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말로는,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 이주민 수가 100만을 헤아린다고 한다. 이른바 단일민족이라는 반드시 교정되어야 할 순혈주의 관념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수많은 종족집단, 그리고 그들이 몸에 지니고 들어오는 다양한 삶의 양식들은 기존의 토착문화와 한데 어우러져 자민족중심주의라는 좁다란 바구니에 끊임없이 내부균열을 일으키며 이 사회를 광대한 다문화공동체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수레바퀴처럼 사방에서 우리를 압박해오고 있고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옥련의 『인천 화교사회의 형성과 전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지한 메시지는 넓은 의미에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동안 낯선 타인들을 대함에 있어 편견과 배제로 일관해 온 우리에게 뼈아픈 성찰을 요구하고 그러한 반성 위에서 그들과의 조화와 화해라는 새로운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저자에게 화교문제는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라 짐작된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이 통칭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동포로서 줄곧 중국 내 소수자로 살아왔고 반대로 일정기간 모국에 거주할 때는 또 다른 타자로서 이 땅의 낯선 사람들과 환경 등에 맞서 치열한 고투를 벌였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화교란 남이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의 문제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천 화교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본래 이옥련의 박사논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러나 연구서가 갖는 딱딱함과 생경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비교적 고른 호흡으로 읽히는 데에는 저자 자신이 지닌 공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책의 성격상 추상적이고 난해한 이론서가 아니라 화교들의 삶과 애환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일종의 생활보고서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박사논문답게 각 장마다 독립적으로 완결된 소논문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국에서 화교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었는지와 관련한 분석적 연구가 아직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 책은 의미 있는 실증적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이 지닌 고유한 강점은 탄탄한 문제의식과 광범위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적재적소의 자료 활용을 통해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주로 19세기 말부터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기까지의 한국(인천을 중심으로) 내 화교사회 형성 및 그 발전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남방 상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초기 화교사회가 점차 북방 상인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로 이행하는 계기를 포착함으로써 한반도 화교사회는 주로 산동 출신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는 기존의 인식에 새로움을 더해 주었고 동시에 한반도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역사적 폭을 한층 확대시켜 주었다. 더욱이 기존 연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초기 군역상인에 천착하여 그들의 출신지가 주로 중국의 남방 즉, 광동성(廣東省)과 저쟝성(浙江省)이었다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이러한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은 소중한 연구 성과라 할 것이다. 또한 저자는 청일전쟁을 한반도 화교사회의 주요한 변화 계기로 보고 이를 전후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 위에서 화교(주로 화상華商)들의 세력교체와 조선 내 사회적 처우의 변화 그리고 상업경영 및 금융거래에 있어서의 근대성 확보에 대해 면밀한 고찰을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고력(苦力, 쿨리)이라고 불리는 화공(華工)들의 활동에 장문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역시 기존의 연구에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특히, 192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동으로부터의 노동 이민과 그들의 정착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사실상 현재 한국 화교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산동화교들의 뿌리가 이들 노동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여타 동남아시아 화교사회와의 비교연구 및 현재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데 하나의 참조체계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화공의 문제를 다루면서 당시 국내의 각종 언론보도를 근거로 그들과 조선노동자와의 갈등 및 충돌관계를 세밀하게 언급함으로써 이것이 점차 조선사회 내에 팽배해지기 시작한 일종의 화교배척 심리(배화의식排華意識)로 작용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로 보고 있다. 이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설명하는 완바오산(萬寶山) 사건1과 함께 구체적으로 고찰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중요시해야 할 것은 일본 요코하마 화교사회와의 비교고찰이다. 저자 자신이 결론 부분에서 말했듯이, “이 같은 작업은 요코하마 화교사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일본 화교사회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천과 요코하마의 근대 개항도시의 공통성을 전제로 상이한 화교사회를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243면)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이 부분에서 필자의 눈길을 잡는 것은 조선화교와 일본화교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개별 집단이 아니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연계된 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화교연구가 일국사적 수준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궁극적으로 근·현대 동아시아 역사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실마리를 화교로부터 제공받는다는 역발상적인 태도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연구는 이제 화교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華‘僑’를 동아시아를 잇는 진정한 다리로서의 華‘橋’의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후발 연구자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인천문화재단│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