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상반기 중국에서 드라마 <잠복(潛伏)>은 도시의 화이트칼라, 지식인, 대학생 등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당신도 요즘 ‘잠복’합니까?”라고 물었고, “<잠복>을 보지 않으면 친구도 아니다”라는 말도 생겼다. 많은 네티즌들은 드라마에 대한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언론매체의 호평은 줄을 이었고, DVD도 동이 날 지경이었다. <잠복>이 전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대중문화의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이 일으킨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잠복>은 공산당 고급정보원의 지하활동을 그린 드라마로, 두말 할 것 없이 정치 홍보 드라마이다. 방영 이후 수많은 매체들은 1949년 이전 지하활동을 했던 공산당원들을 인터뷰하며, 드라마 속 지하활동의 사실 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모은 <잠복>의 힘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하활동을 펼치는 정보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굳은 신념(물론 이것이 드라마를 전개하는 데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지만)을 그렸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잠복> 곳곳에 녹아있는 대중문화의 유행코드 때문이었다.

<잠복>은 수많은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 전형적인 첩보드라마이다.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가 시작된 시점은 항일전쟁(1945)에서 승리하기 바로 전날 밤이다. 국민당 부대에서 특공 임무를 총괄하던 위 저청(余則成)쑨 홍레이(孫紅雷) 분은 공산당원들의 희생정신에 감동 받아 공산당 지하 활동가가 되어 국민당 군사통계국 톈진(天津)지부
에 잠복한다. 위 저청이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벌인 지하활동은 ‘속고 속이는 첩보전’으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심리전, 총격전, 간첩생활 등은 <우지엔다오(無間道)>(2002)부터 <안잔(暗戰)>(1999), <헤이서휘(黑社會)>(2005)와 같은 홍콩영화, 드라마가 주로 선보이는 소재로, <잠복>은 의도적으로 이 소재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유머도 최근 뜨는 드라마들이 놓치지 않는 요소이다. 쑨 홍레이의 가짜 아내 취핑(翠平) 야오 천(姚晨)은 <우린와이
촨(武林外傳)>(2005)에서 보여준 웃기고 과장된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서 취핑의 등장은 긴장을 풀고 웃게 한다.


그러므로 <잠복>의 인기는 대중문화의 승리라 볼 수 있다. <잠복>에는 납치, 암살, 비밀 전보,기밀 빼돌리기 등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들이 즐비하다. 미녀와의 사랑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남녀 주인공은 한 집에 살면서 ‘혁명을 위한 가짜 부부’ 행세를 하는데, 시청자들은 밀고 당기는 그들의 감정전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포복절도하기도 한다. 드라마 결말 부분에서 위 저청의 ‘진짜’ 아내가 된 취핑은 먼저 톈진지부를 빠져 나간다. 위 저청은 어렵게 얻은 국민당 잠복 특무원의 명단을 공산당에 전달하지 못해 고심하지만, 명단을 전하지 못하고 대륙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출국 직전, 취핑을 만나 그녀에게 정보를 암시한다. 취핑은 타이항산(太行山)의 집으로 가 아이를 낳고, 위 저청은 국민당 부대를 따라 타이완과 홍콩으로 건너가 잠복 임무를 수행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헤어진다. 이런 결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국민당과 공산당, 중국 대륙과 타이완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 미묘한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민감한 정치 요소가 드라마에서는 대중문화의소비품으로 변한 것이다.

<잠복>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시청자들은 그것을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드라마로 생각했다. 네티즌들의 토론 내용을 보면 그들이 그것을 직 장생활의 교과서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서로 암투를 벌이는 것 을 두고 싸움의 철학을 논한다. 또 위 저청의 생존전략에서 출세의 법칙을 찾아냈다. 시청자들이 봤을 때 국민당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 톈진지부는 오늘날 중국 대륙의 정치판(직장)의 축소판이다. 지부장우 징중(吳敬中)은 모략의 달인으로, 지부 안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알고 있으면서도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어부지리를 취한다. 소령 위 저청은 겉으로는 모<잠복>의 한 장면든 명령에 순종하며, 야심도 모략도 없는 척 하지만 사실 웃음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그 칼을 뽑아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위 저청은 중령 마 퀴(馬奎), 루 차오산(陸橋山), 리 야(李涯)와 다투는 과정에서 갈등을 조장하고 그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지부장의 탐욕과 이기심을 이용해 부지부장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뛰어난 처세술을 가진 위 저청은 직장 생활을 하는 화이트칼라들에게 멘토였다. 반면교사로 손꼽히는 행동대장 리 야는 국민당에 일편단심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다. 그는 일
찍이 위 저청이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아첨할 줄 모르는 그는 아무리 전심전력으로 일해도 상사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결국 그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전형적인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중국 대다수 네티즌들은 위 저청의 잠복은 보고 배워야 하는 인생의 전술이라고 생각한다.반면, 위 저청의 중국공산당 간부로서의 임무, 이상과 신념, 인민에 대한 충성심, 소박한 생활 습관, 고결하고 지조 있는 성품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악역으로 나오는 셰 뤄린(謝若林)의 대사가 크게 유행했다. “여기 금괴 두 개 가 있네. 둘 중 어느 것이 더 값어치가 있는지 알 수 있겠나?” 이 말은 배금주의를 합리화시킨 말로 앞다퉈 쓰는 말이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 사회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직, 선량, 사회도덕,이상, 신념은 개인의 생존, 경쟁, 욕망과 이익 추구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 화이트칼라들은 일하는 동안 압박하고 속이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 금괴 두 개이 보여주는 인생철학을 통해서 중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번역_鄭珠恩동시통역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