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도시는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모더니티와 포스트 모더니티 경험이 집약되는 곳이며, 일과 쉼의 모순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충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도시인들은 편리함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합리성과 기능성에 이끌려 도시생활의 안락을 꿈꾸고, 그러한 꿈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소망처럼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도시의 삶 속에서 다양한 모더니티의 경험을 통해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현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사이에 시계추처럼 부유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모던 도시이든지 포스트모던 도시이든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시는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시공간을 제공하는 불가해한 삶의 현장일 수밖에 없다.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위한 대규모 학술대회가 인천에서 열렸다. 인천세계도시인문학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을 위한 미래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에서 열린 이 대회는 2009년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인천 하버파크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 도시에 대한 종래의 접근이 경제적 합리성과 효율성, 기능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다는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려는 목적과 더불어, 인간과 미래를 위한 도시문화의 창달을 위해선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절실하다는 인식에서 기획된 것이다. “사람의 도시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큰 주제 하에 열린 이번 대회에서는 도시인문학의 다양한 주제와 내용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첫 번째 기조강연자인 앤서니 D. 킹(Anthony D. King) 교수는 「다양한 모더니티에 대한 탐색: 모던 도시를 가리키는 기호들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최원식 교수는 「도시를 구할 묘약은?」이라는 주제로,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 교수는 「포스트모던 도시와 공간」이라는 주제로 각각 도시 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쟁점들을 제기했다. 총 3개의 기조강연 주제와 모두 9개 세션에서 도시 문제와 관련된 다양하고 심도 있는 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9개 세션의 주제는 각각 “‘근대도시’의 형성과 변화”, “도시인의 일상성과 정체성”, “동아시아 개항도시: 연구현황과 과제”, “도시이미지와 자기연출”, “도시의 감각과 욕망”, “도시, 모순과 역동의 공간”, “‘이상도시’, 그 꿈과 기획”, “‘낯선’ 공간에서 ‘정겨운’ 장소로”, “인문학자와 도시계획학자의 대화: 인간의 얼굴을 한 도시를 위하여” 등이었다.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에 기초하여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인간적인 도시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을 다각도로 조망하기 위한 자리였기에, 도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참가자들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되었다.

앤서니 D. 킹 교수는 모던 도시를 정의하는 기호적 특징에 대한 질문을 통해 다양한 모더니티에 대한 탐구를 주문했다. 모더니티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표기되어야 하는 것처럼 모던 도시 역시 다양한 의미를 고려하여 다각도로 조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원식 교수는 도시에 포섭당한 농촌의 표상을 소설 속 유령 ‘엄마’의 모습에서 발견하고, 도시와 농촌으로 대표되는 이분법의 해체를 통해 미래도시의 모델을 찾아 나설 때가 되었음을 주장했다. 미셸 마페졸리 교수는 「포스트모던 도시와 공간」이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을 통해 포스트모던 도시를 ‘절대적인 상호의존성’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문화적 공간이 갖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포스트모던 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상호의존성을 실현할 수 있는 상호의존과 상호연계에 바탕을 둔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도시와 공간의 일상성을 웹 공간에서의 상호의존성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도시인의 일상적인 경험이다. 도시인의 일상성에 주목하는 일은 도시문화의 형성과 변화를 통해 도시인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한 시발점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문학, 역사학, 철학, 예술, 미디어, 건축,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시에 대한 접근이 소개되고 논의되었다. 문학이 도시인들의 도시를 대면하고 체험한 결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역사학이 도시문화의 형성과 변천 과정의 역사적 의미를 다루며, 철학이 도시성의 근원적, 미학적, 종교적 표상에 주목하는 학문 분야라면, 예술과 미디어 분야는 ‘도시의 다양한 표상들’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회의 성과는 도시에 관한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가 소개되어 논의되었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도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미래도시의 인문학적 상상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문학, 역사학, 철학뿐만 아니라 도시 문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도시화 과정의 물적 구조에 대한 정치경제학이나 도시 공간의 생산과 유통, 이용, 소비라는 경제지리학에 대한 이론적, 방법론적 관심과 실천이 긴요한 것이다.
이번 대회를 참관하면서 논문 발표 및 토론의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공통적으로 아쉽다고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도시문화에 대한 문학과 역사학, 철학 분야의 논의에 비해 사회학, 지리학, 인류학, 예술, 미디어 분야의 논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미흡했을 뿐 아니라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획 단계부터 도시인문학에 대한 개념 정의를 “문학, 역사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의 연구방법론으로 도시를 성찰해온 학문적 성과나 경향”이라고 좁게 규정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 문제에 대한 다각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도시문화 전반에 대한 통합 학문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조강연자들은 문학, 철학, 사회학 등과 같은 분과 학문에서 연구를 시작했지만, 결국 통합 학문으로서의 도시 연구를 지향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발표문 내용에서 통합 학문으로서의 도시인문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도시인문학을 넘어 ‘도시학’이 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세계도시인문학대회

이번 대회는 종전의 도시 문제 연구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이끌어내고, 도시 문제에 관한 인문학적 접근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성과는 거둔 듯하다. 하지만 “사람의 도시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대회 개최의 목적이나 취지에는 제대로 부합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도시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을 위해선 도시와 인문학보다 사람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문화는 통상 도시인의 삶을 지칭하며, 도시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은 도시인의 삶에 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언술 중에서 도시인의 경험, 그 중에서도 특히 일상적인 경험에 대한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도시인문학이 도시와 인문학을 강조한 나머지 정작 사람의 일상적인 경험을 누락한 채 도시와 인문학에 대한 논의에만 그쳤다는 생각이 이번 대회를 참관하는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진정 인문학적 성찰을 요하는 주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이번 대회의 큰 주제가 “사람의 도시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도시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