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대상물에 불과하다. 우리가 어떤 대상물을 좋아한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다. 특히 로봇에 매료된다면 뚜렷한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우리가 패턴 없는 곳에서 패턴을 인식하고자 무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 내려는 욕구 때문이다. 그런 욕구를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도있다. 신(창조자)이 되고자 꿈꾸는 인간(피조물)의동경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로봇에 대한 갈망을 반드시 형이 상학적인 방식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 솔직히 로봇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여주는 생명체의 경이로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하는 인간의 미약한 능력에 대한 자각이기 때문이다. 그냥 더 크고, 더 세고, 더 빠르다는 물리적 능력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사람이 로봇에 매혹되는 시기는 대개 어린시절이다. 어른들에게 통제받고 덩치 큰 심술쟁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은, 그러나 적절한 해결책조차 마련할 수 없어 난감해 하는 나이일 가능성이 높다. 로봇은 물리적으로 약자인 소년(소녀)에게 상상 속에서나마 권능(權能)을 꿈꾸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로봇은 좀 더 크고 날쌔고 힘센 모습으로 텔레비전과 영화에 등장하고, 유소년들은 거기에 열광한다. 심지어 어른들도 어린시절 멋진 친구 노릇을 하던 장난감 로봇의 모습이 화면에서 살아 움직일 때, 묘한 감동에 젖는다.

그렇다고 로봇의 효용을 힘에 대한 치기 어린 무조건적 숭앙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로봇은 인체의 움직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교과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몸은 세계의 일부분이기에, 로봇을 통한 몸에 대한 관심은 결국 세계의 작 동원리에 대한 관심과 직결된다. 보이지 않는 삼라만상을 이해하기에 앞서, 로봇을 통해 스스로의 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즐거운 놀이인 동시에 상상의 경지로 의식을 확장하려는 준비 작업이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세계를 향한 창문으로 로봇이라는 대상물이 떠오르는 순간, 세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상물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식에 포착된다. 로봇이라는 대상물에 우리 자신의 상상과 소망을 투영하는 순간, 로봇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타자(他者)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상징이 된다. 로봇에 성격과 인격이 주어지고 다시 역사와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순간, 로봇은 생생한 타자로 변신한다. 그렇게 생성된 타자의 지위를 철저하게 종속적인 것으로 폄하하여 섹시 로봇의 역할로 그치게 할 것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에 버금가는 깊은 내면의 고백으로 승화시킬지는 물론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저 놀이대상에 불과해 보이던 로봇이 독립적인 대상물로 존재감을 얻는 순간, 그와 함께 세계의 존재와 뜻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그러한 세계 내 존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자신과 타자 사이의 갈등과 공존 가능성에까지 우리의 의식이 확장된다는 점이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건너편에 자리 잡은 로봇박물관은 이렇게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을 품은 곳이다. 2층 출입구를 지나면 제1전시관은 방학을 맞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찾은 어린이들로 북적인다. 입구 쪽에 여러 가지 로봇 장난감이나 기념품 판매대가 있고, 2008년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아이로비Q 로봇이 기다린다. 이제 곧 도우미 누나(언니)를 따라 로봇이야기가 펼쳐질 참이다. 소극장 화면 크기의 설명용 패널이 벽에 붙어 있고, 그 앞에서 아득한 옛날부터 21세기를 넘어선 로봇의 유구한 역사와 꿈을 엮은 소개가 시작된다.

그러나 로봇의 역사에 대한 첫 설명은 너무 길다. 아이로비Q와 함께 애쓰는 가이드의 설명이 친절하지만 말이다. 가이드의 탓이 아니다. 너무많은 것들을 패널 안에 집어넣었기 때문이고, 또 그중 대부분을 로봇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내용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어느 장르이건 애호가들이 두루 보이는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장르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최초의 역사를 앞당기고, 분수령을 몇 개 더 만들고, 앞으로의 발전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로봇의 역사와 미래를 개괄하는 첫 시도는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자동인형(automaton)과 실존하지 않는 스케치와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동화 속의 피노키오속에 파묻혀 종잡을 수 없이 지루한 이야기에 그치고 만다.

건너편 벽으로 눈길을 돌리면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최초의 로봇들이 보인다. 하지만 최초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은 늘 버겁다. 수작업 공예품과 대량생산된 장난감이 뒤섞여 세계 각국의 최초의 로봇들은 장난감이나 모형과 혼동되면서 서서히 진지한 기계공학적 경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사실 로봇박물관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이렇게 엉뚱하거나 의아한 뒤섞임에 있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프랑켄슈타인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들은 과연 로봇일까? 이러한 의문은 건물 3층에 위치한 제2전시관에 올라서면 더욱 증폭된다. 로봇을 종류별로 나누어 전시한 구역에 이르면, 생체모방로봇이라는 주제에 따라 각종 동물 모양을 한 로봇들이 보인다. 강아지 모양을 한 로봇은 진정한 로봇일까, 금속과 직물을 사용하여 만든 동물 인형일까? 동물이 아니라면 각종 장치들도 마찬가지이다. 자동차 로봇은 진화된 자동차일까, 로봇일까?

수집가의 집요한 수집벽은 큐레이터의 현란한 상상력과 맞물리면서 어둡고 침침한 제2전시관을 진정한 박물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로봇과 디자인의 역사를 엮어, 신고전주의에서 입체주의,아르데코(Art Deco), 팝아트를 거쳐 현대미술에 이르는 사조에 따라 적절한 로봇의 디자인 양태를 보여 주는 대목에 이르면, 이제 박물관이 단순히 소장품의 진열을 넘어서는 문화공간이자 또 다른 차원의 창작공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이제 아쉽게도 박물관을 나설 때가 되었다. 어린이들은 놀랍게도 조용하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로봇이 설령 진정한 로봇과는 거리가 멀고, 로봇의 발전과 미래가 국가적 자산과 자긍심과 맞물린다는 억지주장 따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들은 로봇을 통해서 소중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소망과 욕망의 차이를 깨달으며, 세계의 작동원리를 궁금해 하면서 드디어 자신과 타자 사이의 간극을 깨우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이 제대로 소장품을 관람하기에 좀 더 편안하도록 4~5층 높이의 어른 키보다 높은 전시대를 좀 더 낮추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