에 환멸을 느꼈지만 공리의 가치를 믿었고 그것이 자유와 평등의 목표라 여겼다. 강권은 목적 자체가 아니라 단지 공리를 실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5·4운동 이후 세계주의를 목표로 삼은 이러한 국가주의는 청말 ‘세계의 국가주의’와 다르다. 현실세계를 강권이 횡행하는 밀림의 세계로 파악했지만, 공리와 대동이라는 이상적 목표를 고수함으로써 국가주의는 더 이상 현실적 목표가 아니라 공리를 실현하는 전략적 수단이었다.

파리강화회의의 열강들에 항의하는 애국운동의 함성이 날로 고조되었을 때, 천 두시우는 <매주평론>에서 「우리들이 반드시 애국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5년 전에 발표한 「애국심과 자각심」에 이어 애국은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 아님을 일깨우고 이성을 기초로 삼으려 했다. 그는 “우리들이 애국을 해야 하는가 아닌가를 물으려면, 먼저 국가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억압적인 국가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애국심이지, 애국심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국가가 아니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것은 사람들의 행복을 도모하는 국가이지, 인민을 국가의 희생양으로 삼는 국가가 아니다.” 천 두시우가 이러한 ‘이성적인 애국주의’에서 지키고자 한 이성은 바로 평등과 자유를 척도로 삼는 공리이다.

5·4시기는 이상주의의 색채가 충만했던 낭만의 시대였다. 지식인들은 좌절하면서도 공리를 지켰고 세계대동이라는 시대정신을 지켰다. 톈안먼광장에서 차이 위앤페이는 1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어두운 강권론이 소멸하고 밝은 상부상조론이 발전하며”, “어두운 종족에 대한 편견이 소멸하고 대동주의가 발전”함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광명한 세계대동의 현현은 5·4지식인들을 흥분하게 했다. 그들은 이처럼 낙관적이었기에, “새로운 기원”, “새로운 시대”, “새로운 풍조”가 도래한다고 믿었다. 1919년 설날, 리 다쟈오(李大釗, 1889~1927)는 새로운 기원이 도래했음을 선포했다. 유럽전쟁, 러시아혁명과 독일, 이탈리아 혁명의 피는 “이리저리 씻어도 새로운 기원을 낳고, 이 새로운 기원은 새로운 생활,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계를 가져 올 것이다.” “우승열패, 양육강식은 오늘 이후 큰 착오임을 알았다. 생물의 진화는 서로 경쟁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하는 것임을 알았다. 만약 인류가 생존하고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서로 우애해야지 강한 힘에 기대어 서로 죽여서는 안 된다.” 크로포트킨(Pyotr Alekseyevich Kropotkin, 1842~1921)의 『상부상조론』(1902)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유교의 세계대동 이상은 진화론의 촉매로 현대적 세계주의 이상향으로 변모했다. 5·4 지식인들의 세계관의 밑그림은 여전히 진화론적이었지만 인류를 진화시키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 돕는 것이오, 금과 철이 아니라 도덕과 정신이라 보았다. 세계대동의 이상은 현대질서로 정당성을 다시 부여받았다. 량 치챠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래부터 국가가 인류 최고의 단체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반드시 더 높은 단체가 있다고 보았는데, 모든 국가의 종주는 천하이다.(…)이러한 넓은 세계주의는 실로 수천 년 동안 정치론의 중심에 있었다.” 상호부조론뿐 아니라 5·4시기의 담론 중 가장 열렬했던 민주주의도 세계대동의 의의를 부여받았다. 리 다쟈오는 청년들을 타이르며 말했다. “우리 신성한 청년들은 반드시 오늘날의 데모크라시(democracy)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조직일 뿐 아니라 세계의 조직이다. 이 데모크라시는 단지 인류생활사의 한 지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점점 세계대동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5·4시기에 추구한 자유, 평등, 민주, 정의는 결국 세계대동의 최고 경지로 향했다.

20세기 중국은 ‘유토피아’에 상처 입었다. 세기말 유토피아를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사상계의 주류가 되자 소위 “혁명의 유토피아”라 일컫는 현대의 기원이 5·4의 각종 이상주의, 낭만주의에서 유래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정리해야만 한다. 후대에 변모한 그것은 5·4시기의 세계주의적 유토피아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세계주의적 유토피아는 국가주의의 협애한 목표를 초월해, 다른 종족, 국가, 그리고 인민이 모두 함께 추구하는 전 지구적 가치관을 의미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생각한 ‘세계 영구 평화’도 세계주의적 유토피아였다. 롤스(John Rawls, 1921~2002)는 이에 고무되어 전 지구적 정의를 실현하는 ‘현실의 유토피아’인 ‘민권법’을 낳았다.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근대에 나타난 이후, 인류사회는 세계주의적 유토피아가 전 지구적 정의를 지탱하면서 국가주의의 발전이 초래할 긴장과 충돌을 제어하길 바랐다. 유토피아는 전 지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류사회의 공동규약이다. 세계주의의 낭만적인 감성을 품고 있었던 5·4지식인들이 추구한 것은 ‘세계주의의 국가’와 보편성을 지닌 전 지구적 가치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인 민족의 궐기였다. 이것이 바로 5·4의 애국운동으로 세계주의적 이상을 지닌 애국주의다.

그렇지만, 세계주의를 내포한 5·4의 애국주의는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1922년 이후 세계주의적 유토피아는 점차 사라졌고 민족주의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세계주의의 국가’ 관념 대신 제국주의 열강에 반대하는 반항형 민족주의가 이를 대체했다. 쑨 원(孫文, 1866~1925)은 제3인터내셔널 지지와 국공합작이라는 새 국면을 구실삼아 민족주의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는 5·4시기에 유행한 세계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이를 고대 중국의 천하주의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청조가 중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명대의 지식인들이 세계주의의 이상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세계주의가 망국병임을 암시했다. 쑨 원이 제창한 민족주의는 강력한 종족정체성과 민족문화적 색채를 띤 것으로 민권주의와는 이론적으로 간극이 있다. 그렇지만 종족과 국수(國粹)의 민족주의에 호소함으로써 국내 정치운동의 요구에 영합했다. 도래할 큰 혁명에는 공동의 적과, 공동의 입장이 필요했다. 반항형 민족주의는 각 계층의 정치적인 열정을 통합하는 데 공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마침내, 1925년 국민대혁명을 위한 역사의 서막이 열렸다. 마침내 5·4는 끝나고 새로운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 했다. 애국주의 열풍은 울타리를 벗어난 야생마와 같아 이쪽에서 건네더라도 저쪽에서 받을 수 없었다. 20세기 중반, 중국사에서 그것은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 이 글은 「五四”的历史记忆：什么样的爱国主义？」, <读书>(中国出版集团 : 中国, 2009. 5.)를 필자와 출판사 측의 동의를 얻어 번역, 편집한 것임.

번역_ 金志玲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