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역사박물관(新宿歷史博物館)’에서 <니시키에로 본 에도 말기와 메이지의 동아시아상(錦繪から見た幕末明治の東アジア像)展>이라는 기획전시가 열렸다. 니시키에란 에도시대에 성행한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의 일종으로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다색도 목판화를 뜻한다. 니시키에는 미인, 가부키(歌舞伎) 배우, 풍경 혹은 역사나 소설의 장면을 그려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에도 말기부터는 당대의 사건 등을 전해주는 보도사진 비슷한 역할을 하였으며 메이지 초기에는 근대도시로 변모하는 도쿄의 모습을―어떤 때는 풍자적으로―묘사한 니시키에가 제작되었다. 메이지의 니시키에는 사실적인 묘사가 많아지고 등장인물의 용모도 서양적이었다. 러일, 청일전쟁 때는 전쟁화가 그려졌으나 보도 미디어로서의 니시키에는 차차 석판화나 동판화, 그리고 사진에 밀려 곧 그 역사적 사명을 마쳤다.

이번 전시는 주로 한반도에 관련된 니시키에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신화의 인물인 진구황후(神功皇后)의 삼한정벌(三韓征伐)을 제재로 한 그림이나, 몽고가 일본을 내습했을 때 가미가제(神風)가불어서 몽고군을 막아준 장면의 그림들이 있다. 또,에도 말기에 그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의 조선출병>이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1562~1611)의 호랑이 사냥> 등의 니시키에는 당시 고조되어 있었던 배외사상(排外思想)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싸움터를그린 전쟁화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전시회를 본 전체적 인상은 약간 산만했다. 일본의 침략전쟁을 추진하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측면을 강조하는 니시키에가 많은 한편, 조선통신사 그림도 있고 또 옆방에서는 벼농사나 불교가 한반도에서 전래된 역사를 <조선반도에서 전해진 선진문화와 기술>이라는 제목 아래 패널로 간략하게 설명한 전시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시키에 컬렉션의 소유자인 강덕상(姜德相,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 씨가 이들 니시키에를 일본의 침략전쟁을 고발하는 목적으로 모았음은 그의 저서 『니시키에 속의 조선과 중국(錦繪の中の朝鮮と中國)』(2007)을 보면 분명하다. 과연,외국을 물리치려는 에도막부의 의도와 밖으로 팽창하려는 메이지정부의 의도는, 니시키에가 과장되고
단순화된 그림이니만큼 더욱 선명히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결론을 읽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강덕상 씨는 일본의 인기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1923~1996)의 다음과 같은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그것에 대한 반론으로서 니시키에 컬렉션을 제시했음을 밝히고 있었다. “명저 『언덕 위의 구름』(1986) 시바의 장편소설-인용자 주에 묘사되어 있신주쿠역사박물관, 2009.5.23~6.21, NPO법인 고려박물관과의 협동기획전)는 것은, 러일전쟁 때 용명을 떨친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사네유키(眞之) 형제 등의 인물을 낳은 메이지는 영광스러운 시대였지만 그 후 간신(奸臣)이 된 군벌과 정치가가 나라를 망쳤다는 역사관이다.”(93면) 이런 해석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내가 보기에 그 소설이 알려준 것은 일본의 근대가 첩첩이 쌓인 아군과 적군 병사들의 시체더미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평범한 개인들의 피땀 위에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러일전쟁의 승리가, 기실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거둔 것이었음을 밝히고, 군신(軍神) 노기(乃木) 장군을 쓸데없이 많은 병사들을 전사시킨 우장(愚將)으로 끌어내린 것이 『언덕 위의 구름』이었다. ‘영광스러운 메이지’를 그리려면 작가는 러일전쟁 종결과 함께 소설을 끝냈어야 하는데, 시바는 아키야마 형제의 행적을 더듬으면서 전쟁 후의 공허감을 집요하게 그리고 있다. 형 요시후루는 은퇴 후 육군과의 관계를 일절 끊고 시골 중학교 교장으로 생을 마쳤고, 전쟁의 비참함에 충격을 받은 동
생 사네유키는 종교에 빠졌다. 황국사관(皇國史觀)에 대한 증오심으로 뒷받침된 이 소설은 ‘대동아전쟁’(1941~1945)에 지친 전후 일본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을 그린 작품에 내셔널리즘이 보인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시바 료타로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근대초기 일본이 독립을 지키려면 강대한 국민국가를 만드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라는 쓰라린 역사인식이다. 평론가 마쓰모토 겐이치(松本健一) 씨는 시바가 “신음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시바 자신이 국민국가를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메이지정부의 의향에 따른 러일전쟁 니시키에는 용감하게 싸우는 일본병사들을 그렸지만 소설가는 그려지지 않은 사실과 서민들의 생활감정을 밝히려고 했다. 그 노력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