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지평展>은 단순한 작품 전시가 아니다. 그보다는 전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일종의 메타(meta) 비평 전시에 가까울 것이다. 아마도 작가라는 주체와 작품이라는 오브제, 그를 둘러싼 공간과 아우라(aura), 그리고 그들을 규명하려 애쓰는 비평가, 큐레이터들로 구성된, 그러니까 미술계 자체를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이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작가의 주체성 문제를 조명했던 <딜레마의 뿔> 후속展이라는 사실이 이 같은 심증을 굳히게 했다. 그러나 예상은 종종 빗나가는 법이다. 전시나 비평이 어떤 행위인지를 다룬, 미술계 자체를 성찰하는 전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문제들을 내려놓은 전형적인 미술관 전시였으며 조형적, 시각적 언어를 사용하여 ‘작가답게’ 한껏 연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참여한 평론가별로 자신의 성향과 태도에 따라 차이를 보인 이번 전시는 텍스트를 늘어놓는 전형적인 방식으로부터 자신의 수집광적 취향이나 태도를 보여주는 설치작업 또는 개념미술, 드로잉, 퍼포먼스를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전시 제목에 상관없이 비평가, 큐레이터가 뒤섞여 참여한 것은 우리 시대 미술에서 비평가와 큐레이터의 역할이 엄격히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것은 물론 미술이 스펙터클화, 세속화할수록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탄탄한 비평가의 존재는 절실해진다. 미술비평가란 어떤 사람인가. 작가들이 내놓는 작품마다 토를 달고 ‘태클’을 거는 존재? 아니면 주례사를 늘어놓으며 작품을 합리화하고 제도에 편입시켜주는 ‘고마운’ 존재?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비평가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애증으로 점철된 비평가와 작가, 그리고 관람객의 삼각관계는 이 전시에서 꼭 다루어야 할 대목이었다.

전시는 작품과 작가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제도다. 또한 관람객을 끌어들여 작품을 사적 소유가 아닌, 소통 가능한 사회적 오브제로 만드는 제도이기도 하다. 비평가는 결국 전시와 함께 글로 작품을 제도화한다. 어떻게 보면 비평가들은 작품과 작가를 제도에 편입시키고 관람객에게 특정 해석을 주입하는 권력집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비평적 시각과 치열한 논증으로 작품을 대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받는 존재다. 이것이 오늘날 비평가의 초상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작품을 주문하는 역발상의 전시라면 미술담론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을 것이고 역지사지의 반성작업이나 비평에 대한 성찰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적어도 이들에게 엄청난 미적, 조형적 능력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비평가들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또는 비평가들도 글이 아닌 시각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었는가. 이들은 전시를 통해 답한다. “나는 비평가다.” 마치 크게 소리치듯, 강력한 자아의 목소리다. 최대한 작가다우면서도 비평가로서의 스타일은 유지하려는 이들의 접근법은 왠지 민망하고 부담스러운 촌극 같다. 이는 ‘나는 비평가-큐레이터다’를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큐레이터의 방’ 섹션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비평가와 전시기획자로서의 연대기를 시각적 설치로 보여주는 장동광은 자신감과 좌절 사이를 오가며 작가와의 관계, 자신의 작업들, 도면, 도록, 리플릿을 늘어놓는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같은 멜랑콜리한 음악과 함께 피 흘리는 비둘기의 모습을 설치한 장동광의 작업은 냉정과 열정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이중성을 드러내며 큐레이터로서 자기애와 자기연민 사이를 오간다. 반이정은 스타비평가답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톡톡 튀고 재치 있는 퍼포먼스와 설치들로 웃음을 유발한다. 강수미는 반대로 텍스트를 통해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도입부에 설치된 강수미의 텍스트 설치들은 비평의 쓰기, 읽기 작업을 그야말로 텍스트로 주지시킨다. 그녀는 비평을 주체와 대상의 문제, 그를 둘러싼 맥락을 읽고 쓰고 말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잔상(After image)으로 표현한 작품 속에서 그녀의 달변이 들려오는 듯하다. 가장 침착하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가장 ‘비평가답게’ 미술이란 그리고 미술비평이란 무엇인지를 읊조리고 있었다.

말과 글 그리고 행위, 시각언어는 무엇이 다른가? 창작과 비평 사이에는 어떤 행간이 있는가? 과연 비평이란 무엇인가? 비평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시작되었다는 이 전시는 이런 의문을 남긴다. 글쓰기와 전시, 이미지, 사회, 제도, 사람. 이들의 의미는 무엇이고 내게서 어떤 위치를 점하는가? 장동광의 ‘큐레이터의 방’에 설치된 ‘고소장’과 ‘도면’에 큐레이터의 고단한 현실이 겹친다. 전쟁을 치르듯 다양한 사람들과 씨름하며 고군분투하는 현장의 큐레이터들, 비평가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세련된 방과 고단한 현실 사이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각고의 노력과 수없는 밤샘으로 점철된 일상이지만, 어쩌면 이미지의 진실조차도 그런 자신이 필터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반이정전시물

이미지 제공_ 일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