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비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한국계 미국문학이 미국문학 안팎에서 비평적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사실 한국계 미국문학의 역사는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지만 그 오랜 시간만큼 미국문학의 변방에서 소외받아 왔기 때문에 최근 한국계 미국문학에 쏟아지는 관심은 반가움을 넘어서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한국계 미국문학이 문단과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문학 내부의 자발적인 추동력보다는 문학 외부의 흐름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국은 건국 초부터 다민족, 다문화 사회였지만 그 국가적 이념은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의 용광로(melting pot) 안에 녹이는 단일성에 치중해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특히 1980~90년대를 지나오면서 미국사회는 다양한 문화적 자장을 인정하고 흡수하면서 다문화의 가치를 좀 더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미국 각 대학에 아시아계 문화와 문학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이산, 탈식민주의 담론(post-colonial discourse), 전위, 환치, 탈지역(displacement), 초국가 문학(transnational literature) 등 여러 혼종의 개념들이 비평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한국계 미국문학 또한 활발한 비평적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영어로 씌어졌으면서도 주류 미국문학의 범주에서는 소수민족 문학으로 분류되어 비평의 경계 바깥에 머물러 있었고, 또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영어로 씌어졌다는 바로 그 언어적 이질감 때문에 외국문학으로 간주되어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존재해 온 그 한국계 미국문학 작품들은 그간 어쩌면 이중으로 소외되고 흩어진 공간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가지붕]내지                   ⓒPenguin│1998     

100년이 넘는 미국 이민의 역사에서 초기 1세대 한국계 미국인들의 목소리는 주로 자전적 이민의 경험에 토대를 준(準)자서전 형식 혹은 한국의 과거사를 기억하는 행위 속에서 보존되어 왔다. 1세대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강용흘(Young-Hill Kang, 1898~1972)의 『초가지붕The Grass Roof』(1931)이라든가 김난영(Ron-Young Kim, 1926~1987)의 『토담Clay Walls』(1987) 등은 제목에서부터 한국적 향토색이 물씬 풍기고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소설의 큰 토대가 되었다면, 노라 옥자 켈러(Nora Okja Keller)의 『종군 위안부Comfort Woman』(1998)는 한국의 불행했던 과거사가 민족과 성문제를 둘러싸고 반추된다. 1990년대 들어 이른바 한국계 미국문학 르네상스라 불릴만한 다채로운 문학의 장이 가능했던 것은 영어를 더 자유롭게 구사하는 1.5세대, 2세대 한국계 미국인들이 글쓰기의 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사실에 그 일차적인 이유를 돌릴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들 2세대들은 의대나 법대 등 미국사회에서 안전하게 자리를 잡으려는 과거 아버지 세대의 열망에서 벗어나 본격 문학교육과 좀 더 자유로운 글쓰기 교육을 통해 미국 이민사회의 안과 밖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한국의 평단에 한국계 미국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1995)를 쓴 이창래(Chang-Rae Lee)의 역할이 컸다. 이후 발표된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1999) 등 후속 작품들은 첫 작품에 쏟아졌던 만큼의 호응이 뒤따르지 않지만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정체성의 탐색을 그 사회 안의 여러 문제와 함께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큰 비평적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계 미국문학이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학문적 비평의 대상으로 부상한 데에는 앞서 짧게 언급한 것처럼 문화에 대하여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에 대하여 미국사회에 그간 진행되어온 변화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이라는 국가적 이념이 그간 일방적으로 구축해온 백인 중심의 가치, ‘하나 됨’에 대한 반성이 주류/비주류간의 경계 허물기로 나아갔고 문학의 영역에서도 정전(正典) 논쟁을 불러 오면서 한국계 미국문학 또한 백인 남성작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본격 비평의 장으로 초대된 것이다. 이것은 1970년대 이후의 발랄한 포스트모던 문화 양식의 세례를 입은 2세대 작가들이 기존의 회고담이나 자서전적 글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기법적 실험과 사실주의적 서사양식을 잘 버무린 작품을 속속 내놓았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플랫폼> 이번 호 특집으로 한국계 미국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실은 것은 이러한 변화의 자연스럽고도 합당한 반응이라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이들 한국계 미국문학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결국 모아지는 질문은 “한국”이라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질문이 국가의 경계 안팎으로 넘나들면서 사는 한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인가이다. 자기가 태어난 땅이 아닌 곳에 사는 이방인의 운명, 이산의 운명을 짊어진 개인 주체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다민족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기를 찾고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늘 화두처럼 따라다녔던 1세대 작가들의 고민이 2세대에 와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산의 자아, 추방된 운명을 사는 자가 타자와 맺는 관계들에 대한 질문이 2세대 작가들에 와서 한층 더 복합적이고 고민스럽게 주어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어로 글을 쓴다는 공통점 외에 작가들의 성장 환경이 더 이상은 제한된 지리적 경계, 미국의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작가들, 제니스 리(Janice K. Lee), 수잔 최(Susan Choi), 이민진(Lee Min-Jin), 알렉산더 지(Alexander Chee), 문나미(Nami Mun) 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 다른 지리적 공간, 다양한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며 이들이 선보이는 주인공, 그들의 세계가 부딪치는 문제들 또한 단순히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복합적이다. 제니스 리는 홍콩에서 나고 자랐기에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지만 딱히 미국인이라 할 수도 없고 소설의 공간 또한 식민지 시대의 홍콩이다. 미국사회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민 2세대의 자의식을 갈파한 이민진은 현재 미국을 떠나 일본에서 파친코를 다루는 두번째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계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지의 소설은 동성애와 성의 트라우마(trauma)를 다루고 있다. 한편 수잔 최는 테러 이야기를 가지고 민족적 범주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미국인의 문제에 직접 부딪치고 있다. 우리가 이들 작가들을 지칭할 때 드러나는 독특한 현상, 즉 이름이 미국식인 경우는 미국식으로 이름을 부르고 한국식 이름인 경우는 이창래, 이민진, 문나미와 같이 한국식으로 부르면서 이들의 정체성에 우리의 정체성을 빗대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없이 이미 이들 한국계 미국문학이라고 묶을 수 있는 작가들은 온몸으로 ‘탈경계’를 살면서 성과 국가, 민족 등 여러 가지 다른 층위에서 이산의 안과 밖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체화된 글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Riverhead Trade │1995      ⓒRiverhead Trade │1999      ⓒRiverhead Trad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