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

강태공은 세월을 낚으며 시대의 부름을 기다렸다. 아니, 사실 큰 뜻은 필요 없다. 낚시는 자연을 벗 삼아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유흥이었으니. 늦은 밤, 동네 아저씨들은 무장을 하고 물가에 나가 주말의 여흥을 즐겼다. 인고의 시간을 깨고 찰나의 순간 손아귀에 꿈틀거리는 묵직한 ‘손맛’은 범속한 세인들로 하여금 물아일체의 열락을 안겼다. 낚시의 과정은 표적을 정해 총구를 겨누는 사냥과 다르다. 생업의 목적보다는 손맛을 얻기 위해서, 심지어는 무목적성의 취미라는 점에서 어업에 소속된 여느 ‘물질’과도 다르다.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을 통해 자연이 되는 방식이자 수양이었다.

변화를 거듭하며 낚시의 의미는 변형되고 확장되었다. 낚시에 내포된 사회적 의미보다 낚시행위의 속성 자체가 사회현상에 빗대어 설명되기 시작했다. 활용의 다변화에는 무엇보다 자연에서 ‘온라인 바다’로 넘어오게 된 공간변화가 컸다. 속고 속이기 적합한 인터넷 공간의 유저들이 관심을 끌고자 거짓되고 왜곡된 문구로 독자를 현혹하는 행위를 ‘낚시’로 통칭하게 된 것이다. 속세를 버리고 자연에 몸을 담으며 손맛을 느끼던 쾌감은, 대중의 관심을 얻고 조회수를 높이는 만족감으로 번역된다. 오늘날 속세의 ‘낚시터’는 속세를 더 속(俗)스럽게 만드는 전술의 시장판이자 결투장이다.

현대적 낚시 개념을 역사에 펼쳐 놓으면 수다한 역사적 순간들, 현자의 이론들이 감긴다. 제욱시스는 포도를 그려 새를 낚았고 파라시오스는 가림막을 그려 제욱시스를 낚았다. 플라톤은 허상뿐인 동굴 그림자에 낚이지 말고 진리를 추구할 것을 성토했다. 장구한 서구 철학의 낚시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다. 시각적 착시효과는 미술에서도 애용해온 낚시기술이다. 자연에서도 낚시질은 낯설지 않다. 로제 카이유와는 벌레의 위장술로부터 미미크리(Mimicry)개념을 추출해낸다. 낚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일상적으로 활용되어온 전술이라는 것이다.

세속의 낚시질 역시 크게 다르지 않겠으나, 정도에 있어 급격한 편차를 보인다. 오늘날 낚시질은 도처에 산재한다. 온라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드라마의 예고편, 기사와 광고의 카피들은 오늘의 독자와 내일의 시청자를 유혹한다. 촌각을 다투며 상품이 명멸하는 가운데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관심을 갈구하는 컨텐츠의 경쟁은 낚시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기다림의 빈자리 대신 한탕주의적인 저격성 멘트가 넘쳐난다. 물건을 팔고 상황을 주도하기 위해 낚시꾼들은 화면 위에 보는 눈들을 현혹한다. 프레임을 활용하여 주목과 관심을 낚아라! 저널 프레임에서 기사카피의 설정은 더욱 중요해졌다. 기사배치와 글자크기, 폰트와 색상이 눈에 띄어야함은 물론, 한 마디의 문장 안에 내용 이상을 함축해야 한다. 향방을 알 수 없는 미래, 내일을 예상할 수 없는 오늘의 사회에서 키워드를 선점하는 것은 대세를 잡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유유자적의 대명사였던 낚시의 의미는 이제 순간의 관심을 얻기 위한 전술로 바뀌었다.

낚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끼부터 차별되어야 한다. 미끼, 즉 표제는 내용으로부터 추출되어 해체와 편집을 거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대개 내용과 딴판이기 쉽다. 내용전달보다 시선집중을 목표로 삼기 위해 본말전도는 기본이다. 본방에서 편집된 예고편이 자극적인 것도 같은 원리일 터, 낚시는 알맹이보다 포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다. 손에 쥔 실상에 실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욕망을 채우는가 싶었던 표제의 끝은 시들한 내용물뿐이다. 사전포고에 미리 품었던 걱정과 두려움은 이내 김 샌 안도로, 뒤이어 냉소와 불신으로 변한다. 예고된 재난은 허구였고, 대부분은 ‘카더라’ 류의 찌라시 혹은 왜곡에 가까운 각본에 다름 아니었다. 시시한 결말 속에 기대는 실 풀린 풍선처럼 실망의 상흔을 남기며 퍼져버린다.

왜곡과 오독을 피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소식을 전하는 기자는 ‘기레기’로 조리돌림 당한다. 낚시질도 쉽게 눈에 띄면 ‘관종’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시간을 버리는 사치스런 취미, 갈 곳 없는 ‘아비’들이 운신하며 속세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던 낚시는 이제 속세의 얇은 귀들을 그러모으는 관심종자들의 잉여질로 놀림 받는다. 하지만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가 일상이 된 상황이라면 낚시를 부정할 수만도 없다.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조차 관심의 표현이라면 그들은 기자임과 동시에 사실 가운데 극적으로 액기스를 뽑아내야 하는 카피라이터의 면모도 가져야 한다. 심증과 예감으로 일갈하는 기자에게 스토리텔링 능력은 필수적이다.

