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 한 샤오궁(韓少功)의 책이 국내에 또 한 권 번역되어 나왔다.
2006년 중국에서 출간되어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산남수북(山南水北)』이 그것이다. 2007년 『마교사전(馬橋詞典)』(심규호·유소영 공역, 민음사)이 번역되었고, 2008년 『열렬한 책읽기(閱讀的年輪)』(백지운 역, 청어람미디어)가 출간되었으니 해마다 한 권씩 한 샤오궁의 책이 국내 독자에게 소개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여전히 한 샤오궁이라는 존재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범상치 않은 품격과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샤오궁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작가다. 그의 인생역정이나 거대한 중국문화의 뿌리를 더듬어 내고자 하는 일관된 문제의식도 그렇거니와 그의 작품 형식 역시 일반적인 대중소설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일종의 방언사전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마교사전』이 아마도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매우 낯선 형식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중국문학이 직면하고 있는 곤혹과 그곤혹을 관조하고 있는 작가의 복잡한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산문집 『열렬한 책읽기』또한 국내의 독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번역 소개된 『산남비평공간수북』은 상대적으로 국내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일반적인 에세이 형식을 크게 벗어나 있지도 않을뿐더러 에세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나 내용 역시 비교적 익숙한 주제라 할 수 있는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 ‘자연과 전원으로의 회귀’ 등으로 포괄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한 샤오궁은 중국 남부 후난(湖南)성의 궁벽한 산골 마을 팔계촌으로의 귀향생활을 그려내고 있다. 한 샤오궁은 “현대의 페스트가 창궐한”, “화상을 입힐 것 같은” 도시의 소란을 피해 방 안에 걸려 있는 멋진 “산수화 속으로 뛰어들 듯” 고향에서 멀지 않은 어느 산골마을에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샤오궁은 한 산골마을의 소소한 역사와 사연들을 발견하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개성과관습, 금기들을 스케치하듯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한 샤오궁 스스로가 여행자가 아니라, “진정한 시골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었던 수많은 곤혹과 희열의 기록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 99편의 기록들 속에서 상상할 수 없이 황당하고 기발한 삶의 방식과 세계관, 사건들, 추악하고 사랑스럽고 다양한 촌사람들의 면면을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며 때로는 벌어진 입을 한 동안 다물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편을 더해갈수록 묘하게 이들을 빼닮아가는 능청스럽고 수완 좋은 이야기꾼 하나를 덤으로 발견할 것이다.

거기까지다. 그렇게 편안하게 읽으면 된다. 그러나 만일 독자들 중 누군가가 이 에세이 속에서 작가가 안내하고 있는 팔계촌을 넘어 ‘중국’을 읽어내고자 한다면, 그 순간 난해한 상징과 암호들 사이의 긴장으로 가득 찬 중층적이고 복잡한 숨은그림찾기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한 샤오궁이 담담한듯 그려 내고 있는 팔계촌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도시의 현실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일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번 문혁이 끝나갈 즈음에-필자 주 정신없이 이별을 고하고 도망쳐 나왔던 바로 그 곳’으로 다시 도망가기 위해 찾아들어간 ‘바로 그 곳’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품 속 궁벽한 산골은 그의 30년 창작생활의 귀착점임과 동시에 출발점인 셈이다. 따라서 이 모든 작
품 속 이야기들은 작가의 귀향생활에 대한 새로운 기록임과 동시에 작품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는 귀향이전의 자신의 인생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중층적인 해설과 주석이기도 하다. 눈치가 빠른 독자는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마교사전』과 『열렬한 책읽기』는 이 상징과 암호의 짝이 맞는 해독코드가 숨겨져 있는또 다른 암호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