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오정희

지난 10월, 「중국인 거리」(1979)의 작가 오정희를 만났다. 「중국인 거리」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한 소녀의 눈을 통해 전후의 인천 차이나타운 풍경을 세밀하게 복원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이 올해로 서른 살이 되었다. 평단과 독자층의 지지를 고르게 받고 있는 이 작품은 1970년대 한국소설을 대표하는 명편 중의 하나다. 작품을 쓸 당시의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기억 속에 남은 차이나타운, 그리고 오늘날의 인천에 대한 생각을 짤막하게 들어보았다.

일시 : 2009년 10월 13일 오후 4시
장소 : 카페 에비뉴(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진행 : 이현식_문학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
사진 : 유다진_본지 편집담당

이현식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작품 「중국인 거리」의 발표 30년을 조그맣게나마 기념하자는 취지로 마련되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바와 같이 「중국인 거리」는 전후의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를 매우 날카롭게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만큼 배경이 된 장소의 독특한 자질과 주제의식이 밀도 있게 결합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한데요, 우선 이 작품을 쓴 시기를 회고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오정희 제가 1947년생이니 이 작품을 쓸 때 서른 셋 정도였어요. 그러니 너무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린 작품이라 회고가 정확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소설은 대략 1954년에서 1959년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1959년도에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지요. 부모님이 황해도 분들이셨는데 1947년에 배를 타고 월남해서 저를 낳았습니다. 사직동에 살다 아버지 사업 때문에 인천에 잠시 와있었던 거예요. 당시 차이나타운에 사는 이들은 모두가 중국 사람들이었어요. 아이들이 참 많았는데 한국말을 알아도 일체 하는 법이 없어 우리와는 전혀 교류가 없었지요. 우리들 사이에서 중국인들은 모두가 부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당시 중국인들은 대부분 무역을 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무역하면 부자인 줄 알았던 거죠. 건물들도 모두 닫혀있어서 얼마나 궁금했는지, 그 앞을 서성이기도 하고 그랬어요.

ⓒ한림출판사 │2004

이현식 우리나라 소설엔 외국인 묘사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일제 때 소설에도 일본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이상화되어있거나 배경으로 그려지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중국인 거리」는 다른 것 같아요. 작품에 그려진 화교나 일본인 모녀는 인천을 디아스포라적 장소로 보이게 합니다. 외국인들을 그리게 된 계기라면?

오정희 이 작품은 우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과 미지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나를 열어가는, 일종의 성장소설입니다. 그리 오래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 시절 인천은 제게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지요. 청소년기 특유의 혼란과 전후의 사회상, 미군부대 또는 미국에 대한 동경이 뒤섞여서가 아닐까 해요. 게다가 양공주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녀들이 자기 가족을 먹여 살렸었죠. 당시 미국인들은 미지의 대상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구호물자를 주기도 했으니 미제라면 뭐든 좋다는 식의 농담이 있을 정도로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반면, 중국인들과는 특별한 교류가 없었어요. 중국인 거리에 대한 확실한 명칭도 사실은 없었지요. 중국동네라 부르기도 했었는데 나중에야 차이나타운이란 이름이 붙은 거예요. 어릴 때 전족을 한 여자들이 저녁 무렵 모여드는 모습을 보면 참 이상했어요. 머리를 동그랗게 묶고 은귀걸이 하고 뒤뚱거리면서.

진행자 이현식(우)


이현식 이 작품에는 미국인과 중국인, 한국인이 함께 모여 살았던 인천의 장소성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지금의 인천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오정희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인천은 뭔가 다른 공간이었어요. 전후의 폐허 위에 언제나 무언가를 짓고 있었지요. 늘 뭔가 끓이고 섞어서 벽에 칠하고 있는 중이었고, 미국인이니 중국인이니 외국인들이 어울려 있어서 지금 생각하면 ‘국제도시’였던 거예요. 일본식 집들, 중국식 집들도 많았죠.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독특했어요. 아, 그리고 바다! 어떻게 그렇게 큰 배들이 다닐 수가 있어요? 이상한 느낌이었죠. 지금 인천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너무 비대해진 것 같아요. 내 마음 속의 인천은 여러 이국정서가 뒤섞이고 약간은 혼란스럽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곳인데, 그래서 제물포구락부나 옛 건물이 남아있는 걸 보면 좋아요. 살릴 수 있는 건 살렸으면 좋겠어요. 역사가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라진 중국집들을 떠올리면 서운하지요.

이현식 작품의 배경이 된 중구 일대는 인천의 특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입니다. 문화적 활용을 위한 보존에 힘쓰고 있지요. 자장면박물관, 최초사박물관 등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오정희 대환영이에요. 옛 분위기가 그 정도로 남아있는 곳이 없으니 한국의 명소가 되지 않겠어요? 제가 살고 있는 춘천에서 춘천 거주 작가들에게 춘천에 대해 쓰라고 지원해준 적이 있었어요.

이현식 인천문화재단에서도 인천 배경 시나리오를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 시집이나 에세이집 출간, 전시회도 활발하고요. 소설도 꽤 적지 않게 나와 있는데, 그러고 보니 인천 배경의 소설들에는 성장기의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인 거리」뿐만 아니라 현덕(玄德)의 「남생이」(1938), 김중미(金重美)의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 등이 그렇지요. 이것도 흥미로운 대목인 듯합니다.

오정희 이 도시의 유동적 특징이 성장기의 인물들과 잘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르겠네요.

이현식 <고양이를 부탁해>(2001)라는 영화도 배경이 인천인데 상업계 고교를 졸업한 소녀들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이너리티 이야기인데, 인천의 이미지가 그런지도 모르죠. 앞으로 문학적인 접근이 더욱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오정희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 목표겠죠. 쓸 것들이 많아요. 제물포구락부에서 자료들을 복사해왔어요. 인천에 대해 쓰고 싶은 게 있어요. 어릴 때라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묘한 분위기가 제 정서에 영향을 끼쳤어요. 전에 쓰다 만 소설도 하루 동안 인천에 다녀온 일을 쓴 것인데, 아직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 자유공원에 올라가서 불꽃놀이를 구경했던 기억이 있어요. 미국 독립기념일이라 자기들 축제삼아 불꽃놀이 했던 거죠. 인천 사람들 모두 자유공원에 올라가서 그걸 구경했었어요. 미국 독립기념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중국인 거리」에 쓴 것처럼 체코, 폴란드 물러가라고 데모를 하거나 야경 보러 오르기도 했었죠. 그런 기억들을 복원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어요.

이현식 여러 가지 흥미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들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