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과 봉준호라는 한국영화계의 두 거물이 칸 영화제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칸의 눈에 띄어서라기보다 한국영화나 감독들이 더 넓은 물에서 놀 수 있는 바탕을 서서히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두 명의 천재가 장(場)을 만드는 경우는 분명히 있으니까.
그래서 <플랫폼> 15호에서 다룬 하길종 30주기 기획이 반가웠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도 아니고, (아직은) 본 적도 없지만 그가 1970년대의 암울한 대한민국에 던져 준 새로운 영화미학은 오늘날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당시 유신정권의 영화정책이라는 권력적인 장애 앞에서 <화분>의 파란 기와집이라든가 <수절>의 언어들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전달하려 했다. 동시에 <바보들의 행진>에서 끊임없이 웃어젖히는 청년들을 등장시키며 은근한 언어로도 할 말은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영화에서 말하는 자유의 범위는 거의 무한대라서 성직자가 흡혈귀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아들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맛보고 다양한 삶을 마주하면서 재미나 공포를 느낀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돈을 지불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기본적으로는 영화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 이 사회를 헤집어서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는 찾기 힘든 것 같다. 정작 힘을 실어줘야 할 영화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유신정권도 아닌데, 좋은 인재도 많은데.
일찍 세상을 등진 하길종을 추모한다. 동시에 가위질 당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영화를 기다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