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관련된 책을 두 권 기획했다.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는 어린이박물관의 공식 도록인 『즐거운 역사 체험 어린이박물관』(2005)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을 지상(紙上)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정리한『미리 보는 국립중앙박물관』(2009)이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이런 난점을 고려했는지 개관 64년 만인 올해 역사관에 고려실을 새로 만들어 고려의 역사를 한눈에 보도록 배려했다. 그러면서 고고관과 역사관을 엮으면 우리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살필 수 있다는 의미로 상설전시에 ‘일맥상통 우리 역사’라는 이름도 붙였다.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는 역사관의 나머지 전시실들이 내용상 조선시대에 해당한다고 보면, 이제 고고관과 역사관을 아울러 우리 역사를 시대 순으로 배치한 전시가 완성된 셈이라고 보아도 좋다.
 

3실에는 원 간섭기와 고려 후기의 다양한 유물이 자리 잡고 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세운 ‘황산대첩비명 탁본’과 경원여진문자비는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유물이라고 한다. 고려인의 내세관을 엿볼 수 있는 사신문 석관을 별도의 진열장에 배치하여 네 방향에서 두루 살펴볼수 있게 한 것 또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려실은 의도부터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여주자는 것이었으므로 일목요연하게 고려의 역사를 살필 수 있도록 한 데는 성공한 듯하다. 1실부터 3실까지 유물을 따라가며 설명문을 읽고 동영상을보다 보면 고려 시대의 역사를 쉽게 머릿속에 담아둘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역사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전시실이 들어서고 보니 새로운 아쉬움이 눈에 띄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 애초에 상설전시를 고고관과 역사관으로 나누어 놓았을 때 고고관에는 각 시대 최고의 명품을 보여준다는 취지가 있었다. 북한과 중국에 주요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고구려를 제외하면 고고관에는 정말 빼어난 유물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신설된 고려실을 돌아보면 그 동안 왜 국립중앙박 물관이 이런 전시를 꺼려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려는 세계적인 명품을 많이 남긴 시대로 기억되고 있다. 그 가운데 최고봉은 아무래도 고려청자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고려불화, 팔만대장경 등 인쇄문화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고려실에는 이 유물들이 동원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소장하고 있지 않은 명품을 전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바람이 있다면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왕 고려 시대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로 작심한 이상, 국립중앙박물관 자신은 물론 관련 기관에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이곳의 고려실에서 고려의 최고 명품들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아울러 또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여섯 군데에 배치된 동영상이다. 요즘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주 관람객이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동영상도 주로 아동을 겨냥한 듯한 형식과 내용으로 제공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고려실, 나아가 국립중앙박물관의 다소 진중한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 관람객을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시 전체의 흐름에 맞추는 배려가 필요했다는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 통신역량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품격에 맞게 역사 문화 정보의 디지털화에도 최고 수준의 역량을 쏟아 붓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고려실의 신설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일맥 상통 우리 역사’뿐 아니라 ‘천하일품 우리 역사’의 전당으로 만드는 새 발걸음이기를 기원해 본다.

이미지이미지 제공_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