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일본의 구마모토가쿠엔(熊本学園)대학 강당에서 한국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2005)가 상영되었다. 다른 큰 영화제처럼 새로운 작품이 첫 선을 보이는 자리였거나 수상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고 직접 참석한 감독에 대한 관심도 크게 보였으며, 강당 내에서는 열기마저 느껴졌다. 영화제 진행자들과 관객 중에는 한국인도 적지 않았다. 필자도 그 중한 명으로 영화제 준비과정에 함께 했고, 심포지엄의 패널로도 참여했다. 6월 27일과 28일, 양일 간 열린 제2회 동아시아이주공생영화제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딛은 이 영화제의 간단한 역사부터 소개해야겠다. 구마모토가쿠엔대학에 재직 중인 한 한국인 교수가 주축이 되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일본에서도 ‘이주’가 현실의 문제 라는 것에 주목, 이 문제의식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조그만 영화제를 개최한 것이 2007년이었다.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지역주민들로부터 일정한 호응도 받았다. 2회는 좀 더 내실을 기하기 위해 준비기간을 길게 가졌고 그간 쌓아온 일본 내 네트워크와 한국의 영화관련 단체 및 개인들의 참여가 더해지면서 훨씬 커진 규모의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개막식에서 필리핀 이주공동체의 여성들과 아이들이 전통무용을 선보이며 영화제의 한 주인공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영화제의 의의를 확인시켜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영화제는 출발부터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개인과 시민단체들이 결합해서 준비했다. 그리고 이주문제의 중심에 있는 공동체가 참여함으로써 지역 축제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영화제는 영화만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준비과정에서부터 지역민들이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최 측은 지역단위의 이주문제를 가지고 있는 도시들이 비슷한 영화제를 개최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경험을 공유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미 다른 도시에서 비슷한 뜻을 가진 관계자들이 옵서버로 영화제에 참여했다. 이런 제안의 실현이 그리 먼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한 일본 중년여인의 발언도 기억에 남는다. 해외에서 흑인과 국제결혼을 한 딸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폐쇄성을 접고 공생을 지향하는 이 영화제의 정신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말과 더불어 무겁지 않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