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광도시 인천’, ‘명품국제도시 인천’. 오늘도 인천은 시끄럽다. 정부는 2001년 한국방문의 해 선정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는 매년 지역방문의 해를 선정하여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각 지역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2009년은

바로 인천방문의 해다.

얼핏 생각해보아도 인천시는 관광을 시의 주요사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1995년 행정 개편으로 말미암아 옹진군과

강화군이 광역시에 소속됨으로써 매우 넓은 지역을 그 관할로 두었을 뿐 아니라, 도심 또한 역사적으로 수도 서울과

가장 가까운 항구 역할을 함으로써 그와 관련한 적지않은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이와 같은 자원들을

가지고 관광사업을 운운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특히 인천도심에 산적한 문화유적들은 산업화시기를 거친 후 더욱 많은 조명을 받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처음 근대 서구문명이 들어온 곳으로 그만큼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명들이 공존했고, 또한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표되는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기에 그 유적들의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근대와 현재의 공존. 연안부두에 집중되어 있던 산업

시설들을 북항과 송도로 이전하고 그 지역을 관광지구로 개발하려는 인천시의 장기적인 계획 또한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계는 여러 모습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연수구 청학동에 위치한 인천외국인묘지는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개항 이후 국내에서 활동하다 사망한 외국인 외교관, 통역관, 선교사, 선원, 의사들이 묻혀 있는 인천외국인묘지. 그곳은 1883년 인천 중구 북성동에 개장된 이후 인천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던 외국인들의 무덤을 1965년 5월 25일 지역 개발에

따라 청학동으로 이전하여 새로 조성한 곳으로, 미국인 묘 17기, 독일인 묘 11기, 영국인 묘 9기, 러시아인 묘 5기, 이탈리아인 묘 3기, 오스트레일리아인, 네덜란드인 묘 각 2기, 프랑스인, 캐나다인, 스페인인, 폴란드인, 체코인, 중국인 묘

각 1기와 국적 불명의 묘 11기 등 모두 66기의 묘가 안치되어있다. 따라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클 수밖에없다. 다

양한 국적의 장묘문화가 공존하는 그곳은 100여 년 전 여러 국가들과 교류했던 인천 역사의 궤적이며, 또한 영어를 글로벌화의 기준으로 삼고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진정한 국제화의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시 우리 선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글로벌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일요일 오후에 찾아간 인천 외국인묘지는 폐허에 가까웠다. 무분별한 개발로 말미암아 묘지가 위치해 있던 ‘공기 맑고 한적한 청학동 53번지’는 아파트촌의 뒷산이 되었고, 잠긴 자물쇠 너머 덩그러니 자리한 묘지는 흉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이 묘지의 역사적 의미를 모른 채 그앞에 돗자리를 펴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인천외국인묘지의 관리 상태는 좋지 않았다. 무덤은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울창한 나무 밑 음지로 변해 있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올 수 있는 방문객의 발걸음 역시 자물쇠가 막고 있었다. 집이건, 무

덤이 건 산 사람이 들어야 본디의 기능을 할 터인데 출입을 통제해 놓으니 묘지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올해 초 지역 언론에서 이와 같은 관리 실태를 보도했기 때문일까? 몇 기의 무덤 앞에는 한단체장의 이름으로 놓인 작은 화환이 놓여 있었고, 무덤 주인에 대한 자그마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임기응변식의 대처와 안일한 책임의식

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인천외국인묘지의 현실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건 서울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었다.양지바른 곳에서 많은 이들

의 발걸음을 환영하고있는 그곳. 무엇 때문에 인천과 서울의 외국인묘지는 이리도 큰 차이를 보이는 걸까? 가장 큰 차이

점은 그 묘지들이 지니고 있는 공간적 의미였다. 인천외국인묘지가 도시개발에 떠밀려 기존의 개항장과 상관없는 장소

로 이전하여 역사적 맥락을 잃어버린것에 반해 서울의 외국인묘지는 급격한 산업화와 개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키고 있다.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기념비가 되어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다. 더구나 서울 외국인묘지의 주인은 대부분 선교사인 까닭에 그 옆에는 조선시대 1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

다는 절두산 성지가 천주교의 관리 하에 종교적 근엄함을 유지하고 있고, 반대편에는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회가

건립한 100주년기념교회가 무덤의 경건함을 지키고 있다.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는 동시에 공간적 의미도 보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관리주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기독교와 천주교 두 종교 단체가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로 보존

하려 하는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과 관광을 이유로 보존하려는 인천외국인묘지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서울외국인묘지 안내판에 적혀져 있는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니 참배객들은 예의를 갖추라’는 문구는 이를극명하게 보

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문화유적이 발굴되고 보전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관광자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유적들을 통해 과거를 배우고,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며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천외국인묘지의 관리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