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서울연극제 개막제를 하루 앞둔 날, 서울연극제 축제 집행위에게 한 통의 서류가 전달되었다. 공식 참가작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시설에 문제가 생겨, 극장 사용이 불가하다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이미 티켓까지 오픈한 상황에서 극장의 사용 불가 통보는 연극인들에게 공연 취소를 의미하는 것처럼 비춰졌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태가 어렵사리 봉합된 것이 불과 올해 초였다. 힘겹게 진행된 축제가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서울연극제는 또 다른 난제와 맞닥뜨린 셈이었다.

4월 3일,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시점은 개막제 전 날. 포스터도 대량으로 찍었고, 일부 공연의 경우 티켓까지 오픈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공연단체들은 저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를 대비해 공연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개막제는 예상대로 진행되었지만, 연극인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진행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사태가 긴박해지자 문화예술위원회와 공연예술센터에서는 급히 극장을 섭외해 대안을 마련해주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대신 제안한 극장은, 중극장도 안 되는 크기의 공연장들이었다. 공연 단체들은 이미 대극장을 염두에 두고 공연을 만든 상태였다. 일부 공연의 경우, 대극장을 위해 무대 장치를 제작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서울연극제 집행위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스스로 극장을 찾아 나섰다. 동시에 지난 13일 서울연극제 집행위는 아르코예술극장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 삭발을 감행하며 전면전에 임하겠다는 분기탱천한 태도를 보이기에 이르렀다. 지난 연말부터 붉어진 서울연극제 대관신청 탈락 사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번 사태와 접점을 이루는 것처럼 해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번 사태에 대한 기관들의 보복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MBC 방송국의 보도가 더해지면서 이런 해석은 더 힘을 얻고 있다. 사태는 이미 감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들은 왜 분노하는가

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주장처럼 극장 시설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면, 안전을 위해 극장 휴관은 당연한 조치였다. 한 발 더 양보해서 정말 긴급한 사안이었다면 축제가 시작된 다음이라도 극장 휴관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 연극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하필 서울 연극제 개막을 앞두고 날아든 불운 때문이 아니다. 이 사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다시 한 번 사태를 돌아보자. 공연예술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모터 구동부의 이상은 3월 10일에 발견되었다. 이에 3월 30일과 31일에 수리를 진행하다가 추가적인 이상이 감지되었고 결국 휴관을 결정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울연극제 집행위에게 휴관을 공지한 것은 4월 3일 저녁이었다. 단 하루가 아까운 상황에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3월 10일에 발견된 이상을 왜 20일 가까이 방치했던 것일까. 아무리 따져보아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는다.

게다가 사태를 대하는 그들의 관료적인 태도가 연극인들의 마음을 더 멍들게 하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와 공연예술센터 측에서 대안으로 극장으로 제시한 것은 4월 9일이었다. 대체 극장을 제안하는 시점도 늦었고 극장의 크기도 달라져 있었다. 물론 같은 기관 내에 소속되어 있는 극장을 우선순위로 찾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그들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적어도 예술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예술을 우선순위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연극인들을 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태 초반 모든 의사소통이 공문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같은 대학로 거리를 오가면서 문화예술위원회에서도 공연예술센터 측에서도 이 사태에 대해 얼굴을 맞대고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설령 불운에서 비롯된 일이라 할지라도, 공연장을 잃은 연극인들에게 명확한 설명 정도는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6.29가 보낸 예고부고장>(극단 광장)은 결국 무대를 축소해서 공연하기로 결정했고, <물의 노래>(극단 76단, 극단 죽죽)는 마포구로 지역을 옮겨서 공연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자신들이 제공한 극장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연을 올리기로 결정한 서울연극제의 선택에 유감을 표명했고, 늘어난 극장 임대료나 포스터 인쇄비 등속을 보상해줄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아무래도 문화예술위원회와 공연예술센터가 파악하고 있는 사태의 본질은, 연극인들이 인지하고 있는 사태의 본질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오늘날 연극 생태계의 자생력은 최악이다. 연극인들은 일을 해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고, 열정을 착취당해도 이를 연극 정신이라고 일컬으며 꾸역꾸역 버텨나간다. 그런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극장 휴관은 생존권의 침해와도 같다. 이런 사실을 왜 ‘그들’은 모르는 걸까. 공감과 위로는 행정 절차에 속하지 않기 때문인 걸까.

자본이 문화 관련 기관의 무기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검열이라는 고유의 무기가 사라진 이후 자본은 공공 기관의 강력한 무기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예술이 정부 기관의 후원을 받게 된 그 순간부터 이런 상황은 정해진 운명과도 같았다.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빚을 내야만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오늘날의 연극 제작 환경에서, 자본은 공공기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극장 문제도 결국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대극장을 민간에서 소유하고 운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르코예술극장과 같은 극장들은 공공 기관에서 운영할 수밖에 없고, 극장 이용은 피차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예술인들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부적격한 예술을 지원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니다. 공공기관을 갑으로, 예술인들을 을로 구별 지을 의도는 없다. 다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성과 투명성, 행정적 절차보다 예술을 우선시하는 유연성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예술행정은 예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비롯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