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여타의 작품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인가? 그것이 숙제였고 그 숙제를 풀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어머니하면 떠오르는 상투적인 신파성은 여전히 어렵다. 이 작품을 하면서 모두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 한 번씩은 울게 된다.”는 연출가의 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이하 <어머니>)를 만드는 과정과 관객이 이 극에 다가가는 과정을 모두 설명하는 듯하다. 극을 만든 사람이나 극을 보는 사람 모두에게 각자의 어머니가 있다. 실재(實在)하는 나의 어머니만큼 <어머니>가 생생하지 않다면 우리는 이 극을 바라볼 이유가 없다. 연출가가 말하는 ‘상투적인 신파성’도 실(實)이 없는 빈 껍데기, 그것도 남이 쓰던 빈 껍데기들로 실을 위장하는 방식을 일컫는 것이리라. 그래서 만든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이 ‘숙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객석과 무대에 있는 사람들 모두 허명(虛名)이 아닌 ‘아름다운 이름’의 실재와 만나기 위해 이 연극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노인치매전문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그려 보인다. 제목과 극의 배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등장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어머니이게 하는 이, 즉 어머니의 자식이 이 병원의 원장으로 등장한다. <어머니>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였던 이들이 사실은 모자관계였음을 밝혀내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서 떠났던 자식이 어머니를 헤아리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효(孝)가 아닌 이해(理解)의 측면에서 모자관계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 극의 자식은 효자, 불효자가 아닌 꿈으로서 존재한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꿈이다. 자식이 바라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며, 그것을 자신이 바라는 것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늘 꿈으로서, 다가올 행복으로서 대한다. 시련이 닥치고, 기억이 희미해져도 꿈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자식에게 어머니는 기만적인 위로이고, 지나간 시간일 뿐이라 여겨진다. 뒤늦게나마 자식은 후회와 이해를 통해 낳아준 이의 의미를 넘어 그녀를 어머니로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어머니와 자식이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주고받는 정은, 효보다는 사랑이라 이름 붙여야 할 것이다. 효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마음과 정신을 의미한다면, 사랑은 서로를 향한 마음과 정신을 일컫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인물들은 대부분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주된 등장인물이 아니어도 둘씩 짝을 지어 지나가는 걸 보면, 이 극에서 짝은 극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주요한 모티프인 것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에서 인물들은 모자(母子), 부부(夫婦), 연인(戀人), 남매(男妹), 부자(父子)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관계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다. 특히 공연의 활기를 더해주고, 극의 풍경을 다채롭게 하기 위해 등장하는 늙은 부부와 젊은 간호사 연인은 늘 함께 하며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다. 극 중에서 늘 산책을 하는 늙은 부부에게 서로는 지팡이 같은 존재다. 지난한 여정이지만, 서로 위하며 걷고 있다. 그리고 젊은 연인에게 서로는 활력소로서 존재한다.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늘 웃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그 힘으로 고단한 병원 일을 척척 해나간다. 이렇듯 <어머니>는 사랑을 원동력으로 해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인물들은 지치지 않는다. 시련이 무색하리만치 힘을 발한다. 의사와 간호사에게는 치매 환자들의 ‘집착’과 ‘폭력성’으로 이해되는 비정상적 행동이 있고, 자식에게는 부모를 버리는 이유가 될 만큼 심각한 부모의 가난과 장애가 있으며, 아내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비밀 같은 시련들이 있다. 그러나 극 중 주인공들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여유롭게 이겨낸다. 하지만 이것은 아름다움의 풍경을 단조롭게 만든다. 풍경 속의 연인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에 늘 생생하고, 늙은 부부는 죽음을 예감하고 있기에 늘 애틋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생생하고 애틋한 사랑이 시련을 이겨내도록 힘을 발휘하는 과정은 설득력이 없다. 다시 말해 사랑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시련을 안겨주는 자식이 사랑을 의심하고 따져 물어도, 어머니는 자식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고통과 슬픔은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 충분했으나, 어머니가 품은 꿈과 사랑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어머니가 아름다운 이름의 실재가 되려면, 연민의 대상이 아닌 꿈처럼 찬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객석과 무대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웃기고 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어머니 역을 맡은 이경미는 노인의 기진맥진한 모습이 아닌 꿈을 쫓는 자의 내적 역동성을 산뜻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무대 위의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듯, 격려하듯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극에서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의 다리로서 존재하면서 상황을 전개 시켜나간다는 것을, 이 극을 통해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연극<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름, 어머니>장면

이미지 제공_ 극단 십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