낚시가 대두한 환경에는 구조 변화도 언급된다.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으로 저널환경이 옮겨오고 우후죽순으로 자리 잡은 군소 언론사들이 생태계를 형성하면서 전문성보다는 주목도가 중요해진다. 검색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알고리즘을 따라 자극적인 키워드를 함축하는 것이 전략이 된다. 언론사의 순환보직시스템 속에서 저널의 전문성은 결여된다. 드라마의 경우 관례처럼 되어버린 ‘쪽대본’은 서사의 깊이가 상실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문성과 서사의 결여를 낚시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전문성과 서사여부와 상관없이 낚시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낚시가 일상화되어버린 ‘관심경제’의 체제이다. 순간적으로 관찰자를 현혹시켜야 하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둔다는 점에서 낚시는 상품시장 논리에 상응한다. 낚시의 활황은 관심 자체마저 자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마케팅 자체가 사실 전달보다 주목을 끄는 것에 초점이 맞춰짐은 자명하다. 내용보다 표제가 중요해짐에 따라 언론은 더 이상 객관과 중립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어 선별과 조사의 위치, 점의 개수까지 다른 의미로 확장됨에 따라 중요해지는 건 사실전달보다 내용의 강도이며, 사실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의 힘이다.

사건의 소비와 정보의 유통은 속도를 더한다. 가치와 위계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신뢰를 주고 있다는 표현이 필수지만, 표현에 집중하다 보면 신뢰를 줘야 할 내용은 뒷전이기 쉽다. 현란하고 자극적인 컨텐츠들은 정국을 은폐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사실과 언어의 어긋남 속에 실망과 배신의 에토스는 일상이 된다. 아니, 과잉된 언어는 사실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시비를 따질 수조차 없도록 한다. 가공된 현실들 속에 사건은 오리무중이 되고 판단은 보류된다. 사실 같은 거짓, 사실 여부마저 확인할 길 없는 미궁 속에 사실은 오염되기 쉽다. 아니, 오히려 오염되는 것은 확신 자체이다. 표제와 내용이 다를 때 독자는 분노하지만, 미끼가 없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사실로 만들려면 사실을 사실로 꾸미고 표현할 잔여와 수식들이 필요하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기호로 의미 매겨졌던 낚시는 이제 그 자체 사실의 지표가 된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의 사실일지라도 ‘액면’으로 포장되어 독자를 현혹한다고 말한다면, 나의 확신은 낚이고 난 뒤에야 가능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낚시에는 불신과 실망이 체화된 사회에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무관심과 냉소가 박혀 있다. 웬만한 사건과 서사의 강도는 불신과 냉소에 외면 받아 다른 사건에 금세 무뎌지고 잊힌다. 불황은 화폐경제 너머 정서적 황폐를, 만성불감증의 사회를 구성해나간다. 이른바 주목과 관심의 불황은 보다 ‘센’ 표현들을 대량생산한다. 표현은 강도를 더하지만 기대는 낮아진다. 불분명한 사실관계 속에서 막장과 재난의 표현 수위는 높아진다. 하지만 기대감소 시대에는 예상을 넘어서는 기대치 또한 평가 절하된다. 속을 만큼 속아버린 사회에서 횡행하는 것은 낚시법에 적응하는 매뉴얼과 체념일 터, 속을 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플레이는 낚시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내용보다 ‘드립력’을 평가하는 경향 속에서 독자들은 기대 대신 ‘예지력 상승’을 적시하며 낚시성 패턴을 꿴다. 눈치 빠른 독자가 아닐지라도 특정 컨텐츠에 대한 ‘주(조)작’ 여부를 의심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일련의 필터링을 거쳐 카피와 사실내용의 싱크로가 맞아 독자의 공감을 부를 때 낚시는 ‘저격’이 된다. 하지만 팩트는 어디까지나 ‘팩트’의 포장을 입은 수사일 뿐, 공감 또한 시청률과 수치적인 추천수로 평가된다.

생각해보면 낚시는 사후적 표현이다. 이미 허상이 허상임을 알아챘을 때 판단할 수 있는 뒤늦은 표현이란 얘기다. 독자 스스로 속임수에 반사된 자신의 욕망을 대면하게 되었을 때, 낚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된다. 낚여서 깨닫게 되는 진리란 당신이 기대한 실재가 빈곤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결여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실마리가 있다면, 낚시의 생태계에서 대중은 앞 못 보는 물고기이자 관심을 낚는 낚시꾼이라는 점이다. 오염과 왜곡의 체제 위에서 현명한 낚시꾼이자 현명한 물고기가 되는 것이 관건이다. 상황전반을 관망하며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이제 중요한 과제는 낚시의 생태계 안에서 나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낚시의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낚이는 동안에도 낚기를 기다리는 낚시의 게임을 어떻게 현명하게 즐기고 헤쳐 나갈 것인지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