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찰랑거리고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은 스케치북을 펼쳐 노란 가을을 담는다. 함께 온 엄마는 친구들과 조잘대며 그림을 그리는 ‘예비 작가’의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렇게 대학로의 가을은 누군가의 비디오 카메라에 담겨진다.

현대예술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비디오 아트(Video Art)’라는 장르는 비교적 일반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있는 듯하다. 휴대전화나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서 일상을 담고,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배경음악을 깔거나 편집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손쉽게 비디오를 통해 작업하고 가끔은 전문 작가처럼 완성도 있는 작업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아트에 대한 이해는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비디오 아트는 무엇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 비디오 카메라를 활용한 작업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은 비디오 카메라를 활용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담은’ 전시다. 김순기의 작품 에서 따온 전시 제목은 ‘비디오(Video)’라는 단어를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Vide’와 역시 비어 있음(虛), 혹은 제로(zero)를 의미하는 ‘O’로 해체시켰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번 전시는 특정 주제에 맞춘 비디오 다큐멘터리나 설치 작업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비디오’라는 매체를 일종의 비어 있는 그릇으로 보고, 이 그릇 안에 혹은 그릇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순기

남화연은 3채널 비디오 작품 <망상해수욕장>에서 수학적 공간좌표(X,Y,Z)를 활용하여 가상의 공간(imaginary space)을 표현한다. 무용수와 배우가 마치 나침반처럼 좌표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푸른 광장(X축)과 좁은 골목(Y축), 어둠의 계곡(Z축)을 지나 망상해수욕장에 도착하면 서로 다른 세계는 하나로 합쳐지고 파도소리가 흐르며 끝난다. 실재와 가상에 대한 관계, 이미지 공간에 대한 접근 방식은 각각 다르지만 정상현의 <나는 이미지다>라던가 서동욱의 <불 꺼진 극장의 거리>와 같은 비디오 작업 또한 보이는 공간과 인식된 공간 사이의 간극, 현실과 허구라는 주제 안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박용석이나 임흥순, 조혜정의 작업은 비디오 카메라를 사회적인 맥락에서 다루는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박용석의 시리즈는 비워진 공터에서 벌어지는 특정 행동 혹은 활동을 통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나, 근대와 현대의 단절에서 오는 문제적 상황들(, )을 단순명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동시대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살면서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체,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우리 현실의 문제들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도록,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동희는 내러티브나 플롯을 강화시켜 비디오의 영화적 속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대어>는 인간의 욕망이 나은 인위적인 공간 실내낚시터에서 어떻게 새로운 교환가치들이 나타나는지를 표현했다. 이외에도 한국전위예술계를 대표하는 작가인 김구림의 1969년 작(作) <1/24초의 의미>와 1974년 작품인 <걸레>를 비롯하여, 박현기의 <물반사 시리즈>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주로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으로 구성된 은 비록 비디오 설치, 다큐멘터리 필름 혹은 좀 더 실험적인 매체의 사용을 함께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를 통해 백남준에만 머물러 있던 비디오 아트의 오해를 조금이나마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동시대 선후배작가들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한번쯤 주목해볼 만한 전시였다.

밤화연<망상해수욕장>

이미지 제공_ 아르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