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성대했던 중화인민공화국 60년 기념행사(2009.10.1)의 군사 퍼레이드 광경이 아직은 선명하던 중츄졔(仲秋節) 음력 8월 15일, 한국의 추석과 같음 연휴, 베이징대 부근에 있는 한국계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찾았다. 얼마 전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포스터에 적힌 출연자 수를 세느라 한참을 서 있었던 영화 <졘궈따예(建國大業)>를 보기 위해서였다. 친근한 영화관 분위기에 잠시 들떠 매표소 부근에서 광고하는 상영작들을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추석이 되면 청롱(成龍)의 영화가 걸리던 과거 우리네 영화관과는 달리, 중츄졔 기간 베이징 극장가에서는 <졘궈따예>, <펑셩(風聲)>과 같이 항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물들을 상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2시간 20여 분의 상영시간 동안 가급적 영화에 몰입하고자 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화는 항일분위기의 고조와 동시에 제1차 전국정협회의(第一?全國政協會議)의 개최를 둘러싸고 발생한 국공연합과 분열, 국민당의 공세와 공산당의 대장정(1934~1935), 이후 국민당의 쇠락과 1949년 2월 중국 공산군의 창쟝(長江) 이남 돌파, 다시 그 해 10월 1일 마오 쩌동(毛澤東, 1893~1976)이 톈안먼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중국현대사에 대한 상식과 이해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영화의 서사 구조는 진부했다. 현대 중국의 국가체제 성립과정에 대해 평소 관심이 많았던 터라 행여 국민당의 몰락과 중국공산당의 승리에 대한 식상한 설명을 넘어서는 역사적 해석이 제시되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외부인의 시선에서 인상깊은 영화적 요소는 배우들의 호화로운 캐스팅이었다. 베이징대에서 문화와 영화를 주로 가르치는 어느 교수는 이 영화를 가장 편하게 보는 방법으로 숨은 그림 찾기처럼 스타들을 찾을 것을 권했다고 한다. 천 카이커(陳凱歌), 펑 샤오강(馮小剛), 우 위썬(吳宇森) 그의 연기는 비록 편집되어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배우보다는 영화감독에 맞는다”며 웃어 넘겼다고 함과 같은 유명 감독들이 직접 연기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배우들을 살펴보면 아마 전 세계적으로 중화권에 귀속되는 스타들이 총동원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청롱이 신문기자로 잠시 얼굴을 내밀었고, 장 쯔이(章子怡) 같은 월드스타도 부녀자 대표로 나와 오성홍기(五星紅旗)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등 172명의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영화에 출연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처럼 과도한 스타들의 등장은 오히려 영화의 몰입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기 마련이지만, 감독 중 한 사람인 황 졘신(黃建新)은 그러한 작업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타 배우들은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다. 평범한 배우들은 지속적으로 감독의 교정이 필요한 반면 스타들은 곧바로 인물과 자신을 결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스스로도 서사 자체보다는 스타성에 기댄 비주얼에 중시했음을 인정했다. 조국의 탄생을 스타 각자가 뿜어내는 아우라를 통해 축하하며, 단역 하나하나로 역사의 기표들을 떠받치게 한 구조는 그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사상 최고의 헌정작”이라고 자부하기에 충분한 스펙터클이었다. 근자에 비록 구태의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국가주의 명제조차도 이제는 그 내용에 비해 시대에 부합하는 세련된 표현 방식을 모색하는 이러한 모습과 중국공산당의 상(象)이 겹쳐진다. 이제 할리우드에 절대 뒤쳐질 것이 없다고 자평하는 자신감은 참여한 스타들의 국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더욱 자연스럽게 중국이라는 기표와 기의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었다. 사실 영화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동원된 배우들은 그 국적이 의외로 다양했다. 미국이나 홍콩, 캐나다, 일본 등 11개 국적의 몸값 높은 연기자와 감독들이 조국의 부름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현상은 이러한 스타들의 국적 논쟁에서 그 찬반이 생각보다 격렬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스타들의 국적 문제를 이중성의 문제로 비판하는 주장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은 국적이 무슨 상관이며, 이들은 더 큰 중화의 자산이라고까지 평가한다. 이런 짧은 댓글 속에서 바로 민족적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중화의 기표가 더욱 확장된 욕망과 만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이런 중화의 자신감이 더 정교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쟝 졔스(蔣介石, 1887~1975) 부자를 묘사하는 카메라의 시선이었다. 감독 스스로도 말했듯 이전 대륙 영화에서 쟝 졔스에 대한 묘사는 거의 드물었고, 설사 등장한다 하더라도 정치적 괴수 정도의 단일 묘사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가 가졌던 지도자로서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에 대한 형상화와 함께 패자에 대한 연민의 시선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이는 인간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마오 쩌동의 묘사와도 일정 부분 통하는 것으로, 이렇게 연성화(軟性化)된 시선은 바로 현재 중국공산당이 점유하고 있는 중화 헤게모니와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감이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와 재해석의 가능성을 더 철저하게 삭제한다는 점도 환기하게 만든다. 이처럼 영화는 서사적 빈곤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국기(國旗)와 국가(國歌)의 상징성, 지도자의 도덕적 우월성, 그리고 공산당의 전 중국 통일 과정 등 이른바 조국의 탄생을 구현하는 내적 응결과 외연 확장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단, 이제 그 표현의 형식은 교지나 프로파간다(propaganda) 어떤 사물의 존재나 주장 등을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활동의 형태가 아니라 중화의 월드스타들을 총동원한,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의 기법인 것이다. 

영화<젠궈따예>포스터

영화 <졘궈따예>와 같이 이른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대업”에 대한 헌정적 의미를 갖는 대규모 영화는 사실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왔다. 그러나 초기의 건국 관련 영화들이 만들어지던 시대와 2009년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 마주하는 시대의 모순은 그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많은 변화를 거쳤고, 새로운 모순과의 투쟁은 중국공산당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모순에 대한 그들의 새로운 대응 방식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 위기를 부분적으로만 은폐 가능하게 하였을 뿐, 전면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연자 중 한 명인 청룡                                        주인공 류덕화                         중국의 유명 배우 자오 웨이(좌)

단순한 예로, 건국 초기 중국 인민들이 조국건설과 관련한 영화를 보며 환호하던 국가와의 일체감이 과연 현재 <젠궈따예>를 보는 관객 개개인의 국가에 대한 인식과 비교가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국민과 국가의 단절 및 상호 이익의 충돌, 복수로 존재하는 민족들, 그리고 민족과 국가체제 간의 파열음 등 중국공산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모순들은 필연적인 분열의 요소를 내포해왔다. 이러한 곤혹이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하드웨어로서의 군사 퍼레이드로, 소프트웨어로는 <졘궈따예>와 같은 영화 제작으로 극복의 방법을 모색하게끔 한 것이다. 이렇게 현실과 가상 속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데자뷰 방식으로 조국의 탄생을 재현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건국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명제인 듯하다. CCTVChina-Central Television로 본 10월 1일 톈안먼광장에서의 열병식과 영화 속 마오 쩌동의 열병식 장면이 조금도 어긋남 없이 포개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