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시차를 느낄 새가 없다. 다큐인 양 현장을 파고드는 카메라는 한순간에 테러와 폭격으로 점철된 악다구니 속으로 관객들을 내몬다. 독립투쟁 전사가 단두대에 처형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었던 기요틴(guillotine)프랑스 혁명 때 발명한 사형 집행 기구은 어느새 식민지의 억압 도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목격한 청년 알리브라힘 하쟈드 분는 항불 투쟁에 투신하여 FNL 알제리민족해방전선(Font de Lib ration Nationale)의 지도자로 성장하지만 프랑스 공수부대에 발각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실재에 육박하려는 듯 빈번한 클로즈업 가운데 단연 으뜸은 잔인한 고문으로 알리의 은신처를 실토하고 만 동료의 눈물 신(scene)이다. 그 눈물이 비단 알제리에서만 흐르던 것이 아니었음은 공수부대의 지휘관이 디엔비엔푸1953년 프랑스와 전투가 벌어진 베트남 도시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알제리 전투는 알제리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베트남을 비롯한 제3세계가 공히 직면하고 있던 반식민지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를 예외로 한다면 ‘좌파적’ 색채가 농후한 프랑스 지성계가 유독 식민지 문제에서만은 둔감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산당조차 베트남과 알제리에서의 군사행동을 지지했던 것이다. 이는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라는 사실로부터 연유한다. 패전국들과는 달리 식민지를 포기할 의향이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에서만 8만 여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베트남과 알제리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즉 2차 대전 후에도 알제리의 독립을 승인한 1962년까지 프랑스는 전시체제하에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가 식민지에 대해 나치즘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세제르(Aime-Fernand Cesaire)의 비판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프랑스 제4공화국의 정통성이 나치 독일의 ‘폭력’과 ‘광기’에 대한 ‘문명’과 ‘이성’의 저항, 즉 레지스탕스(resistance)에 있었던 바 알제리의 독립이 그 허울을 벗겨 제4공화국의 붕괴로 이어진 것은 필연적 과정이었다. 허나 유럽 내부의 타자(나치)에 대한 승리와 식민지 지배라는 모순이 서구 내부의 타자(소련)를 물리친 미국에 의해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음은 침통하다. 9·11 이후 미국 정보기관이 테러리즘의 실체를 알기 위해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일화도 쉬이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알제리 전투La Battaglia Di Algeri>(1965)가 투박한 정치선동을 넘어 미학적 성취를 거둔 것도 이 지점에서다. 이 작품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알제리 인들에게 ‘포위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프랑스인들의 도착적 감정상태이기 때문이다. 130년의 긴 지배가 유럽지구와 아랍지구로 분리된 식민통치 자체를 ‘자연화’하여 가해자가 도리어 피해자에게 공포심과 불안감을 앓는 병리적 증상을 낳은 것이다. 이는 알제리에서 자행된 그 잔인한 고문과 학살을 지탱하는 주체, 즉 ‘프랑스 시민’이란 대체 누구인가라는 비수어린 질문을 던진다. 파리의 무슬림 폭동과 관타나모 수용소를 아우르는 이 발본적 문제 제기야말로 영화의 현재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개봉 당시의 파장 또한 심대한 것이었으니 블랙팬더(Black Panthers)1965년에 결성된 미국의 급진적인 흑인결사와 IRA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의 투쟁에 큰 영감을 주었으며, 독일 적군파의 리더 안드레아스 바더(Andreas Baader, 1943~1977) 역시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이 작품을 꼽았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주에 개봉한 SF영화 <디스트릭트 9District 9>(2009)과 <알제리 전투>가 빚어내는 공명이다.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우뎅주(州)에 있는 도시를 무대로 한 <디스트릭트 9>에서 병든 외계인들의 집단 거주지 ‘디스트릭트 9’은 명백히 악명 높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를 비튼 것이다. 영화 속 핍박받는 외계인은 흑인의 다른 이름이고 외국인의 바뀐 표현이며,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은유이자 상징이다. 과거의 알제리와 미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시공간의 차이 속에서도 아프리카의 남과 북에서 재현되는 처연한 풍경은 기묘하게 포개진다. 뒤늦게 도착한 <알제리 전투>가 영민한 SF <디스트릭트 9>과 겹치면서 근대성의 이면을 응시하는 복안(複眼)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 어두운 심연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좌·우에 수렴되지 않은 생물학적 인종주의이다. 이 강렬한 파토스(pathos)야말로 계몽적 이성마저 눈멀게 하는 암흑의 핵심인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기억해 둘 것은 알제리에 파병된 군인 가운데 청년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 2004)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파리로 돌아와 발표한 첫 저서가 『그로마톨로지에 대하여De la grammatologie』(1967)이니, 데리다의 탈구축(deconstruction)이란 ‘알제리 전투’의 지적 유산이었던 것이다.

영화<알젤리 전투> 포스터