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교회 입구

남한의 최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의 중화동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설립된 교회이자 한국 기독교의 성지로 해마다 많은 교인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내륙이 아닌 섬, 그것도 서쪽 제일 끝에 위치한 섬에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가 있다니, 의아했다. 보통 ‘섬’ 하면 고독, 고립과 같이 폐쇄적인 느낌의 단어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그곳에 외래문물의 상징인 교회가,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립되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백령도로 향했다.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용기포구에서 내려 20분가량 차를 타고 달리니 교회가 있는 중화동 마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적하기가 여느 시골 동네와 다름없었지만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에 보이는 교회 첨탑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이 중화동교회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기분 탓일까. 우거진 나무 사이의 따사로운 햇빛을 보고 있는데 언덕 위의 교회로 가는 계단이 천국으로 가는 입구 같았다. 교회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마당에는 녹슨 종과 기념비석들이 놓여 있었다. 종을 치자 신기하게도 맑은 종소리가 교회 마당을 넘어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옆에 놓인 기념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백령기독교역사관에 들어섰다.

2001년에 문을 연 백령기독교역사관에는 1816년부터 1902년까지 87년간의 백령도 기독교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 내부에는 초기 중화동교회, 최초의 백령도 복음전파, 서양선교사의 성경전달, 여러 선교사들의 방문,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 세례 집례 등을 재현한 모형물들과 중화동교회 설립사, 조선에서의 선교 여정을 그린 지도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해 관람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미리 약속해 두었던 중화동교회 전응류 목사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관람순서는 1816년 최초의 성경 반입부터 1900년 언더우드 선교사의 중화동교회 방문까지였다.

왼_백령기독교 역사관,                     오른쪽_중화동교회

1898년 중화동교회가 설립되기 전에도 비록 정식으로는 아니었지만, 세 차례 기독교 선교의 역사가 있었다. 1816년 서해안 일대의 해로탐사를 명령받은 영국 해군 클리포드(H.J. Clifford)와 바실 홀(Basil Hall, 1788~1884)은 백령도 중화동 포구에 상륙하여 한문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선경 반입이었다고 한다. 그 후 1932년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 선교사가 백령도를 찾았다. 비록 아시아 국가와의 통상교섭과 시장개척 가능성을 조사하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군함 암허스트(Lord Amherst)호의 일원으로 방문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다. 귀츨라프 일행은 중화동 마을 주민들의 초청을 받아 만남을 가졌는데, 이때 성경과 전도지를 전했다. 해상교류의 일선에서 살아온 주민들로서는 외국선박과 외국인을 접촉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던 데다 외국인들과 물물교환 형식의 거래행위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쇄국주의 정책 아래서도 이러한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세번째로 백령도를 방문한 선교사는 영국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 선교사였다. 토마스 선교사는 1865년 백령도를 시작으로 인근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그는 미리 익혀두었던 한국말로 성경책과 전도서를 전했다고 한다.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미국상선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호를 타고 백령도를 다시 찾은 후, 평양에 들어가 순교했다. 안내를 해준 전응류 목사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외국인 선교사의 방문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마 토마스 선교사였던 같다고 말했다. 토마스 선교사의 백령도 선교활동 재현물에 있는 조선인이 전목사의 조부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 전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각 선교사들의 여정을 그린 지도가 걸려있다는 것인데, 이 세 사람의 여정은 백령도가 가진 지정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서양 사람이기는 했지만 이들은 중국을 거친 후 백령도를 찾았다. 그리고 백령도는 이들의 종착지가 아니라 조선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클리포드 일행과 귀츨라프 일행은 백령도를 거쳐 충청도 해안을 향했고, 토마스 일행은 황해도 북쪽을 향했다.

중화동교회 설립과정을 그린 전시장의 모형물에 이르자 전목사가 말했다. “백령도는 인천보다 북한이 가까워요, 우리 아버지는 북한으로 학교를 다녔지요. 날씨가 좋으면 북한이 보여요.” 그는 이어서 중화동교회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전시장에 걸린 지도를 보니 소래교회가 있는 장연군과 백령도가 매우 가까웠다. 중화동교회와 관련하여 허득(許得, 1828~1902)이라는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그가 백령도에 교회를 설립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은 동학농민운동(1894) 당시 소래교회를 보고 나서였다고 한다. 당시 캐나다인 매켄지(William John Mekenzie, 1861~1895)가 담임목사로 있던 소래교회는 일반백성들의 피난처요, 관군, 동학군, 일본군이 침범하지 못하는 안전지대였다고 한다. 당시 치외법권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허득은 교회야말로 무엇보다 강한 것이라 여겼고, 교회만이 백령도 주민이 살 길이라는 생각에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허득의 의지는 1898년 그 결실을 맺어, 지금 자리에 중화동교회가 설립되었다. 당시 설립예배는 소래교회의 서경조(徐景祚, 1852~1938) 장로의 집전으로 진행되었으며 교회건물을 지을 때는 소래교회를 짓고 남은 건축자재를 지원받았다고 한다.

왼,오른쪽_백령도를 찾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그린 전시물들

마지막으로 언더우드 선교사 세례 집례 모형물 앞에 섰다. 1900년 황해도 지역을 지도하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초대 당회장으로 입도하여 중화동교회에서 일곱 신자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모형물 앞에서 전목사는 2001년 역사관 개관식에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 원일한(元一漢, 1917~2004) 박사가 참석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원일한 박사는 개관식에 초청 받자,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함께 백령도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며 병든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 한다.

백령기독교역사관 내부

전시장을 나오며, 전목사에게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이 백령도에 많은지 물었다. “예전엔 백령도가 황해도에 속했어요.” 아차, 싶었다. 백령도 사람들의 말씨가 이북사투리 비슷하다 여겼을 뿐, 백령도가 북한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백령도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섬이자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이다. 백령기독교역사관에서 만난 백령도의 기독교 역사에는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이 배어 있었다. 백령도는 단지 우리나라 북쪽 끝에 붙어있는 외딴 섬이 아니라 조선이 서양과 만났던 장소요, 남과 북이 왕래했던 곳이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된다면 인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백령도의 미래가 기대된다.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할 즈음, 중국 옌타이(煙臺)와 인천을 왕복하는 여객선이 보였다. 문득 인천항이 아니라 백령도에서 출발해 중국을 가보면 어떨지 궁금했다. 인천항에서 백령도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상상, 3·8선을 넘는 대신 백령도를 거쳐 북으로 가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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