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려면 타인과 세계에 관한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 기술에 익숙해질 때까지 다소 뒤뚱거릴 테지만, 애초부터 인간은 한없이 어수룩하고 뒤뚱거리는 존재였다. 인간이 우아한 걸음걸이를 갖지 못한 것은 발이었던 기관을 손으로 이용하려 한 전회(轉回)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하고도 능동적인 선택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펭귄이 뒤뚱거리며 날지 못하는 것도 비행을 포기한 대신 풍요로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인간과 펭귄은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우아한 모양새를 잃었지만, 결과적으로 삶이라는 숭고함을 얻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제작한 일곱 번째 영화 <날아라 펭귄>도 ‘취사선택에 따른 실득’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날아라 펭귄>이 인권위 제작의 이전 작품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점은 다수 감독의 단편모음이 아닌 단독 감독(임순례)의 장편영화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제작기관의 의도보다는 ‘타자들 간의 연대를 통한 위안’이라는 임순례 감독의 수사학에 더 수렴한다.

기존의 인권위 제작 영화는 인권과 관련된 시의성 있는 사안들을 고루 다루면서 직접적으로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방식이었다. 영화매체의 전위적이고 정치적인 특성은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기에 용이했고, 기관의 특성상 상업적인 측면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감독들은 단편이라는 형식을 통해 과감하게 개인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직접화법은 수용자들의 비판적인 사고를 되레 무디게 만들었다.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난 소수자의 고통은 점차 수용자와는 괴리된 ‘타인의 고통’으로 격하되고 만다. 인권위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생산과정에 개입하는 지식인들보다는 일상의 미시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대중의 소비적 실천에 주목했다. 계몽적이거나 직접적이지 않되, ‘개인의 권리확보’라는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비주류의 일상과 그들 간의 연대를 세밀한 감각으로 보여준 임순례 감독과 인권위의 결합은 시의적절한 수순이었다. 즉, 인권위와 임순례 감독 공통의 목표는 ‘공감을 통한 타인의 내면성 이해’에 있다. 

영화는 이제껏 사회적 약자로 보이지 않았을 이른바 중산층을 타자로 삼아 고정관념 속 타자의 위상을 흔들며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 다름없다고 은근하게 호소한다. 또한 기존의 인권위 영화에서 격리되어 보였던 여러 사안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네 개의 에피소드 중 첫 번째 에피소드의 중심인물(아내, 엄마)로 등장했던 여주임문소리 분이 나머지 에피소드에서는 주변인물(직장상사, 부하직원)로 등장하고, 세 번째 에피소드의 중심인물인 과장(직장상사, 아빠, 남편)손병호 분이 네 번째 에피소드의 주변인물(아들)로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 사회 속 개인의 위치가 한 가지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화 속에서 나의 문제는 타인의 문제가 된다. 개인보다는 사회적 위상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제 영화는 인간 모두를 타자로 치환하며 나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방법론을 취한다. 특히 직장 내 차별문제를 다룬 두 번째 에피소드와 황혼이혼문제를 다룬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배우들의 호연과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으로 ‘공감을 통한 타인의 내면성 이해’라는 소기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펭귄이자 피해자라는 인식이 반드시 존재해야 할 가해자의 책임마저도 방기하는 방법론일지도 모른다. 교육문제와 관련된 첫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인물들의 선택은 펭귄의 선택과 분명 다르다. 펭귄의 경우, 그들이 처한 환경을 바꾸기 위한 불가피한 생존의 선택이었다. 허나 기러기 아빠의 선택은 부부와 부자간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 불합리해 보이는 체제에 영합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은 스스로 감내해야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러한 인식은 기존 인권위 영화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는 어긋나는 동시에, 나의 고통처럼 타인의 고통도 그들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를 파생시킨다.

<날아라 펭귄>이 계몽적이지 않은 태도로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 본 것은 충분히 인정할만하지만 그것이 인권위의 선택이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개인성을 무화시킬 수 있는 인권에 대한 피상적 접근은 타인의 내면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시대에나 유효한 것일지 모른다. 이 영화가 무엇인가를 바꾸려 했다면 적어도 첫 번째와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만큼은 실패다. 인권위는 정체성의 차이를 견지해야 한다. 이 차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적극적 행위자’로서의 대중의 탄생이야말로 사회변화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영화계 외적인 요인으로 인권위 제작영화 사업조차 불명확한 상황에서 인권위의 다음 선택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날 수 없는 펭귄을 날게 하는 것보다, 죽어가는 펭귄을 보호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날개의 자잘한 상처도 치유하려 하지 않은 채 ‘사교춤’을 추는 펭귄들의 모습은 숭고하지 않아 보인다.

영화<날아라펭귄>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